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과 축제 사이
다른 나라에 가서 생활하다 보면 '이런 점은 참 배울만하다. 좀 부럽다'
또는 '이런 건 좀 불편하다. 우리나라가 더 낫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건 짧은 외국생활에서 느끼는 단편적인 면일 것이다.
몇 개월 살아본 것만으로 ‘여긴 이렇고, 저긴 저렇다. ’라고 쉽사리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캐나다에서 지내며 부럽다고 느낀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사실 정말 부럽기 때문이다.
일단, 평일 아침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샛노란 '스쿨버스' 이야기로 시작해 본다.
이 노랗고 네모 반듯한 스쿨버스의 위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계신지.
캐나다에서 운전을 하려면, 스쿨버스 관련 교통법규는 꼭 알고 가야 할 것이다.
•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STOP사인을 펼치고 서면, 그 뒤 차는 물론 옆 차선, 심지어 반대편 차선의 차들까지 모두 멈춰야 한다. 특히 STOP 사인이 펼쳐진 스쿨버스를 추월하는 것은 엄격 금지.
이걸 지키지 않으면 최대 $2,000에 이르는 벌금과 높은 벌점을 각오해야 한다. 그것도 ‘처음’ 어겼을 때 이야기고, 5년 내에 또 어기면 징역형까지 갈 수 있다고 하니 관련 교통법규가 얼마나 강력한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건 '스쿨버스' 법규 자체가 아니다.
더 나아가 캐나다에서 ‘약자'를 대하는_ '장애인, 아이, 노인'처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마치 상식처럼 이루어지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에 와서 캐나다에서 '국민영웅'이자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뽑히는 '테리폭스(Terry Fox)'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사고로 큰 장애를 가지게 된 이 청년은 의족을 달고 자선 마라톤을 뛴 육상선수이자 사회운동가였고, 암으로 22세에 생애를 마감했다. 매년 캐나다 전역에서는 테리폭스 런(Terry Fox run)이 열리고, 이 자선행사는 '암 연구 모금'으로 기부된다. 초중고 학교에서도 그날 하루는 수업을 하지 않고 그를 기념하며 달린다. 희망과 끈기의 아이콘이 된 테리폭스는 2024년에 5달러 지폐의 새 얼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Terry Fox Run'을 하고 온 날,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에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우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했다. 또 학교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 전담교사가 있고, 그 채용과 비용에 대해서도 모두 나라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일상 속에 [약자에 대한 배려]가 곳곳에 스며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로 이런 점, 솔직히 부럽다.
다음은 이들의 [국기사랑]이다. 길을 다니다 보면 캐나다 국기가 나부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게 가정집 앞이건, 슈퍼마켓이건, 쇼핑몰이건 상관없이. 또 밖에 꽂혀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빨간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는 도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캐나다산 식품이나 물건에는 꼭 캐나다국기가 그려있고, CANADA라고 크게 쓰여있거나 국기가 그려진 모자나 티셔츠를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것도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물론 디자인만 놓고 보면(사람마다 의견은 다르겠지만), 캐나다 국기는 깔끔하고 단순하다. 우리나라 태극기에 비하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진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지만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번 보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독특하고 균형감이 뛰어나지 않은가?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평소에 입고 다니는 티셔츠에, 모자에 태극기를 붙여 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국경일도 아닌데 집에 태극기를 아무렇지 않게 달아놓는 분위기라면 또 어떨까?
어느 순간부터 이 아름다운 태극기가 특정집단의 전유물처럼 소비되기도 하고, 심지어 '태극기'가 들어간 단어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게 마음이 참 아프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위상이 더 올라가길 바란다. 국가대표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태극기를 자연스럽게,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닐 수 있는 분위기면 좋겠다. 그게 국가에 대한 건강한 자부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국기사랑],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부럽다.
마지막은 [계절과 시기를 즐기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여름끝자락에 도착한 캐나다에서 땡스기빙데이(Thanksgiving), 핼러윈(halloween), 크리스마스(Christmas) 시즌을 보내고 가게 되었다. 근데 때마다 놀라는 것은 어딜 가나 그 시즌별 장식과 준비에 열성적이라는 것이다.
쇼핑몰은 물론이거니와 동네 슈퍼마켓을 가더라도 해당 시즌을 위한 물건들이 확실히 구비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맞게끔 집 안팎을 장식을 하거나 꾸미는 데 정성이다. 예를 들어 핼러윈을 앞두고 거리를 거닐다 보면 집집마다 핼러윈을 위해 크고 작게 호박이며, 다른 소품들로(아주 대단하게 하는 집들도 많다) 그날을 위한 준비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또 핼러윈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준비한다. 호박과 으스스한 용품들은 자취를 감추고, 크리스마스트리와 리스가 진열되어 있고, 한 달도 전부터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와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기 시작한다. 집들은 이미 트리와 크리스마스 전구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매년 돌아오는 시즌을 이렇게나 열성적으로 즐기다니?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해 저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서 처음에는 약간 '유난이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정성껏 소품과 장식들을 골라 가족들과 기쁘게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런 게 바로 '현재'를 즐기는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25년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즐기라며 학교에서 '며칠. 어느 동네에서' 퍼레이드가 있는지 정리해 놓은 리스트를 줬다. 이렇게 많은 퍼레이드가 동네마다 열린다니 놀라웠다.
얼마 전, 내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소도시에 저녁 6시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퍼레이드를 보러 다녀왔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메인스트릿에는 5시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추위에 단단하게 무장했다. 털모자에 장갑, 스키복과 같은 옷에 담요와 앉아있을 의자까지. 텅 빈 도로의 주변에서 퍼레이드를 하는 차량들을 기다리며 어른이고 아이고 모두 들떠있었고, 여기저기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차량 경적소리가 섞여 들려오며 반짝반짝한 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처음 아주 천천히 들어오던 차는 다름 아닌 경찰차였다. 뒤이어 소방차, 앰뷸런스까지. 사이렌을 울리며, 경광등을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생경했지만 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필수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퍼레이드의 맨 처음에 나와 축제를 알리고 있었다. 인파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뒤이어 지역의 하키팀, 축구팀, 댄스아카데미, 농장과 교회, 학교, 화물차들까지 줄줄이 나와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때로는 춤을 추며, 하이파이브를 하며, 손을 흔들며,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며 Merry Christmas를 외치며 걷고 있다. 아이들이 속한 악대가 나와 연주를 하며 걸었을 땐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이 시즌을 같이 즐기기 위해, 다들 이 퍼레이드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구나. 보는 사람들도 모두들 한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구나. 정성을 다해.
거의 2시간에 달하는 퍼레이드가 끝나갈 무렵, 그저 매년 돌아오는 시즌이라는 생각에 뭐든 무덤덤하게 지냈던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내 삶의 모토를 "삶은 축제다"라고 정했지만 막상 나는 그동안 삶이라는 축제를 얼마나 즐기고 있었을까. '지금'과 '현재'에 얼마나 충실히 살고 있었나.
그들의 [계절과 시기를 즐기는 마음]은 내가 늘 외치는 '삶은 축제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매년 돌아오는 시간을 그저 반복되는 계절로 보지 않고, ‘함께 즐기는 축제’로 만들고 있던 이곳.
[북쪽의 축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사적이고, 소소한' 것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