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차로, 몸으로 하는 대화의 기술

by 희노가

<대화의 기술_운전>


눈이 섞인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사실 날씨가 궂은 날엔 차를 운전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눈이 오건 비가 오건 삶은 계속 흘러가고, 또 흘러가야만 하니까 다 피하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사야 할 것이 있어서 혼자 큰 쇼핑몰을 다녀오는 길, 눈과 비가 섞여서 흩날리고 있었고 시야가 매우 좋지 않았다.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옆차선을 힐끗 보니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는 차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나는 직진차선, 그들은 좌회전차선이다. 좌회전 신호가 먼저 켜지고 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차 안에서 그들을 보며 아무도 들을 수 없지만 크게 이야기했다.


"눈도 오는 데 운전들 조심하시오! 어딜 가든 안전하게! Take care! "


그렇게 혼자 소리치고 나니, 갑자기 날씨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들고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차에서 혼잣말을 하면 아무도 못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말을 하는 내가 '듣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혼잣말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내 기분도 더 나빠지고, 좋은 말을 하면 기분이 밝아지는 데 확실한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결국 나에게 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날 나는 운전하고 오는 길에 만나는 앞차, 옆차, 뒤차 모두의 안전을 빌고 있었다.

'이런 궂은 날에도 굳이 운전해서 나오는 사람들은 일을 하러 가거나, 나처럼 볼 일이 있거나,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각자의 용건과 이유들이 있겠지. 다들 잘 가세요.'

그런 마음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도로 위에서 만나는 다른 차들 안에는 모두 '사람'이 타 있고, '사람'이 운전하는 것이다(이 당연한 것이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차는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아주 편리한 수단임과 동시에, 우리는 차를 탐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차'로 하게 된다는 사실을 늘 상기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좌회전을 할 때나 왼쪽으로 좀 들어가겠소 하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켠다던가, 비상상황에 '비상등'을 켠다던가, 속도를 좀 줄이고 있으니 당신도 줄이시오 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브레이크등이 켜지게 한다던가. 그것들 모두 차로 하는 대화라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깜빡이를 켜지 않고 다른 차 앞에 불쑥 껴든다거나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 텐데.

사실 차를 운전하는 습관을 보면, 저 운전자는 평소에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저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속단할 순 없지만 말이다. 또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도 가끔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도로에서도 대화가 안 통하는 운전자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도 좋겠다.


요즘은 특히 눈이 자주 오고 도로가 매끄럽지 않은 날이 많은 계절이다. 나는 차를 몰고 길을 나설 때, 나와 아이의 안전뿐 아니라 '같은 도로 위의 차들도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하고 작은 기도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서면 도로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Hi, How are you today?" 인사하며 가는 것 같아 운전이 즐겁기도 하고, 좀 더 조심하게 된다.


우리는 '차'로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대화의 기술_요가>


한국에서 요가강사로 오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종종 캐나다에 가서도 요가를 하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전처럼 매일은 하지는 못 하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 이상은 한다. 스트레칭 수준으로 아주 가볍게 할 때도 있고 조금 정성을 들여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절대 밀어붙이지 않는다]이다. '요가'는 내 몸과 대화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다. 몸과 하는 대화가 익숙해지면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목을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컨디션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내 몸과의 대화를 가벼운 요가동작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이곳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과 찻자리와 요가를 같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분들은 요가를 할 때마다 평소 잘 쓰지 않던 부위와 굳어있던 부분이 절실히 느껴진다고 하셨다. 때로는 "내 몸이 정말 왜 이래" 하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다. 몸과의 대화가 그동안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몸을 요가동작으로 밀어붙이지 않다 보니, 예전처럼 드라마틱한 몸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요가강사의 커리어나 욕심은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이 넓은 대지에 다 내려놨다. 훨훨. 이제는 더 자유롭게 '요가'를 대화의 기술로 장착할 준비가 된 것이다.


길게 보면, 내 인생에서 캐나다에 있는 시간들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단 한 장 사진처럼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헛된 시간은 없었다. 잊고 싶거나 버리고 싶은 경험도 없었다.

웃고 울고 화내고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크게 한다.


이제야 '차'로 하는 대화, '몸'으로 하는 대화를 이해한 것처럼.


"삶은 축제다"

-희노가


*지난 이야기: 인사의 확실한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