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아서 더 아름다운 계절,
예전부터 나는 '봄'보다는 ‘가을’을 더 좋아하고, 그 계절이 오면 마음이 설레곤 했다.
싱그럽게 돋아나는 싹들과 막 피어나는 화려한 꽃들도 아름답지만 역시 나무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색색이 옷을 갈아입고, 열매를 맺는 계절에 더 마음이 간다.
운이 좋게도, 단풍을 유난히 사랑하는 나라에 와서 하루하루 다르게 깊어져가는 가을을 내 눈으로 감상하고 있다. 가끔은 이게 현실인가 싶을 때도 있다. 누군가는 가을은 쓸쓸하고, 금세 감상에 빠져버리는 계절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햇살이 따뜻하다가도 해가 지면 금세 찬바람이 휘잉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내 삶의 계절과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나 인생에 사계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계절들이 있고, 수많은 바람과 파도가 늘 오고 감에 따라 각각 다른 계절들이 펼쳐지겠지만.
한국의 추석명절이 다 끝나고 나니 이곳의 가을명절과도 같은 <Thanksgiving day>가 찾아왔다. 나에게는 처음이자 또 마지막일 수도 있는 땡스기빙데이였다. 이 시즌에는 어딜 가나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움직이고 모이는 게 눈에 띈다. 나 역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더 그리웠다.
그날, 칠면조를 맛있게 요리할 자신은 없어서 닭고기로 대체해서 양념해서 재워두었다. 오후엔 뭘 하지? 하다가 날이 너무 예뻐서 런던시티에서 단풍이 아름답다는 곳을 골라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찾아보니 가까운 곳에 케인즈우드(Kains woods)라는 환경보호구역이 있는데 2시간-3시간이면 돌 수 있는 완만한 하이킹 코스가 있다고 했다. 아, 여기 매일 옆을 지나가는 곳인데?
집에서 차로 불과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주차를 갓길에 해두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공기가 확 달라졌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나무냄새, 다채로운 색깔들의 향연에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아아, 가을이다. 진짜 가을이구나.'
걷는 내내 감탄하면서 가을 속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자연이라는 커다랗고 따스운 보자기에 싸여있는 기분이었다. 부모님이 함께 오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같사남도 이런 거 좋아하는데.)
가족이랑 같이 있지 않을 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마치 <언젠가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 이치와 같은 것이려나.
아이와 함께 땀이 은근하게 날 정도로 걷다가 출출함을 느끼고는 잠시 쉴 자리를 찾아봤다. 환경보호구역이라 그 흔한 벤치도, 화장실도 없었다. 우리는 강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나무 밑 흙바닥에 털썩 앉았다. 배낭에서 점심으로 싸 간 삼각김밥을 꺼내다가 앞에 펼쳐진 단풍과, 또 단풍이 강물에 비춰서 은은하게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한없이 보고 있자니 약간 다른 세상에 와있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수채화라는 건 이걸 말씀하신 거였구나.'생각했다.
바로 얼마 전, 런던에서 오랜 기간 지내신 분이 '단풍'이야기를 하시면서 한국의 단풍은 쨍한 느낌이 들면서 예쁘지만 여기는 단풍이 느낌이 좀 다르더라고, 마치 '수채화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 말이 깊이 와닿았다.
언제 이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과 또 올 수 있을 땐, 우리의 모습도 지금과는 달라져 있겠지.
아직 가을보다는 봄의 싱그러움을 닮은 아들은 익어가는 단풍잎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멋지네" 정도가 아마 최고의 칭찬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같이 단풍구경을 간 적은 없었다. 이런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네가 엄마의 그 마음을 알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삼각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도 얼른 먹어요('드세요'다 인마)"
응, 하면서 이내 따라서 얼른 먹고, 아들이 주머니에 챙겨 온 젤리빈까지 먹고 나니 그 순간만큼은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오늘은 이걸로 됐다. 더 어떻게 잘 지내겠어.
그 후로 수채화 같은 단풍을 며칠간은 감상할 수 있었다. 일부러 공원을 찾아가고 눈에 담기 바빴다. 비와 바람이 잦은 탓에 단풍들은 하루가 다르게 나무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땅에 떨어진 단풍잎 중에 예쁜 것들을 주워서 말려뒀다가 나중에 엄마께 갖다 드리면 좋아하실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수채화 같은 캐나다 단풍이에요~'하고 말이다.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예쁜 낙엽들을 찾기 시작했고 예닐곱 개를 고이 주워서 종이봉투에 담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깨끗하고 예쁜 것만 골라서 가져왔는데, 하루 뒤에 책에 껴 놓으려고 보니 낙엽들이 처음 주웠을 때의 느낌이 아니었다.
'이상하다. 열심히 고른다고 골랐는데 별로 안 예쁘게 보이네'
결국 단풍잎들을 테라스에 촤르르 펼쳐서 휴대폰 사진으로만 남겨 엄마께 보내드리고, 바람에 날아가도록 땅에 그대로 두었다.
집에 주워온 낙엽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은 그 이유는,
나중에 단풍이 반 정도 다 떨어져 공원을 덮고 있는 모습을 황홀하게 바라보던 날에 깨달았다.
단풍은 나무에 달려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낙엽은 바닥에 떨어져 서로 모여있을 때가 가장 예뻤다.
책 속이나, 실내는 그 친구들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두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걸, 사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다.
너무 짧아서 자꾸 붙잡아 두고 싶은 가을을,
낙엽이라도 주워서 간직하고 싶었던 수채화같이 물들었던 가을을,
이제는 서서히 보내줘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아름답고 짧은 가을을 보내는 것은 '좋아하는 것들과 이별하는' 연습이다.
우리, 내년에 또 만나자.
"삶은 축제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재발견의 시간
*다음 이야기: 보통의 아침, 오리 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