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균열'

틈의 발견

by 희노가

한국에 돌아와서 얼마 후, 그림을 선물 받았다.

바다의 윤슬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반짝반짝한 빛의 방울들이 소곤거리는 듯한 그림이다. 그림을 집에 거는 건 화가인 외숙모의 장미그림을 결혼선물로 받은 이후로 처음이다. 내가 직접 고른 것이라 집에 가져와서 보고 또 보고 벌써 그림에 애정이 듬뿍 생겨버렸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거실에 그림을 걸려고 보니, 벽지가 그림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었다.

결국 하얀색 페인트를 사서 벽을 칠해보기로 했다.


아주 예전에 실크벽지로 발라져 있던 그 벽을 말끔히 닦고 사포질도 조금 했다.

자, 이제 페인트를 발라볼까 하고 힘차게 롤러를 벽에 굴리는 순간, '이건 뭔가 잘못됐다. 너무 하얗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페인트질은 시작되었고 도중에 멈출 수가 없어서 낑낑대며 벽 한 면을 다 바르게 되었다.

페인트칠을 하다 문양이 있는 벽지일 땐 잘 보이지 않던, 벽 사이의 균열들을 발견했다.

아주 미세하지만, 틈이 벌어져 있는. 그런 것들.


이런 곳에 틈이 있었구나 하면서 그 부분은 붓을 사용해서 좀 더 꼼꼼히 발랐다.

다 칠하고 나서는 괜찮았는데 페인트가 마르고 나자 그 틈이 또 눈에 보였다. 분명 오랫동안 모르고 있었던 건데 한 번 발견하고 나니 계속 눈에 띄는 것이다.

문제는 하얀 페인트로 칠하니 그 사이가 약간 검게 보여서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얘도 너무 하얀 벽은 균열을 오히려 돋보이게 했다. 며칠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기존 벽 옆의 나무 부분과 색깔이 같은 베이지색 페인트를 다시 주문했다. 그림은 걸지도 못하고 베이지색 페인트가 오길 기다려 다시 칠했다.


다행스럽게도 흰색바탕 위에 칠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고, 좀 더 작업이 빨리 끝났다. 균열이 있는 곳은 다시 한번 신경을 써서 칠해서 그 안이 더 이상 까맣게 보이는 것은 면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눈에는 보인다.

그 틈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의식하는 순간, 더 이상은 없던 게 아니게 되는 균열의 선.

사실 벽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 어긋남이 우리 사이에도 있었다는 것을, 바로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와 그는 오랫동안 겉으로는 꽤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 다름이야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간간이 다투기도 했었지만. 그러나 사이에 오래된 틈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주 사소한 일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미세하게 갈라진 부분은 생각보다 깊고 검어서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알게 된 이상, 이제부터는 계속 균열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새로 칠한 벽의 틈이 옆의 나무색과 비슷한 페인트로 칠했더니 덜 보이는 것처럼, 이것 또한 일상과 비슷한 색깔로 칠하면 잘 안 보이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색으로 보이게 되는 걸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덮는다고 있던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보수는 할 수 있겠지. 다른 사람들은 일상에서 생긴 균열을 어떻게 처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페인트칠하듯 덮기도, 메꾸기도 하면서, 그렇게.


작은 틈 하나가 벽을 무너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거실벽 앞에 서서 나에게만 보일 그곳을 잠시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그래도 덧칠을 하길 잘했어.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따라 베이지색으로 변한 벽에 걸린 그림이,

내 맘도 모르고 환하게 보인다.


-희노가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