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으로 메우는 공장의 시간
공장에서 다루는 제품을 한번씩 모두 거치는 데만도 2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만큼 근속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과 같다면 월급날을 반복해 기다리며 채울 수도 있을 기간 같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몸져 누울 수도 있으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것도 같다. 어느 쪽이든 하루 여덟 시간을 단순반복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권태로움과 싸워 이겨야 한다.
100% 몸을 쓰는 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공상을 하는 것이다. 손을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속으로는 제품의 수를 헤아리지만 머리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핀다. 저건 왜 그럴까? 이러면 어떻게 될까 같은(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한다. 간혹 왜 이 라인은 자동화되지 못했는지, 기술의 부족인지 효율에 따른 수작업인지 넌지시 묻는다. 누군가는 엉뚱하고 무쓸모하다 할 수 있을 의문들은 내 차기소설의 작은 재료가 된다.
물론 효율적인 공상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물고 늘어질 때도 있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느라 마음 상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고 움직이며 속으로는 제품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다.
요즘은 급작스레 업무량이 줄어들어 야근도 특근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오늘 퇴근하고 죽을까’ 같은 질문이 난입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발상을 계속하다보면 때와 방법까지 고민하게 되는데 어떤 날에는 내가 왜 죽지?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남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를 질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에 스스로 답하길 나는 더이상 사랑 때문에 죽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오로지 사랑 때문에 죽을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죽는다면 사인은 사랑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