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귀여운 고민들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사소한 고민들을 종종 한다.
아니, 매일같이 한다.
마치 '고민'이라기보다는 루틴이다. 이 고민들은 쓸데없는 것일까?
나의 '고민'은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도시락메뉴는 뭘로 하지
한국에 있을 땐 미처 해보지 못한 고민이다. K-급식이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지 몰랐다. 여기서는 도시락을 싸야 한다. 종종 Hot lunch라고 핫도그나 피자 같은 걸 미리 오더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만, 지금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한 달에 두 번뿐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 일주일은 도시락메뉴를 미리 계획했다. 볶음밥, 주먹밥, 삼각김밥, 토스트, 샌드위치.. 등등 그런데 평일 내내 도시락을 싸야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메뉴]가 중복될 수밖에 없다. 큰 틀은 고정한 채 속재료만 바꾸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참치마요주먹밥을 했다가 소고기주먹밥을 했다가. 볶음밥도 그렇고, 샌드위치도 마찬가지다. 요리에 큰 재주가 없는 손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루는 치킨덮밥과 여러 반찬을 해서 넣어줬더니 반 정도를 남기고 왔다.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별로 맛이 없었어? “ 물었더니 다 먹을 시간이 없단다. 그렇다. 이곳은 런치타임이 고작 '15분'이다.
밥과 국, 반찬이 있는 급식을 다 먹을 정도의 시간이 아니다. 스낵타임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것도 10분. 뭘 먹을 수 있는 시간이 25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씀. 그럼 다른 아이들은 대체 뭘 싸 오는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빵 한 조각과 과일 조금, 그냥 비스킷만 싸 오는 경우도 있단다.
"엄마, 얘네들은 엄청 간단하게 먹어"
아니, 그걸로 오후까지 버틴다고?
체육활동에 진심인 이 나라의 학교에서, 한참 커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먹고도 키가 월등히 큰 것은 유전의 힘인가, 아니면 그 간단해 보이는 빵과 비스킷의 성분이 다른 걸까. 앗, 혹시 저녁을 엄청나게 대단한 것들을 먹이나?
나는 간단하면서도 영양이 있는 도시락 메뉴를 고민하다 결국 삼각김밥의 속재료를 바꾸는 걸로 해결한다. 아, 매일 고민되는 엄마의 도시락.
둘째, 밤에 글을 써도 될까
아침에 일어나면 도시락고민과 함께 아이 학교 보낼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대부분의 글은 아이가 학교에 있는 오전이나, 오후에 각자의 시간을 가질 때 쓰곤 한다. 그런데 꼭 자기 전에 노트북을 펴서 글을 쓰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의 글들은 여지없이 조금 블루하다.
밤에는 연애편지도 쓰지 말라고 했던가. 신파가 된다나. 감정들이 요동치는 밤에는 내가 원하는 담백한 글을 쓸 수 없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글, 마음을 정리하는 글, 조금 고된 하루였지만 결국 좋았다고 하는 글을 기어이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고요하고 차가운 밤, 처음에는 뾰족하게 시작해도, 결국은 둥글게 마무리되는 것이 밤에 쓰는 글의 묘미인 것 같다.
40이 넘도록 나는 내 수면 패턴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밤형 인간 인지, 아침형 인간인지도 때론 헷갈린다. 밤 1시 정도에 자서 8시에 일어났을 때 제일 하루의 컨디션이 좋았던 것 같다는 결론 정도는 있다. 캐나다에 와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밤 12시 넘어서 눕는 일을 지양했으나, 금요일 밤에는 역시 혼자 조용히 늦게까지 글을 쓰고 싶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적인 고민 하나는 밤에 글을 쓸까 말까라는 것이다. 결론은 ‘쓰고 싶으면 언제든지 써라’가 되겠지만. 고민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밤에 글을 쓰고 블로그라던가, 스레드라던가에 올리거나 하면, 아침에 읽고 오글거려서 지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밤에 글을 쓰면 바로 어딘가에 업로드하지 않고, 아침까지 묵혀두는 건 어떨까?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고 숨이 죽길 기다리는 것처럼.
감정이 요동치다가 사그라드는 글을 굳이 '날 것'으로 세상에 내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역시 밤에 쓴 따끈한 글을 바로 어딘가 올리고 싶은 날이 있다는 게 바로 사적인 고민..
셋째, 토요일에 나갈까 말까.
별로 하는 것 없이 빈둥거리는 토요일을 좋아한다. 주중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하루 정도는 나에게 그런 여유를 선사할 수 있지 않은가? 한국에 있을 땐 주로 토요일 오전에 요가수업을 했고, 가끔은 같사남과 내가 ‘부대정비’라고 부르는 것들을 했다. 집청소라던가, 평일에 잘 못했던 것들.
여기서는 토요일에 일찍 눈을 떠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천천히 생각한다. 이번 주 평일은 잘 보냈던가, 기억해 둘 만한 것이 뭐가 있었더라. 오늘 날씨가 어떻지? 공원엔 한 번 다녀와야겠군. 내 시간도 여유롭게 가지고 아이와 한 가지 놀이를 하자. 이런 생각을 하다가 30분 정도 휴대폰에 깔린 앱으로 영어공부를 한다. 일어나자마자 내 뇌에 영어를 넣어주면 좀 더 효과가 있을까 싶어서.
그렇게 느지막이 일어나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있는 아이에게 배고프지 않냐고 아침을 먹자고 한다. 가을부터는 토요일 오전끝자락에 스포츠 수업을 넣어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좀 짧아졌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역시 토요일 오전이다.
겨울이 되니 토요일이라도 나가기 꺼려진다. 캐나다에서 토요일에 집 밖에 안 나가는 건 아까운 일일까, 아니면 하루쯤은 집에서 정비하는 게 좋을까?
아니 그러니까, 이번 주 토요일은 나갈까 말까?
사소한 고민들을 늘어놓고 나니, 역시 이건 고민이라고 하기엔 좀 귀여운 것 같다.
어찌 보면 '갭이어(gap year)의 시간으로 캐나다에 와 있는 동안, 한국 가서 '어떻게 살면 좋을까' 하는 진중한 고민을 깊이 하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큰 고민에만 깊이 빠져 있기에는 이곳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 인생의 '큰 고민과 결정들'의 사이사이에 소소하고 귀여운 고민을 하면서 매일의 나에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아이가 도시락을 다 비워온 날, 밤에 글을 썼지만 아침에 봐도 꽤 괜찮은 글이 나온 날, 토요일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는데 눈이 예쁘게 온 날..
일상의 작은 고민들과 그에 어울리는 작은 결정들에 따라
그 시간들 또한 행복한 순간들로 기억될 것 같다.
여기, 이곳에서.
-희노가
*지난 이야기: 눈이 올까요?
*다음 이야기: 솔직히 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