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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Nov 10. 2024

왜 네가 그만둬?

정신질환자는 이렇게 일합니다

공장에 들어오기 전, 모 매장에서 단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곳도 나를 제외한 연령대가 높은 여성들뿐이었다. 그곳에서 단 4일을 일하고 그만뒀는데 이유는 내 업무실수에 등짝을 때린 중년여성 때문이었다. 은근한 눈치를 주거나 폭언을 하는 선임은 많이 봤어도 요즘 같은 세상에 등짝 스매싱이라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언젠가부터 내 퇴사원칙은 내 멘탈이 무사한지가 척도였고, 퇴사사유는 꼭 솔직하게 말하고 약속한 날만큼 나가고 끝을 맺는 것이 됐다.


등짝 여사는 짧은 근로시간동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 멘탈을 지키기 위해 재빠른 퇴사를 선택했다. 나의 퇴사의사를 들은 매장의 점주님은 등짝 여사를 두둔했고 그녀의 사과를 대신 전했다. 무엇보다 더 버텨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건 가족들의 반응 덕도 컸다. 부모님은 나도 때리지 않고 키운 딸을 어디 손을 대냐며 당장 쳐들어갈 기세였다. 허무한 4일이었지만 마음만은 든든했다. 그때 친언니만은 나의 회피에 대해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내가 서운한 내색을 비치자 그만둘 사람은 내가 아니라 등짝 여사라고 도리어 화를 냈다. 친언니는 누구보다 내가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알고 나는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다.


공장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7개월. 그간 벌써 퇴사 위기가 두 차례 있었다. 나는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일에 재미를 느끼기도 했던 터라 회사 언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쉰이 다 돼가는 회사 언니는 왜 네가 그만둬? 하고 물어주었다. 나가려면 그 사람이 나가야지, 힘주어 뒷말을 보탰다. 오래되지 않은 내 퇴사원칙은 언니의 말을 들을 때마다 흔들렸다. 회피하고 도망치는 선택이 후에도 나를 지켜줄 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각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였지만 오래되지 않아 해결이 났다. 한 차례 서운한 말로 나를 울렸던 상사분의 마음을 이해할 계기가 있었고, 다른 한 차례는 도무지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정확히 내가 퇴사하기로 했던 날짜에 퇴사를 한 것이다. 그녀의 부재로 업무가 흔들리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점차 안정이 됐고 덕분에 반의 분위기는 유해졌다.(퇴사의사를 밝힌 후였지만 곧바로 철회를 희망했고 상사분은 흔쾌히 내 뜻을 받아주었다)


그녀가 모두의 앞에서 퇴사 인사를 하던 날, 아무도 의례적인 박수조차 치지 않던 냉랭한 공기를 기억한다. 일은 확실히 비교적 손에 익었고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무리없게 해내고 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유리처럼 살살 다루고 자주 들여다봐줘야 하는 재질임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흔들릴 때마다 주변에는 도망치지 말라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나의 많은 정신병리적 증상을 모두 아는 사람은 없다. 슬쩍 정신 문제로 기초생활수급생활을 한 적이 있다는 걸 회사 언니에게 비친 적은 있지만 가벼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정도로 예측할 것이다. 나에게 고견을 주는 언니, 동갑내기 관리자 친구조차 공적인 영역에서 나의 약점을 모두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한다.(미안하지만 이렇게 공공연하게 글로 적고 있다)


젊은 신입이나 나이 든 신입을 불문하고 하루만에 나가버리는 공장에 다니며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어쩌면 나도 단단한 사람일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유리로 된 마음에 어떤 말을 들려줄지를 선택하는 건 내 몫이라는 거다. 나를 공격하는 비난의 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은 상대의 판단을 사실로 받아들일지 취사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단번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오래 연습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랜 정신질환과의 싸움으로 인지능력이 손상됐다 해도, 남이 보는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 지난 번 잘못은 한 번의 실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나로 성실히 살면 그만이다. 물론 나는 퇴근 후 글쓸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공장에서 내 역량을 모두 쥐어짜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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