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조용한 공존
언젠가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10년 전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방사선 치료와 항암을 견딘 뒤 수술을 받으셨다.
그 과정은 말할 것도 없이 고된 것이었다.
첫 번째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하고 대장과 직장을 이어두었지만, 방사선치료로 조직이 섬유화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부위가 터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수술로 대장의 일부를 배의 바깥쪽으로 빼서 인공항문으로 쓰는 '장루'를 달았다. 병원에서는 장루를 달고 있는 건 잠깐이라고 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세 번째로 장과 직장을 다시 잇는 수술을 했지만 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네 번째 수술까지 거쳐서 다시 장루로 돌아왔다. 병원은 과실을 인정했고, 엄마는 평생을 장루와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그 모든 치료를 받는 동안 엄마는 걷는 일을 놓지 않았다. 방사능치료를 받고 오면서도 걸었고, 항암으로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와 중간에 구역질을 하면서도 걸었다. 마치 공원을 걷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처럼 걷곤 했다. 수술하고 움직이기 힘들 때조차 ‘공원을 좀 걷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실 정도였다.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땐 공원을 운동삼아, 일삼아, 삶의 한 부분으로 매일을 한결같이 걸었다. 10년도 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원은 엄마의 안식처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요즘은 당뇨관리를 위해 아버지도 함께 공원을 걷고 계신다.
현재 엄마의 몸에는 암세포가 없다. 전이도 되지 않았고, 검사도 늘 깨끗하다. 여전히 배에는 인공항문이 달려있지만.
엄마는 집 주변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에너지로 늘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도 엄마는 말한다.
“공원이 날 살렸어.”
엄마 덕분에 나 역시 공원을 좋아하게 되었고, 내가 아팠을 때도 공원산책을 거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공원은 우리 엄마를 살렸으니 나도 살려줄 거라고. 그렇게 굳게 믿으며 어느새 나는 ‘공원러버’가 되어 있었다.
여기 캐나다 런던시티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정말 많다.
구글맵에서 '공원'을 검색했더니 끝도 없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여기에 있을 동안 이 공원들을 다 가보겠다고 결심했지만 현실적으로 다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거의 스무 곳에 달하는 공원에 들렀다. 산책을 하러 간 곳도 있고, 이름만 보고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간 곳도 있다.
동네 공원의 경우는 놀이터만 있고 이게 공원이 끝인가 할 정도의 작은 규모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잔디가 잘 깔려있고 널찍한 축구장 하나쯤은 들어갈 만큼 넓었다. 템즈강(이 런던에도 템즈강이 있다)을 끼고 있는 공원들은 길게 이어지는 긴 산책로가 있고 비슷한 듯 조금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히 마음이 가는 공원도 두세 개가 생겨 한동안 그곳만 다니기도 했다.
공원을 천천히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도 그렇지만, 나는 여기 공원에서 특별한 것들을 발견했다.
바로 나무 밑이나 벤치 주변에 있는 'memorial plaque(기념 명판)'.
처음에는 ‘혹시 여기 유골이 묻혀있는 걸까? ‘ 했지만 찾아보니 그것은 아니었고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를 기리는 방식이었다. 즉, 시의 공원에 나무나 벤치를 기증하거나 기부하고, 고인의 기념 명판을 새겨두는 것이었다.
’아, 이건 참 좋다.‘
그걸 보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공원이 자기를 살렸다고 말하는 엄마.
꽃과 나무와 공원을 사랑하는 엄마.
언젠가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엄마의 이름이 매일 걷던 공원의 벤치 아래에 이렇게 예쁘게 석판에 새겨져 있다면, 공원에 갈 때마다 엄마를 느낄 수 있을 텐데.
하루는 공원을 산책하다 강이 보이는 벤치에 잠시 앉으려다 발 밑에 두 개의 기념 명판을 발견했다. 찬찬히 읽어보니 두 분은 부부였고, 명판에는 그들의 생애와 가족들과 친구들이 남긴 사랑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나란히 있는 명판이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벤치에 앉았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태어난 날도, 떠난 날도 다르지만 지금은 서로 나란히 함께 있는 그들의 명판을 보면서,
'두 분은 많이 사랑하셨나요? 거긴 어떤가요?'
그런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마도 그때 부모님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날 사랑하는 두 사람을.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코를 훌쩍이며 자리를 떴다. 그 뒤로 명판이 붙어있는 벤치나 나무를 보면 한 번쯤은 멈춰서 읽어보곤 한다.
명판에 있는 이들이 모르는 사람들이면 어떤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공원을 좋아했을 사람들, 몇 년 전까지는 생생히 살아있었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친근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조용히 부탁해 본다.
'당신들이 좋아했을 이 공원이, 오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게 지켜줘요.'
캐나다의 공원에는 삶과 죽음이 한 자리에 조용히 공존하고 있다.
누군가는 살아서 걷고, 누군가는 기념 명판으로 남아 걷는 이들과 공원을 지켜본다.
먼 훗날에, 나도 석양이 아름다운 공원의 한 벤치 아래 석판이 되어
계절마다 달라지는 공원을 느긋하게 굽어보고 있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이건 내가 이곳의 공원을 즐기는, 조금은 별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_부러움과 축제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