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님과 오랜만에 대화하고 나서
(1).
찾아야 할 반값 택배가 있었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녹을 것 같은 날씨 속에서 겨우 편의점 문을 열었다. 평일 오전엔 동네 편의점 어딜 들러도 한산했기에, 나뿐인 편의점을 둘러보며 반값 택배 보관함 찾기 바빴다. 그때까지만 해도 편의점 안은 조용했다. 조용한 편의점에서 최대한 작은 잡음만 내며, 반값 택배를 집어 든 순간이었다.
“제가 아는 사람 맞죠?”
나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으로 나를 가리킬 수밖에 없는,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가장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은 편의점 사장님이었다.
어떤 가게든 한두 달만 지나도 종적을 감추는 우리 동네에서는 편의점만이 끈질기게 장수했다. 이 편의점도 그랬다. 고등학생 때도 있었고, 서른을 넘긴 지금도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당연히 편의점 사장님과 나는 십 년 넘도록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만났으니, 우리는 서로 ‘아는 사람’으로 인식해도 될 테다. 문제는 편의점 사장님의 얼굴이었다. 긴가민가하며 한참이나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최대한 밝은 톤으로 “오랜만이에요!”하고 대답하며 반값 택배와 휴대전화를 내미는 동안에도 주시하는 눈은 이어졌다.
“어, 어? 그래, 맞죠?”
무엇이 맞는지 묻는 걸까. 알 수 없어서 반값 택배와 사장님을 번갈아 볼 즈음이었다.
“맨날 콜라 사 가시던 분, 맞잖아요!”
고개를 끄덕인 이후 편의점 사장님은 다짜고짜 기억을 읊기 시작했다. 새벽 늦게 콜라 사 가시던 분 맞네. 아니면 담배 사 가셨던 분. 되게 오랜만이다. 아직도 이 동네 사시는구나. 그나저나 왜 이렇게 낯선가 했더니. 살이 너무 빠져서 몰라봤잖아요! 타인과 벽치고 사는 게 익숙했기에 어설프게 웃으며 고갯짓으로만 대꾸했지만, 이어지는 편의점 사장님의 말끝에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부러 그만큼 뺀 거예요, 아니면…, 혹시 몸이 어디 안 좋은 거예요?”
“네?”
“너무 말라지셨어. 무슨 일 있어요?”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봐도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있긴 해도 살과 관련 없는 일뿐이라 느리게 내 몸을 훑던 나는 겨우겨우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쩌다 보니 빠졌어요.
이렇게.
그 대답 이후 편의점에서 나오는 동안 머릿속에선 계속 내 대답이 맴돌았다. 정말 나는 어쩌다 보니 살이 편의점 사장님 기준 ‘그만큼’ 빠진 걸까.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의 기준은 뭘까. 실은 어떤 기준이든지 간에 나는 어쩌다 보니 앙상해진 게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난 미친 노력 끝에 앙상해졌다.
(2).
새벽마다 그 편의점에 들렀던 시절을 기준으로 삼자면, 난 약 35kg을 감량했다. bmi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고도비만에서 저체중으로 내려왔다. 그 과정은 딱 1년이었고, 유지 기간은 1년 반쯤 됐다. 굶거나 식욕 억제제를 먹거나 병원에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틈만 나면 움직였다. 수영에 미쳤었고, 달리기에 미쳤었으며, 스피닝도 미치도록 한 데다가, 지금도 평일 저녁마다 헬스장을 지킨다.
몇 사람은 그런 나를 저주하듯 그렇게 훅 뺐다가는 요요 올 거라는 우려를 남겼지만, 몸무게가 줄면 줄었지, 3년간 늘어난 적은 없었다.
즉, 나는 일부러 그만큼 뺐다.
여기서 그만큼은 저체중을 뜻한다.
나는 저체중이었던 20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3).
지금 내 몸무게는 20대 초반 때 늘 함께했던 몸무게다. 그리고 그 당시 내 몸무게에는 아주 오래되어, 케케묵은 외모 콤플렉스가 항상 들러붙어 있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운동으로 뺀 게 아니라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릴 때마다 밥 대신 방울토마토 따위를 먹으며 유지한 몸무게였다.
