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게 다일까?

경험과 다양성에 대하여

by 희노가

13년 전, 남편과 처음으로 하와이에 위치한 마우이섬에 갔을 때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같사남(남편)에게 속삭였다.

"나 있잖아. 이렇게 다양한 인종이 한 데 있는 건 처음 봐."


13년이 지난 지금, 캐나다의 작은 도시에서 폭풍처럼 쏟아져내리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이에게 말했다.

"있잖아. 엄마도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처음 봐."


40년 남짓을 살았어도 처음 겪고, 처음 보는 것들이 있다.

꽤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못 가본 나라들이 더 많고,

그저 일부의 일부를 체험했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 세상을 100년을 산들 처음인 것이 없을까 생각하면 나의 얕은 지식과 짧은 경험에 저절로 겸손함이 든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본다.

아이가 이곳에서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집에 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 000가 나한테 왜 이렇게 눈이 작냐고 묻더라."

"뭐???(인종차별일까 호기심일까 별 생각이 다 들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Who cares?"

"잘했네. 혹시 다음에 또 그런 말하면 위험한 발언이라고 말해. 필요하면 선생님한테 이야기해도 되고."


그날 밤, 나는 아이가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이 되었고 잠든 아이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캐나다가 아무리 다양한 인종과 문화에 포용적인 나라라고 해도, 그런 일은 있을 수 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그 도시는 동양인들이 잘 없는 동네로 우리가 사는 시티보다 더 작은 시골이다. 학교에는 동양인 아이들이 단 두 명밖에 없고, 다른 아이는 나도 만난 적이 있지만 눈이 컸다.


실제로 아이에게 그 말을 한 백인 아이는 눈이 작은 동양인 아이를 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 아이가 살아온 10년을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 쭉 살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사람들은 처음 보는 것에 호기심뿐 아니라 이질감을 느끼니까.

그 상황에서 대수롭지 않게 "Who cares?"를 외친 아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그날 이후에 그런 말은 쏙 들어갔고, 아이는 반 친구들과 고루 잘 지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곳은 바꿔 말하면

'낯선 경험, 낯선 이야기, 낯선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과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그저 '낯선 곳과 낯선 사람'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과연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할까?


낯선 경험을 새로운 경험으로 느끼고, 그 안에서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들은 잠시 넣어두고 더 넓은 파도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었나.


아이들이 어릴 때 외국에 오면 어른보다 금세 적응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가슴이 열려있다.

아직 말랑말랑한 상태라고 해야 할까. 또 경험한 것이 오히려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과신하지 않는다. '여기는 그렇구나, 여기 아이들은 그렇구나' 하고 금세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 안에 들어간다.


어른은 어떨까.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 본 어른이라 한 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할 텐데.

그동안 살아왔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많은 것들을 자신의 잣대로 재고 또 잰다. 다소 딱딱해진 마음으로 의심하고, 다양성을 이해하려기보다는 배제하고 말 때가 있지는 않은 지.


이곳에서 계절의 이름은 같아도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한 겨울이 있는가를 체감한다.

내가 겪은 겨울이 다가 아니었고, 또 어딘가에 다른 겨울이 있을까도 궁금하다.


나는 또 이곳에서 가족 형태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가족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여러 가족들에게 배웠다. 세계 어디에 있어도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지금은 가족끼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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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삶이라는 것을 책처럼 여러 가지 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캐나다에 지내고 있는 이 장면이 내 삶에서 다른 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아닐까?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요가원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용기를 낼 수 없었을 캐나다에서의 생활.

삶은 나에게 자꾸 더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가라고, 멀리 한 번 가보라고 그렇게 길을 내어준다.


여러 가지를 새롭게 경험하고, 그것 또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다양함의 파도 속에서 내가 원하는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기쁘게 그 여정을 즐겨보겠다.


"삶은 축제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자연에서 자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