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한 장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중간에 거의 빈 종이 한 장씩이 인쇄되어 있다. 완전히 비어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전 챕터에서 편집자가 고른 문장 한 줄과 여백. 소설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산문집이나 에세이에서 종종 나타난다. 혹은 시집.
나는 책 사이에 있는 그 '여백'이 좋다.
'잠시 이 문장을 음미하면서 한 번 쉬어가' 하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여백이 있는 종이가 지나치게 많으면 읽는 흐름을 끊어버린다. 여백에도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그 여백이 있는 종이와 같은 상태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인가.
인생책의 챕터가 넘어가고 있는 어딘가에,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는 경계선에 서 있다. 그 여백은 왠지 점점 커져만 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너의 여백과 같은 시간에 잘 쉬고 있냐고 물으면- 물론 아무도 묻지 않겠지만 - 정말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게 정말 여백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다.
어릴 때 가지고 놀았던, 쓸 땐 투명해서 하얀 스케치북에 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스케치북에 물을 묻히면 썼던 글씨나 그림이 보이는 매직펜이 있었다.
'저는 그 매직펜을 가지고 허공에, 여백에 뭔가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고 나면 더 이상 여백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싱긋 웃을 수도 있겠지.
'여백'하면 나는 시(詩)를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는 시를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는 언어가 함축적이고 어렵다. 아주 어려운 시가 있는 반면, 시중에 유행하던 시집을 펼쳐보면 또 한없이 가벼워서 '이런 게 요즘 시인가?' 하고 덮어버리기도 했다. 시의 이미지는 [너무 어렵거나, 너무 가벼워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동안 그랬다. 그러다 어떤 소설가가 쓴 시를 읽게 되었다. 짧은 시집이었는데도 도저히 하루 만에 다 읽을 수가 없었다. 글자보다 여백이 많았지만, 빨리 읽고 싶지 않아서 며칠을 아껴서 읽었다. 종이에 글자 몇 개가 여백 속에 떠 다니는 그 시들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시’라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이구나.
그 뒤로 하나둘 시집을 사기 시작했고, 다른 시인의 시도 조금씩 읽고 있다. 여전히 시를 잘 모르지만, 시에서 여백이 많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詩)처럼 의도적으로 '여백'을 가진다는 것. 여백이 아닌 부분에 밀도를 높여서 여백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것. 여백이 사실은 치열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일까.
'여백'과 치열함은 언뜻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오히려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고(쓰고) 나서는 쉼(여백)이 필요하고, 쉬고 나서는 또다시 치열하게 살 힘을 얻는다.
'여백'은 치열함과 짝꿍인 것도 같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치열하게 여백의 위를 걸어가야 할까.
얼마나 많은 여백을 지나야 다른 챕터로 넘어갈 수 있을까.
-희노가
*지난 단어: 살게 한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