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나는 중입니다.
때때로 계절에 딱 맞는 책을 만난다. 마치 책이 나를 부른 것처럼.
이북리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내 눈에 띈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겨울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인가.
*윈터링(Wintering): 동물이나 식물 등이 겨울을 견디고 나는 일, 겨울나기, 월동.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Wintering)>, 캐서린 메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연재의 제목은 [북쪽의 축제: 캐나다의 계절]로, 몸과 마음으로 겪는 안팎의 계절에 대해 써오고 있는 중이다. 위에 언급한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겪은 겨울과, 누구나 인생에서 <겨울>이라는 계절을 겪을 수 있다는 것과, 겨울의 의미와 봄을 향한 도약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 글은 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계절 <겨울>에 대해 조금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
지난번 <눈이 올까요>라는 글을 쓰고 난 이후에도 이곳에는 몇 번이나 많은 눈이 내렸고, 아이와 자주 썰매를 타러 갔다. 날씨는 점점 혹독해졌으며, 패션이나 몸이 부해 보일까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바지를 두 개 겹쳐 입어야 비로소 따뜻한 계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북쪽의 나라답게, 겨울이 참으로 겨울답구나 생각한다.
어둠은 아침이 되어도 쉬이 물러나지 않고, 빠르게 찾아온다.
이렇게 밤이 길어지면 그만큼 잠을 더 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도 '겨울잠을 자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서글프다. 농담이다. 완전한 농담은 아니지만. 내 주장을 뒷받침하듯 아이도 겨울이면 유난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데, 너네는 겨울방학이 있지만 어른들은 없단다. 겨울잠을 자는 시기는 없더라도 어른들에게도 겨울방학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북쪽의 나라는 한국보다 훨씬 빨리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찾아보니 서울보다 평균 20분 정도 빨리 일몰이 온다고 한다. '이상하다. 체감상 1-2시간은 더 일찍 지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뜨고 지는 시간보다는 '일조량'이 많이 차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지금 시기는 한국의 같은 시기에 비해 일조량이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 그래서 요새 해가 반짝 얼굴을 내밀면 일광욕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볕이 그리워지니 그동안 여기는 햇살이 너무 따갑다며 덕지덕지 발랐던 선스크린을 좀 덜어내고,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날을 자꾸 기다리게 된다.
이쯤에서 책에서 나온 한 문장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여름을 바라며 한탄하기를 멈추는 순간, 겨울은 보기 드문 아름다움으로 채색된, 거리마저도 반짝반짝 빛나는 영광의 계절이 될 수 있다.
겨울은 느긋한 충전과 집 안 정돈을 위한 숙고와 회복의 시간이다.
실제로 집안에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아이가 늘어놓은 장난감과 책들, 정리가 안 된 주방이 자꾸 보여서 자분자분 청소하는 시간이 늘었다. 때로는 다 미뤄두고 거실에서 좋아하는 구역인 소파에 기대어 책에 빠지기도 한다. 또 얼마 전부터 시작한 글 기반의 SNS플랫폼은 또 새로운 세상이라 자주 들어가서 글을 읽고 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계절을 읽고, 어떨 땐 한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며칠 전엔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갔다가, 나에게도 작은 겨울선물을 하고 싶어서 포근하게 보이는 잠옷을 사고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느긋한 충전을 하고 있다가도, 불쑥 이 겨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올라오곤 한다.
이제 곧 한국에 가서 보낼 겨울은 또 어떨까.
떨어져 있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 다시 돌아가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자극들이 몰려오지 않을까 하고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것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잔뜩 휩싸였다가 얼른 고개를 휘젓고 자리에 돌아온다. 오늘에 집중하자고, 이곳을 좀 더 정돈하자고.
이 자리로 잘 돌아올 수 없게 뭉게뭉게 큰 고민들이 연속으로 피어날 때도 있다.
그럴 땐 고민을 살짝 비틀어 한국에 가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디에 먼저 가고 싶은지를 떠올리려고 한다.
어떨 땐 사소하고 귀여운 고민들이 큰 고민들 사이로 쏙쏙 들어가 완충작용을 해주니까.
나의 윈터링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윈터링도 뜨겁게 응원한다.
-희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