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itor 흰둥 Feb 27. 2019

#02. 우리 어디서 결혼해?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돌입했다. 일명 '예신(예비신부)'의 자격을 부여받은 셈이다.


더불어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결혼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간의 둘만 꽁냥 거렸던 것들이 이제는 좀 더 공식화된 느낌이랄까.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를 만난 거 같고, 진정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결혼은 정말 어른이 되기 위한 하나의 관문?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기분은 마치 미지의 세계, 낯선 땅으로 떠나는 여행 같았다. 어떠한 일들이 펼쳐질지 알 수 없기에 설렘과 궁금함 그리고 긴장감과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날 오묘하게 뒤덮었다.


일단, 무엇에 먼저 출발점을 둬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인터넷 검색창을 수없이 두들겨 봤다.


'결혼 준비 과정'   '결혼 준비물'   '결혼 준비'


블로그에 게시된 결혼 준비 과정, 카페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정보, 너무나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준비 리스트 파일을 보니 세상의 모든 '결혼 선배'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함축된 단어는 마치 암호명 같았고, 타이트한 타임라인은 지금 당장 백기 선언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생에 후퇴는 없다
전진만 있을 뿐!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공포의 첫 도로주행을 나갔을 때 외친 그 결심을 다시 소환하며 용기를 얻었다.



우린 날짜 정하기 즉, 결혼식장 (결혼 전문용어로) '웨딩 베뉴' 잡기를 스타트로 정했다. 사주 분석을 통한 결혼 택일이 아닌, 원하는 날짜와 시간, 베뉴에 맞춰 결혼날을 정하기로 했다.


사주... 의식의 흐름대로 잠시 글을 적어보자면, 20대 시절 난 그 누구보다 사주, 타로에 에너지와 돈을 쏟았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걸까. 내 사주, 타로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지사, 연애와 결혼이었다.


누군가와 헤어지면 그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타로를 보았다. 그것이 100% 맞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타로 안에서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 또 솔로의 불안한 미래에 희망을 얻고자 그곳을 찾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보여왔는지 스스로도 의문스럽다. 결혼만이 답은 아니라고 외치면서도 난 그걸 갈망해왔던 아이러니한 존재였다.



베뉴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일생일대의 빅 이벤트에 포기가 힘든 각자의 소망과 현실적인 조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커스터마이징 결혼식을 꿈꾸겠지만, 대부분의 신랑 신부가 천편 일륜적인 결혼식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적절한 예산 안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 요일, 분위기를 다 부합하는 베뉴를 찾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보통의 신부들이 환상을 가지는 드레스보다 나는 식장에 대한 로망이 좀 더 컸다.


일 순위로 꼽았던 '해질 무렵 펼쳐지는 해변가 예식'은 당연히 현실적으로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다음으론 구체적인 건 없었지만, 이르지 않은 오후 시간대에 여유로운 동시 예식을 원했다. 버진로드, 천고 이런 건 크게 관심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웬걸, 보다 보니 이런 단어가 어느새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버진로드는 길고, 어두운 컬러였으면 좋겠어. 천고는 당연히 높을수록 좋고"


샹들리에까지 욕심내지 않아서 아마 '그'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린 베뉴 투어 강행군 3주 만에 별점 만점을 주고 싶은 곳을 만났다! 지방 하객들을 고려한 위치, 기나긴 버진로드, 원했던 모던함 보다는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던 분위기, 그리고 바라던 날짜와 시간대까지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졌다.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01. 귀한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