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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회 Oct 28. 2022

엄마

2022-06-29


엄마.


2022년 6월 29일. 엄마는 조용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간 전이 이후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등졌다. 지난밤 진통에 잠들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진통제를 요청했다. 진통에 시달려 잠 못 이루던 모습이 아빠가 본 엄마의 마지막 생명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날은 병실 출입 허가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엄마의 상태가 위중하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 가족들이 병문안을 올 수 있도록 허락해줬다. 다만 엄마의 병실을 1인실로 옮기고 방문 가족들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가능했다. 오후 3시 19분. 병원 지하 1층 카페에서 병원의 연락을 기다렸다. 병실을 옮겼으니 올라와도 좋다는 연락만을 기다리며 엄마를 만나러, 엄마를 확인하러 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전화가 왔다. 아빠였다. 이제 올라와도 된다는 소식을 전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빠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소회야. 빨리 올라와봐야 할 것 같아. 엄마가 숨을 안 쉬어. 


그 말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잠시 호흡에 이상이 있다는 건가 싶어 심장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12층으로 급히 올라갔다. 12층 병동 자동문이 열리자 아빠가 바로 보였다. 아빠는 내 손을 붙잡고 병실로 달렸다. 나는 그 긴박함에 달려가는 도중에 절로 눈물이 터졌다. 울음을 한가득 안은 채 병실로 들어갔다. 1274호. 1인실이었다. 엄마가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 옆엔 파란 옷을 입은 의사가 있었다. 사망선고를 하러 들어온 듯했다. 아빠는 불만과 억울함을 표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라면 더 심혈을 기울여서 관심을 가져주고 돌봐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그 잠깐 사이에 엄마가 숨을 쉬지 않느냐고. 병실을 옮기는 그 잠깐 사이에. 어떻게.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허망하게 가냐고. 뭐라도 해줬어야 하지 않느냐고 몰아세웠지만 돌아오는 대답을 똑같았다. 손 쓸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나는 엄마를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참아왔던 모든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의 손을 붙잡고 울다가 엄마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를 찾으려 애썼지만 희미한 산소통 소리만 들렸다. 안 돼. 안 돼.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그냥 울기만 했다. 아빠는 엄마의 얼굴을 붙들고 이마를 붙들고 목에 손을 대 보면서 아직 따뜻해. 아직 따뜻해. 이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연락을 돌렸다. 이모에게 시작된 전화는 고모, 오빠, 목사님 한 명 한 명씩 이어졌다. 전화 너머에서 큰 통곡소리가 전해졌다. 아빠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다가 홀린 듯이 엄마의 눈을 억지로 뜨게 해 봤지만 노랗게 뜬 허망한 눈만 보일 뿐이었다. 마치 죽은 짐승의 눈 같아서 무서웠다. 그 충격에 또다시 오래도록 엄마를 붙들고 울었다. 이모들이 한 명씩 도착했다. 눈물의 연속이었다. 좌절, 허탈, 두려움. 모든 안 좋은 감정들이 뒤섞였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내일 또 온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내일이 되니 엄마가 없었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 버렸다. 13시 40분.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엄마.


엄마를 불러도 엄마는 이제 우리의 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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