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에서

넘어져도 괜찮아

by 희노가

사악-삭 얼음 위를 스케이트날이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는 12월 중순쯤부터 야외스케이트장이 개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던 눈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자 우리는 자연썰매장에서 진화하여 스케이트장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축구를 배우는 것처럼, 이곳의 어린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아이스하키를 많이 배운다. 아이스하키를 하려면 일단 스케이트는 필수이고 말이다. 꼭 아이스하키를 배우지 않더라도 스케이트는 남녀노소 온 국민이 탈 수 있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빙상장이 동네 곳곳에 있고,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면 어디든 쉽게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다. 우리 집에서 바로 가까운 곳에도 아이스 스케이트장이 있어서 몇 번을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타려고 서울에서도 몇 번 다녀왔던 참이라 아이는 완전 초보는 아니었지만 자유롭게 타는 수준은 아니었다.


처음 스케이트장에 간 날, 아이는 자기가 타던 스케이트랑 좀 다르다며 처음에 장비 탓을 했지만 그럭저럭 타는 모습이었다. "쉬엄쉬엄 돌다와~" 아이를 링크장에 넣어놓고 한가로이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다가 순간 깜짝 놀랐다.


빙판 위에 유모차가 돌아다니고 있다.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유모차를 밀며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경한 모습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에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또 유모차를 밀며 빙판 위를 가른다.


유모차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니. 부모의 얼굴은 또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지. 다른 이들도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걸 보니 유모차도 들어올 수 있는 게 분명하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시설관리자의 허가에 따라 들어올 수 있었다. 정말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구나.


찬찬히 둘러보니 유모차 말고도, 아직 기저귀도 떼지 않은 것 같은 자그마한 아이들이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헬멧을 단단히 씌우고 얼음 위에서 잡을 수 있는 보조기구를 이용해서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스케이트의 진정한 조기교육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저렇게 어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는구나 하면서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나는 성인이 돼서야스케이트장을 찾았고, 스케이트를 탄 적도 손에 꼽을 정도니까.


그렇다고 거기에 어린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무심하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빨랐다. 마치 이곳에 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처럼. 그리고 유모차와 아이들과 할아버지 그 사이에서 아직 마음만 급한 내 아이가 보였다.


'힘내, 할 수 있어.'

조용히 응원하며 지켜본다.

겁이 많은 편인 아이는 얼음 위에서 넘어지는 게 싫다고 했다. 그런데 도리가 있나.

얼음판에서 넘어져도 봐야 하는 걸.

그날 보고 있는데 한 번 꽈당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마음이 덜컹했지만 멀리서 보고 일어나라고 손짓을 했더니 일어나서 툭툭 털어낸다.

'잘했어. 정말!'


그러고 나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헬멧과 장갑과 두툼한 옷을 입은 아이는 넘어져도 큰 데미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넘어지다 보니, 아이의 손은 어느새 자유로워져 있었다. 그전까지는 다리에만 집중하느라 허벅지 위에 손을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다녔었는데.


처음 스케이트장에 다녀온 후로,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자주 말했고 어느새 아이는 처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얼굴에는 조급함이나 불안함보다는 얼음 위를 즐기는 꼬마의 표정이 지어졌고 말이다.


그래. 너는 이제 겨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를 장착하게 되었구나.


아이의 모습을 보며, 어떤 책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용기란 겁을 내지 않는 게 아니라, 겁이 나지만 하는 것이 용기]라고.


아이가 살면서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 스케이트를 배우며 넘어질 때를 기억하길 바란다.

막상 넘어져 보니 별 건 아니었다고. 다시 또 일어설 수 있었다고.


너의 그런 용기를 응원한다. 열렬하게.


"삶은 축제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18화, 북쪽에서 크리스마스를

*다음 이야기: 20화,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