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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회 Jan 04. 2022

달이 유난히도 밝던 날

2020-01-09


2019년 7월부터 시작한 항암 치료 8차례를 무사히 마치고 2020년 1월 9일로 본 수술 일정이 잡혔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담담했다. 수술 하루 전 입원하여 지난 치료의 결과를 보고 받았다. 여태까지 진행한 항암 치료의 목적은 퍼져있는 새끼 세포들을 없애 유방 부분절제가 가능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일단 엄마가 부분 절제를 원했고, 의사 선생님도 무턱대고 유방 전체를 잘라내기엔 너무 아쉬운 경우라며 일단 항암 치료를 해보는 게 순서에 맞는 것 같다는 소견을 주셨었다. 치료 결과, 커다란 암세포의 크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퍼져있는 자그마한 세포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부분절제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 전까지 부분 절제와 전 절제로 고민하던 엄마는 결국 수술 당일 전 절제를 결심했다. 재발률이 부분 절제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전 절제가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다고 하시니 위험을 안고 부분 절제를 하기엔 너무나도 큰 모험이었다.


수술 당일은 엄마의 곁에 있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일을 일찍 마치고 병원으로 왔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수술 일정을 온 동네방네에 소문낸 엄마 덕에 이미 몇몇 분이 병문안 오신 뒤였다. 딸이 제일 늦게 온 상황에 조금 머쓱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엄마랑 같이 있을 것이라 선포했다.


수술 전 대기실로 엄마의 베드가 들어갔고 마취가 시작됐다. 많은 보호자들이 좁은 복도에서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시작 전 수술실로 들어가는 교수님과 마주쳤다. 교수님은 오늘 아침에 출근하는 중에도 엄마 수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본인이 생각해도 전 절제가 나은 것 같다는 결론이 났다며 엄마가 결정을 잘하신 것 같다고 안도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수술이 마치면 알람이 간다고 해서 병실에 올라가서 대기해 달라는 말에 병실에서 시간을 잠시 보냈다. 수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알람에 몸을 일으켜 엄마를 다시 보러 갔다. 엄마는 아직 회복실에 있었고 조금 뒤 병실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수술을 잘 이겨낸 엄마는 병실에서 눈을 떴다. 그 얼굴을 마주했다. 긴 고통의 시간을 인내해내고 긍정적으로 환자의 삶을 살아낸 엄마의 노고에 가슴이 미어졌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실 밖 복도 끄트머리에서 마음을 추스르고 추스르다 보호자 자리로 돌아갔다. 달이 유난히도 밝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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