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종은 괴로워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몇 개월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인가. 이곳에서 나도 모르고 있던 모습들이 그야말로 낯설게,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다.
나름 생각한 용어로 표현해 보자면,
나는 '시나브로, 잡종(*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잡종)'의 상태이다.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내가 혼재되어 있었음에 화들짝 놀라곤 하는데,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입이 혼자서 자꾸 구시렁거리고, 다소 과격해진다. 캐나다는 큰 나라답게 덩치가 큰 차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운전도 한국보다 더 터프한 느낌이 든다. 특히 속도에 민감하다. 원래는 너무 빠르게 달리는 것에 민감한 줄 알았더니, 너무 느리게 달리는 것에 더 민감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북쪽의 계절 연재 2화 참고)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Too Slow로 리포트까지 당했으면서, 이젠 평균속도보다 너무 느리게 달리는 차 뒤에서 구시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은 어떤가.
한 번은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앞에 있는 도*타 캠리 골드색이 도통 느리게 간다. 게다가 차선을 자꾸 자전거도로를 침범하면서 달린다. 나는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아 진짜, 왜 저러지? 조는 거 아니야? 아니면 약을 한 거 아니야?(약을 하면, 흥분상태로 오히려 행동이 느려진다고 들었다)"
그러다 앞 앞의 차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파란 불인데도 얼른 지나가지 않고 느릿느릿하길래 뒤에서 빵! 하고 클랙슨을 한 번 눌렀다.
'정신 차려!' 이런 의미였다.
얼굴을 보니 아뿔싸. 딱 봐도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다. 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계신 것도 그제야 보인다. 사이드미러로 나를 힐끗 보는데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도 했다)
‘아구 할아버지, 운전 똑바로 하셔야죠!!’ 그런 생각과 조금 죄송스러운 생각이 동시에 든다.
캐나다는 차를 운전하지 않고는 생활하기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에 고령자가 운전하는 경우를 꽤 많이 본다. 고령의 운전자를 보면 ‘대단하시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저런 불안을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도 고령 운전자의 조작실수로 인한 사고를 몇 번이나 뉴스로 접했고, 얼마 전 여기서도 그런 뉴스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나이만을 잣대로 '어떤 연령이 되었으니 면허 반납하고 운전 그만하세요!' 하는 건 운전이 꼭 필요한 고령자에게 적절한 처사인가?
운전할 때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나 '모순된 생각'들을 동시에 하고 있는가를 깨달을 때, 이런 생각들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차마 글로는 다 담기 어려운 순간들과 찰나의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가령 마트에서 두 분이 손을 꼭 붙들고 다정하게 쇼핑하는 노부부를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나 역시 나이 들어서 언젠가 저분들의 나이가 되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그럼 평생 젊을 줄 알고?)
한 마디로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지만, '늙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 나의 모순이다.
또 평소에 나는 '인종과 나라에 대한 편견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양한 인종과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이민자의 천국 캐나다에서, 가끔 특정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레이시즘(인종차별주의적인)이 잔뜩 담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나 역시 이방인이지만 다른 이방인에 대한 편견, 아니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짧은 경험으로 순간순간을 판단하고 있는 나. 내가 원하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의 위화감에 정말로 '모순덩어리'로구나, 생각한다.
모순된 생각을 몇 개 더 나열하자면 이렇다.
젊고 한껏 멋 부리고 다니는 세대를 바라보면서 부러움과 젊음의 부질없음을 동시에 느끼는 것.
벌써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이곳에 계속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
또 인생은 짧고, 세상은 드넓으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싶지만,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은 게으른 자연인이고 싶기도 하다.
때로는 한국에서 요가원을 운영하고, 매일 사람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던 것이 아득한 꿈같이 느껴진다. 한국 가면 다시 꼭 일을 해야지 하다가도, 그냥 이대로 같사남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소박하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은 마음이 종종 올라온다.
글로 마음이나 좀 다듬고, 에세이라고 쓰고 잡문이라고 읽는 글들을 쓴다.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지만 내 이름으로 책은 몇 권 낸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건 또 어떨까.
이런 생각까지 드는 걸 보니 계속해서 '작가'로 살고 싶지만 '작가'를 물(?)로 보는 건 아닌 지.
그렇다면, 잡종에 이어 '잡문'이라는 건 과연 나쁜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출판사에서 주로 에세이를 편집하는 유명 편집자가 쓴 글에서 에세이를 ‘잡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다른 이들이 쓴 것을 '잡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문학 분야를 얕잡아 보며 쓰는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쓴 글을 ‘잡문’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하루키 잡문집'도 있고 말이다)
즉, 스스로가 자신을 '잡종'이라고 칭하고, 나는 ‘잡문’을 씁니다.라고 하는 건 괜찮다는 것일 테다.
나는 이곳에서는 '이방인'으로 있다가 돌아가겠지만, 서울에 돌아가서도 당분간은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몇 개월 다른 나라에서 살아봤다고, 몇십 년을 살았던 한국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며 혼란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실은 예전에도 그랬다. 일본에서 사계절을 모두 겪고도 남는 시간을 보내고 오니 외모도 행동도 '일본여자'같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또 지하철에서 부딪혀놓고 사과도 안 하고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가 나서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친절한 거야.' 하고 얼마나 불만을 가졌던지. 여러 가지가 섞여있는 모순덩어리에 잡종인 건 한국에서도 여전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디서든 잡종에 혼종이라면 말이다. 나는 이왕이면 '긍정적 잡종'이고 싶다. 또 모순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건설적'으로 하고 싶다.
얼마 전부터 운전하면서 구시렁거리는 것이 진짜로 나쁜 습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싶다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파란 불에 내가 건너갈 수 있게 되면 그때마다 '빨리 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입 밖으로 외친다. 앞에 같이 가던 차가 우회전이나 좌회전해서 나와 경로가 달라질 때면 '잘 가~감사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감사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냥 감사합니다. 혼자 말하고 있다 보면 약간 나사가 빠져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며칠 안 되어 이 잡스러운 행동이 긍정적인 효과를 지녔다는 걸 알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에서 "엄마, 뭘 자꾸 감사하다고 하는 거야?" 하고 묻길래 "내가 자꾸 운전대만 잡으면 입에서 나쁜 말이 나오기도 하고, 좀 그렇더라? 그러길래 바꾸기로 했어. 감사합니다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래? 옆에서 듣기는 좋네." 한다.
오, 성공이다. 성공이야.
그래, 잊고 있었지. 말과 글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또 하나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매일 '2시간'으로 늘렸다는 것. 지금의 영어실력은(실력이랄 것도 없지만) 여행영어 수준으로, 삶에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이 수준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다. 캐나다에 있는 시간을 축제처럼 즐기려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지낼 수 있게,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있고 싶어서다.
그 외의 모순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떻게 하냐고?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지 않는 법을 고민해보고 싶다. 나는 '왜 이럴까'보다는, 그러면 나는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하고. 아주 조금씩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생각을 조절하는 건 어떨까. 이럴 땐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저럴 땐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나 자신을 좀 더 알아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특히, 이런 잡문을 쓰면서 내 마음과 생각을 다듬어가는 과정은 놓칠 수 없는 진화의 과정이 될 것이다. 잡종에서 좀 더 나은 잡종으로의 진화.
고로 나는 '시나브로, 잡종'을 당당하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시나브로, 진화'로.
-희노가
*지난 이야기: 보통의 아침, 오리출현
*다음 이야기: 눈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