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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Oct 03. 2024

마마, 나는 미치고 싶지 않아요*

To Aunt

지금은 소식을 모르게 된 큰어머니가 있다. 마지막 소식은 정신병동 강제입원을 끝으로 알 수 없게 됐다. 그의 병명은 조현병이었다. 이전에도 우리집에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남몰래 우울증 약을 끊었다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던 전 외숙모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의 편에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조차 폐쇄병동의 답답한 창살이 보이는 것 같았고, 북받치는 울음을 눌러가며 내가 아파도 그렇게 외면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현재까지 내가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건 '미친 여자'가 되는 것이다. 근데 말야, 이미 미쳐버렸는지도 몰라. 나는 누구나 반쯤 미쳐 있다고 믿고 있다. 뭐에, 어떻게, 얼만큼 미치냐의 차이일 뿐.


정정하건대 내가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건 미친 나를 등지는 사람들이다. 서른중반을 사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절연을 겪었다. 죽 끓듯 하는 나의 변덕과 조절할 수 없는 감정변화, 반복된 자살시도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사람들은 화를 내고 돌아섰다. 자신의 과오를 곱씹는 일만큼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구태여 나열하지는 않겠다.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의 이름은 양극성 정동장애로, 흔히 조울증이라 일컫는다. 비교적 경한 2형 조울증에 속한다. 십 년을 앓아 온 질환의 악화된다면 조현병이 될 수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학계의 입장은 언제나 빈틈이 있으므로.


잠시잠깐 성인 ADHD 의심을 받아 약을 처방받은 때도 있었고, 경계선 인격장애 경향성(Trait)이 있다는 정도의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연유로 미치는 것이 두렵고 미친 나를 등질까봐 무섭기 때문에, 사방팔방 다양한 치료법을 체험했다. 변증법적 상담치료를 비롯해 마음챙김 명상, 집단상담, EMDR 등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해봤다. 지금은 잠정적으로 상담을 종결한 상태다. 이렇다 할 이슈도 없고, 다시 사회 속으로 스며드는 데 성공하면서 자신의 회피적 성향을 마주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 두번 다시 이제 보지 맙시다" 하기는 두려워서 자문이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게끔 상담선생님과 라포를 형성해뒀다.


다시 돌아가 이전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아이였다. 멘탈이 강한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밀접한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시 말하면 밀접한 관계에서는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날카로워졌다. 십 년 간 함께 살아온 내 조울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주 밉기만 한 녀석은 아니고 방향성을 잘 잡는다면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친구였다. 실제로 조증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할 때(지나고 나서야 깨닫긴 하지만) 빠른 속도로 구상하고 결단을 내렸다. 문제는 열 중 하나는 운이 좋아 명중하더라도 나머지는 영양가 없는 일일 경우가 많았다. 또 일을 벌려놓은 상태에서 추락하기 시작하는 기분으로는 무엇도 수습할 수 없었다. 비질환자라면 열심히 커리어를 쌓을 시기, 나는 그렇게 정신질환과 싸우고 있었다.


남들이 커리어를 쌓을 때 나는 연애경력을 쌓은 것 같다. 우스개소리가 아니다. 가족에 대해 소속감을 느낄 수 없던 시기였기에 더욱 연애관계에 몰두했다. 나의 조울증은 내가 행복한 꼴을 오래 두고보지 않았다. 서랍 속 장전되어 있는 총처럼.


많은 게 나아졌다고 믿지만 그건 과거의 나와 비교했을 때 그럴 뿐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세에게 나와 같은 아픈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아서 비출산을 결심했다. 그렇다고 관계를 포기하지는 않았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마저도 놔버리고 싶다. 몸이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고 나의 동굴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한 뒤로 모든 게 무상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저 잠시 스쳐지나갈 수 있을 뿐이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은 만남에서 서로 할 수 있는 건 이해가 아니라 오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연달아 잃은 상실감을 감당할 수 없어 이곳을 등지기로 한 큰어머니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Queen, <Bohemian Rutherford> 가사 변주 : MaMa, I don't wanna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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