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그리고 마무리

이제 아름다운 기억으로

by 희노가

12년 전,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미국에 있는 친구 1명, 한국에 있는 친구 2명, 이렇게 여자 넷이서 여행을 계획했다. 밴쿠버로 들어가 캘거리까지. 도시뿐 아니라 록키산맥 근처의 산장을 누비며 렌터카 한 대로 2주간 신나게 돌아다녔다.

동양 여자들이 까르르 모여 다니는 걸 보고 학생으로 착각하셨는지 현지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네들끼리만 온 거냐'며 우리를 걱정해 주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슴과 엘크, 커다란 뿔이 인상적 무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숨죽이게 되는 곰, 그리고 코요테까지. 여러 야생동물들과 마주쳤다. 또 벤프에 펼쳐진 호수는 물 위에 비친 풍경까지 더해져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마치 숲 속 정령들과 요정들이 나오는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그때 여행의 기억이 너무나 좋았는지, 그 후로 캐나다라는 나라에 살아보는 것을 마음속으로 꿈꿨다. 그리고 12년 후, 아이와 함께 캐나다에 오게 된 것이다. 캐나다의 런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5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은, 과거에 꾸었던 꿈의 조각들이 실현된 것일까?


캐나다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고, 이 편이 20화.

마지막 편이다.

모든 것이 계획 속에 있던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지낸 삶을 스무 편쯤의 이야기로 기록해 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신기하게도 12월 마지막주까지 딱 20편이 만들어졌다.


마지막 편은 여기에서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지나온 시간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며 쓴다. 이제까지 연재된 19편의 글들도 처음부터 쭉 읽어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어떤 것을 했는지, 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일단, 늦여름과 짧은 가을, 긴 겨울을 보냈다. 겨울은 내가 떠나도 더 길게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거의 세 계절을 보냈구나. 옷도 반팔, 긴팔, 두꺼운 외투에 스노부츠까지 모두 입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색의 잔디나무와 단풍, 을 실컷 사진과 내 눈에 담아냈다.


여기서 소비했던 것들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샴푸를 세 통, 핸드워시도 세 통, 바디워시는 두 통을 비워냈다. 치약도 세 개째, 칫솔은 달마다 바꿔서 다섯 개째를 쓰고 있다. 그 많던 세제도 두 통을 다 비운 걸 보니 빨래도 참 열심히 했다.

쌀은 아이와 둘이서 20kg를 넘게 먹었다. 작은 브리타 정수기를 쓰느라 서브로 500ml 물을 자주 사다 먹었다. 재활용이 된다지만 너무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한 건 아닌지 조금 반성 중...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운전을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총 1만 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꼬박꼬박 주유를 했다. 공원러버답게 스무 곳에 가까운 공원을 가서 발도장을 찍었고, 도서관 도장 깨기를 한답시고 열 곳이 넘는 도서관에 방문했다. 영어 동화책을 포함해서 전자책으로 약 스무 권의 책을 읽었다.


모든 행적들에 신선한 기쁨과 배움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아이가 한 학기 학교를 무사히 다닌 것과 아픈 적이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간 항생제며 다양한 비상약을 먹지 않은 것. 비염이 거의 다 나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이가 건강히 지낸 것과는 달리,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앓았다.

그때마다 늘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고, 때에 맞게 음식들을 잘 챙겨 먹을 수 있게 날개 없는 천사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들이다. 아이와, 주변 분들과, 특히 한국에서 홀로 힘들게 가족들을 지탱해 준 같사남의 콜라보로 런던생활을 잘 마무리한 것 같다.


또한 때마침 브런치 작가가 승인되었고, 이곳에서의 일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스무 편의 글을 연재한 것이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저녁.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며, 그 마음을 붙잡으며 기록했다.

[북쪽의 축제: 캐나다의 계절]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내년 1월부터는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수고했다고,


그럼, 북쪽의 축제여 안녕!


"삶은 축제다"

-희노가


*캐나다의 계절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한국에 돌아가 새로운 연재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