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회 Oct 28. 2022

백합처럼 활짝

2022-06-27


2022년 6월 27일


아침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전화를 받자마자 연명치료에 대해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진행 여부를 알려줘야 하니 일찍 병원에 와봐야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첫째 이모와 오빠, 나를 불렀다.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하니 이모는 이미 한 시간 동안 아빠랑 얘기를 마친 뒤였다. 아빠는 다시 엄마의 병실로 들어가고 나는 이모와 남편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그때 다시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가 CT를 찍으러 지하 1층에 와 있다고 전했다. 급히 이모와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엄마는 정신이 없었다. 불러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대답을 하지도 못했다. 힘겹게 꺼낸 말은 오렌지 주스를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남편이 빨리 내려가 주스를 사 왔다. 한두 모금 마시더니 또 힘들어해서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이모와 2층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한참 침묵 속에 있다가 이모가 말을 꺼냈다. "엄마가 저래봬도 엄청 독한 사람이야."


엄마도 일찍이 아버지를 잃었다. 지금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스무 살 때.


어린 시절의 이모와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싸웠다고 한다. 부모님은 항상 장녀인 엄마의 편이었고 이모는 그 사실이 억울해서 더 엄마에게 덤볐다고 했다. 어느 날은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했단다. 그런 일상을 보내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스무 살이었던 엄마는 그 갑작스러운 상황 중에도 3일 내내 빈소를 떠나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밥도 먹지 않고 울지도 않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고. 이모는 그때 결심했다. 엄마랑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이모는 이 얘기를 전해주면서 엄마는 생각보다 굉장히 독한 사람이니까 엄마를 믿고 끝까지 잘해보자고 스스로 위로를 전했다. 뭐가 됐든 끝까지 할 수만 있다면 다 해보자고 했다. 다른 네 명의 이모들 마음도 똑같다고. 그리고 지금 아빠의 멘털이 많이 무너져서 이모가 아빠 대신 보호자를 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집에 가서 좀 쉬고 올 수 있게 옆에서 도우라고.


나는 남편과 함께 엄마가 찾던 베개와 이불을 가지러 엄마 집에 갔다. 집에 간 김에 굶주려 있던 물고기에게 밥도 주고, 메말랐던 식물들도 보살폈다. 그러다 화단에 핀 꽃을 발견했다. 백합이었다. 엄마는 한 동안 꽃피지 않았던 저것이 무엇일까 궁금해했는데 오늘 드디어 백합임을 확인했다. 기뻐서 아빠에게 바로 사진을 보냈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줬더니 좋아했다고 했다. 이 작은 기쁨이 힘이 되어 엄마도 백합처럼 활짝 피어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이전 12화 조용한 투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