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견의 시간

커피, 쌀, 빨래, 그리고 테라스의 맛

by 희노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 문득 센티해졌다.


채널의 제목은 'Adult hits'였는데 1990년-2000년대 팝음악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곡들을 듣다 보니 찬란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일까. 집 앞에 도착했지만 차 안에서 한참 동안을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 정도로 차 안을 즐기게 된 것도, 나로서는 재발견 중 하나)


집으로 들어와 빨랫감을 정리하다가 문득 '아, 이런 건 한국에 있을 땐 몰랐던 것이네' 하면서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졌다. 과거만을 회상하면 센티해지지만 현재와 지금에 집중하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캐나다에 와서 지내면서 느꼈던, 소소한 일상의 재발견을 기록해 본다.


첫 번째 재발견은 바로, [달달한 커피의 맛].


한국에 있을 땐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처음부터 안 마셨던 것은 아니고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마시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매일 차를 마시다 보니 커피와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점점 시중의 커피들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원두가 유명한 곳에서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던 시기를 지나, 결국 커피라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누군가 아주 맛있는 커피를 내려준다고 하면 어쩌다 한 잔 마시는 정도다.


그. 런. 데

일반 원두커피도 아닌 믹스커피에 가까운 달달한 커피의 맛을 캐나다에서 다시 알게 되었다.

캐나다 국민커피집 팀홀*스의 'French vanilla'.


아이 학교 첫날, 나도 입학하는 것 같은 떨리는 마음으로 데려다주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렀던 곳이 바로 팀홀*스 매장이었다. 가긴 했으나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는 마시고 싶지 않아서 이곳의 시그니처라는 'French vanilla'를 사 먹은 게 시초이다. 처음에는 '우앗, 엄청 달다...' 했었는데 나중에 이상하게도 그 맛이 생각났다.


그 후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똑같은 매장에 들러, 달달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사이즈는 M이지만, 대국답게 양이 많다 보니 거기서 다 마시지 못하고 차에서 사용하는 텀블러까지 구비하게 되었다.


이 프렌치 바닐라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 것일까? 가끔 바짝 정신을 차리게 해 줄 ‘당’이 필요해서 마시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매일만 아니라면 용인해 줄 수 있는 재발견이다. 차(茶)는 다구까지 바리바리 싸와서 이곳에서도 마시고 있었지만 달달커피가 가끔 한 잔 추가되었다고 보면 되겠지.


두 번째, [쌀]의 재발견.


솔직히 말하면 ‘밥’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약간 창피한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서울에 있을 땐 집에 전기밥솥이 없었다. 이건 물론 긴 사연이 있는 이야기지만, 가까운 친정엄마의 집에서 밥을 갖다 먹었다. 그것도 쌀이 아니라, 다 된 밥을 갖다 먹었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각설하고, 집에서 밥냄새를 풍기며 밥을 한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에서 살림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던 티가 팍팍 난다.


그랬던 내가 캐나다에서 와서 단 한 달 만에 아이와 둘이서 8킬로의 쌀을 먹어치웠으니 이것이야 말로 쌀의 재발견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도시락을 매일 싸야 하기도 하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쿠*밥솥도 여기 있어서 늘 밥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 역시 하루에 한 끼는 무조건 쌀밥을 먹고 있다.


게다가 흰 밥이, 원래 이렇게 맛있었나..?


그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가 해주신 찹쌀잡곡밥을 다시 갖다 먹을 테다.

그게 최고니까.


세 번째, [빨래하는 맛]을 알게 될 줄이야.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화요일은 <Clean Up day>라고 지정해 두고, 거실 소파에 커다랗게 깔려 있는 담요와 쿠션, 안방의 침구류를 죄다 꺼내어 세탁을 한다. 한국에 있을 때도 침구류 세탁은 꽤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우리 집 남자들 모두 집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침구류를 깨끗하게 해줘야 했다.


그렇게 세탁은 자주 했으나 가전이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우리 집엔 건조기가 없었다. 건조기가 있으면 정말 편하다고 들어서 나중에 알아보긴 했지만, 종국에는 세탁실이 건조기를 올릴만한 높이가 안 돼서 포기하고 자연건조를 했었다.


이곳엔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구비되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빨래에 투자하는 시간이 절약되는 데다가, 아침에 세탁해서 놀랍도록 폭신해진 침구류를 그날 저녁에 새로 덮고 잘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마 이건 캐나다 와서 새삼 ‘빨래의 맛’을 재발견했다기보다는 건조기의 신세계를 안 것뿐인가. 한국 돌아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은 세탁기를 치워버리고 둘 다 되는 멀티로 바꾸는 것이다_라고 결심하고 있다. 건조기가 있다 보니 침구류뿐 아니라 모든 빨래를 더 자주 하고 있다. 털어서 말릴 필 없이, 그저 기계만 바꿔서 넣기만 하면 따뜻하고 뽀송뽀송해져서 나오는 빨래라니.

나도 모르게 기분까지 상쾌해지고 빨래하는 시간이 좋아졌다.


깨끗하게 나올 빨래를 기다리며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 읽는 그 시간, 그것도 빨래의 맛이 아닐지.


마지막, [테라스]가 있는 집의 재발견.


물론 예전부터 어렴풋이 로망은 있었으나, 뒤뜰이건 앞뜰이건 마당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보인다는 것은 역시 대단히 멋진 일이었다. 그것이 집에 빨리 들어오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도.

하얀 천장 대신 바깥의 정원을 보고 있으면 하루의 나쁜 감정들이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었다.(물론 커다란 마음의 쓰나미가 왔을 땐 소용없었지만)


이곳의 가을날씨라면 아침점심저녁 할 것 없이 테라스에 자꾸 나가서 앉아있고 싶다. 가끔 ‘모닝허세’라고 해야 하나, 날이 좋으면 굳이 아침식사를 가지고 나가 테라스에서 혼자 먹곤 했다.

아, 이런 게 사람 사는 게 아닐까.


그래. 맞아. 이런 집이다. 나중에 이런 집에서 꼭 살아야겠다.

'테라스가 있는 집' 말이다.


이렇게 쭉 써놓고 보니 캐나다에서 가장 큰 재발견은, 결국 나의 '욕망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난다.


"삶은 축제다"

-희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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