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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회 Feb 25. 2020

딸이라는 존재

2019-08-07. 2019-08-19


2차 항암 치료.

첫 치료제를 투여했던 날이 아직 잔상으로 남아있다. 빨간 항암제를 시작으로 3번의 링거 주사를 4시간 넘게 투여받았던 날. 엄마의 문자에 눈물 쏟으며 병원으로 달려갔던 그날이 아직 잊히지 않았기에 적어도 항암치료를 받는 당일은 엄마의 곁에 계속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한 시에 치료제 투여가 시작된다기에 그 시간 전에는 도착하려 했는데, 나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벌써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던 것을 다 멈추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항상 엄마는 그냥 오라고, 필요한 게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뭐가 더 필요할까 싶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을 향하며 전화를 걸었다. 근데 엄마가 받지를 않았다. 대충 요플레와 보리차를 사 가지고 병동으로 올라와 엄마 병상 커튼을 열어젖혔는데 죽은 듯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엄마가 있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두 차례만에 두려움을 평안함으로 극복해 낸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진단.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입원과 치료, 퇴원을 반복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엄마의 몸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지만 불가피하게 음식과 외부 생활에 주의하고 있다. 엄마가 어디 나간다 하면 마스크를 챙기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꼭 어린아이에게 잔소리하는 엄마 같았다.


2차 항암치료 후 엄마는 머리를 밀었다. 조금씩 머리가 빠지는 걸 보는 게 더 견디기 어려운지 그냥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집 앞 미용실에서 밀었는데 치료 때문에 머리를 밀러 왔다고 했더니 돈도 안 받고 그냥 밀어주시더라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얘기했다. 웃기지 않냐면서 두건을 벗어 나에게 보여주는 엄마의 민머리는 정말 웃겼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스님 머리를 하고 있으니 웃길 수밖에. 그리고 슬퍼하느니 차라리 웃는 게 마음 편했다. 아빠는 이상하니까 집에서도 두건을 쓰고 있으라고 했단다. 엄마는 그 말이 못내 속상했는지 나에게 이르듯이 말했다. 나중에 아빠가 내게만 얘기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게 자기 탓인 것 같아서 엄마의 머리를 보는 게 너무 속상하고 울컥한다고, 그래서 두건을 쓰고 있으라고 했단다. 바보 같은 우리 엄마와 아빠 덕분에 난 아직도 오작교 역할을 그만 둘 수가 없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요즘. 무뚝뚝한 딸이지만 나는 딸로서 내 자리를 최선을 다해 지키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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