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죽음의 사이에서
언제까지 계속 내리는 거야? 싶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이틀 동안 아이의 학교는 문을 닫았고, 우리는 눈에 둘러싸여 고립 아닌 고립을 경험했다.
진정한 '윈터링'이다.
이곳에서 눈을 원 없이 실컷 보고 가는구나 하면서 뒷마당 눈밭을 뒹굴었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아서 좋은 게 하나 더 있음을 떠올렸다.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도로 위의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캐나다에 와서 가장 좋은 것은 숲과 나무들이 많아 자연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것이고,
지내는 곳에 숲이 많다는 것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터전은 자연이니까.
문제는 사람들도 살기 위해 이동하기 위해 자연 속에 혹은 옆에 도로를 냈기 때문에, 이게 도로인지 뭔지 잘 모르는 야생동물들은 소위 말하는 ‘로드킬(roadkill)’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매일 100km가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오가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크고 작은 동물들의 죽음을, 그 사체를 도로에서 보았다.
너무 작아서 사체가 맞나? 하는 청설모나 쥐과의 동물들 뿐 아니라 때로는 마치 도륙의 현장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큰 동물의 사체를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땐 그 옆을 지나가면서 눈을 질끈 감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좀 더 먼 곳을 보려 했다.
또한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몸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구역질이 나고 소름이 돋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죽고 싶어서 죽은 것도 아니고,
차에 그들을 친 사람들도 그들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지만,
피가 펄떡펄떡 따뜻하게 살아있던 생명이 싸늘하게 죽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무섭고 적응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어 같사남과 잠시 있을 동안 그가 늘 하는 이야기는
“동물이 갑자기 뛰어나왔다고 해서 핸들을 옆으로 틀면 끝장이야.
우리가 죽는 거야. 무섭고 힘들겠지만 그건 그냥 가야 해.”
“치고 가라는 거야?”
“일부러 치고 가진 않더라도 갑작스러워서 속도를 줄일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
위험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죽을 거야?”
“... 알았어”
그 뒤로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만 도로를 달리다 숲이 많은 지대에 오면 이렇게 기도를 한다.
‘어떤 동물들이건 그 안에서 놀아줘. 도로로 제발 뛰어들지 말아라. 나도 조심할게. 내 차로 너네를 치는 일은 없게 해 줘.’
기도가 들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제까지 로드킬을 일으킨 적은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 하면서 도로에 있던 흔적을 차로 밟고 지나간 적은 있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많은 동물들의 죽음을 보았고 지나쳤다.
나는 매일을 충실히 살기 위해 그 도로를 매일 오갔고, 그들은 이유 없이 죽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저 동물들은 죽어서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던 마음이 ‘너네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하고 느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로드킬을 당하는 작은 동물들은 치워지지 않는다.
도로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될 정도의 큰 사체들은 누군가의 신고로 치워져서 알 수 없지만,
청설모나 작은 라쿤정도는 그냥 도로에 방치된다.
매일 같은 도로를 지나는 나는, 같은 장소에서 며칠 동안 아니 달 내내 같은 사체를 지나쳐야 했다. 그것들은 처음에는 마치 아직 살아서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매일 다르게 변해갔다. 물론 그것이 다른 타이어들에 의해 또 밟혀서 찢겨나갔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체가 계속 작아지고 줄어들고, 나중에는 털만 조금 남아있는 상태가 되어 얼룩덜룩한 흔적만 남았다. 나중에 비가 오고 나면 그것도 씻겨져 나갔다.
그랬다. 그들은 그저 바람과 압력과 도로의 뜨거운 온도와 비에 의해서 서서히 없어졌다.
그런 모습을 몇 번 보고 나자 사체를 볼 때 몸이 부르르 떨리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은 여전했으나 죽어서 어디로 갈까 하는 의문은 조금 잠잠해졌다.
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을 보는 것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또한 익숙해져서도 안 된다.
동물의 크기에 따라 생명의 귀함이 다르지 않듯, 어떠한 죽음에도 무딘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눈이 또 내린다. 하얗게 덮이는 세상을 보면 마치 죽음이라고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딘가에는 있겠지. 세상 도처에는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지.
그들도, 나도 결국은 자연으로 흩어지는 존재일 뿐일지도 모른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나의 윈터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