지금은 그나마 무의식으로 내쫓은, 이놈의 외모 콤플렉스는 열다섯에 시작됐다. 그날은 점심시간이었고, 속이 좋지 않았던 나는 엎드린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후 더 괴로워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드르륵. 교실 뒷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학생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귓가를 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어날 생각이었다. 조용히 좀 하라고 짜증도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에서 그쳤다. 또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내가 아는 남학생들이 전혀 몰랐고, 알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로 떠들기 시작했으므로.
내 친구와 나를 주제로 삼은 음담패설이었다.
내 친구는 얼굴이 예쁘므로 어딘가는 예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얼굴이 별로이므로 오히려 어딘가는 예쁘겠다는 말이 시끄럽게 들렸다. 조용히 좀 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잠든(줄 아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듯 아예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삼아, 내 단짝 친구는 외모 콤플렉스였다. 어디서나 외모 콤플렉스와 함께였다. 거울만 보면 그 음담패설이 떠오르던 시기를 다 보내고 나니 누군가(특히 남자)와 오래 눈을 맞추고 있으면 속으로는 분명 알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확신에 시달렸다. 그 확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얼굴을 비난해 댔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강해지는 확신만큼 자신감이라든지 자존감이라든지 아무튼 나와 관련된 것들은 죄 나약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테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진 않았다. 열다섯부터 나는 그런 말을 아예 안 믿었다. 외모와 관련된 말은 기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대화 주제로 삼기 싫은 카테고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열여섯 살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멈추지 않았다. 간단했다. 외모를 대화 주제로 삼을 만한 사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적당히 날씬해지면, 적당한 외모와 몸매로 또 그놈의 품평회에 억지로 끌려들어 갈 것 같았다. 아예 그들의 눈 밖으로 날 방법을 찾던 중 당시 친했던 남자 사람 친구에게 앙상하리만큼 마른 여자를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줄곧 앙상하리만큼 마른 몸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도 이십 대 중반까지였다.
짧았던 히키코모리 생활 끝에 사회에 뛰어든 나는 정말이지, 정신없이 살았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일하고, 학원 가고, 일하고, 학원 가고. 또는 일하고, 아르바이트 가고, 일하고, 아르바이트 가고. 그러다 보니 케케묵은 외모 콤플렉스는 무의식 저편으로 떠밀려 가고,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으로 거듭났으나.
3년 전,
문득 다시 앙상해지고 싶다는 치기가 치밀었다.
(4).
아직은 잘 모르겠다.
왜 내가 다시 앙상해지고 싶어졌는지를 나조차 알 수 없다. 주변 사람들 역시 한 마디씩 거들며, 내 치기를 해석하려 하지만. 와닿는 대답은 없다. 물론, 나 역시 이런 내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한다. 남 보기에 몸이 안 좋아 보일 만큼 마른 몸이 내 눈엔 그냥 평소 내 몸 같고, 전혀 말라 보이지도 않으니 더더욱 잘못됐다는 생각은 한다.
다만, 거기까지다.
딱히 외모 콤플렉스가 다시 도진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 나는 지금 내가 제일 좋고, 누군가가 이상형을 물으면 고민 없이 ‘나’라고 대답한다. (부끄럽지만, 진담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 앙상해져 있다. 뙤약볕이 맹렬히 내 머리 위로 내리쬐는 요즘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다. 요즘 날씨가 앙상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더운 탓에, 덥다는 생각이 이끄는 대로 아이스크림 한 입 베어 물어도 ‘이러다 또 살찌면 어떡해?’ 따위를 걱정하거나 칼로리를 가늠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말라 보이지 않는다.
이게 문제다.
이따금 몸무게를 잴 때마다 보이는 몸무게는 저체중이 확실한데, 말랐다는 생각은 거울 앞에서도, 씻을 때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들지 않는다. 도대체 난 뭐가 문제일까. 편의점 사장님께서 일깨워 주신 덕분에 조만간 상담받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동 현관문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이 그저 보통 체중으로 보인다.
혹시 더위를 먹은 걸까.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