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방법
눈이 마주치면 너무 쉽게, 아주 간단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곳.
"Hi", "Hello", "How are you"
공원을 산책하다가도 맞은편에서 오고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인사 혹은 "Hi!"를 한다.
사실 큰 대도시는 잘 모르겠다. 소도시와 인구밀도가 다르니까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기엔 목이 쉴지도 모른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랑 마주쳤을 때 밝게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 날의 에너지가 올라가는 건 나만 그런 걸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낯선 사람이지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는 기분이다.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인사의 민족이지만, 우리는 인사에 자연스레 존중과 예의를 담는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는 동작이 기본이 되고, 그만큼 조금 더 조심스럽다. 같은 인사라도 이곳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고 할까.
여기서 매일같이 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주다 보면 학교 선생님을 자주 마주치곤 한다. 그런데 초반에 선생님이 나를 보고 “Hi!"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면서 "Hello"를 했고, 그 순간에도 이건 여기 인사법이랑 좀 다른 거 아닌가 싶어 오른손도 흔들었다. 결국 고개를 숙이며 손은 흔드는, 나조차도 어색한 인사법이 완성됐다. 흐흐
뭐 그건 내가 한국사람이니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사를 할 때 고개를 숙이니까. 이곳의 인사에 익숙해진 지금은 선생님을 만나도 멀리서 손을 흔들며(마치 친구를 만난 것처럼) "Hi, How are you~!" 하고 인사하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은 학부모 입장에서는 늘 어려운 존재긴 하지만,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면 심리적인 거리감이 확 줄어드는 걸 느낀다. 또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느낌이 든다. 마치 같이 아이 교육을 분담하고 있는 동지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면 한국인의 사고방식에서는 조금 지나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심리적 거리감'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단순히 '인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거리감을 얼마나 줄여주는가에 대한 실험을 본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사람이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실수로 엎은 것처럼 한다. 다른 조건은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인사를 하고 탔을 때'와 '인사를 하고 타지 않았을 때'이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를 실수로 엎을 경우, 도움을 받을 확률과 주변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사를 하고 탔을 경우'가 도움을 받거나 이해를 얻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설령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인사한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주고, 조금 더 포용적인 마음이 된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사실 인사는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한 수단만이 아니다. 튀르키예와 영국의 어느 대학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길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상대방에게 하는 인사가 공동체 소속감을 높여 결국 자신의 외로움을 덜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가 앞서 이야기한 '다른 이들과 밝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올라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Amazing!
이곳에서 내가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이 사회에서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한 이방인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인사를 해도 그냥 무뚝뚝하게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아주 가끔 있다. 못 들었거나, 작은 무시를 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나는 나대로의 인사를 하는 것이니까.
'인사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와 한국에서 약간의 논쟁을 벌였던 일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우리는 시내버스로 같이 통학을 했었다. 나는 버스를 타면서 운전기사님께 '안녕하세요.'를 항상 하는데, 아이는 아주 작게 하거나 안 하고 타는 경우가 있어서 한 번은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왜 버스탈 때 인사를 안 하니?"
".. 엄마만 인사하던데요. 다른 사람들은 안 하고 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조금 부끄러워요."
"인사하는 사람이 왜 부끄럽니, 인사를 안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지. 쑥스러워서 못하는 거면 목례라도 해.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다 줄 분들이야. 인사하는 게 당연해."
"... 알겠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마쳤지만, 아이는 그 후로도 인사를 할 때도, 안 할 때도 있었다.
요새는 아이와 산책을 나가면 아이가 먼저 눈을 마주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Hello"를 하는 것을 본다. 쇼핑몰에서 뒤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조용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작은 변화들이 바로, 아이와 내가 여기서 같이 성장한 부분이 아닐까?
한국에 돌아가서도 낯선 사람과 인사하는 게 너무 무겁지 않았으면 한다.
인사는 꼭 '예의범절을 지키기 위해, 감사나 존경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하는 것 이전에, 먼저 사람과 사람사이 소통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겉으로 막 드러내지 않아도 속 깊고 정 많은 사람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인사까지 잘 나누는 사회가 된다면 삶의 만족도는 기대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한다.
쑥스러워도 한 번 인사를 해보자.
엘리베이터에서 또는 동네에서 자주 지나치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 한 번으로 그 하루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공원이 날 살렸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상대방에게 하는 인사가 공동체 소속감을 높여 결국 자신의 외로움을 덜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