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 단편소설을 읽었다!
(1).
불과 2주 전이었다. 인생 최초로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 뭔 자신감이었는지 연달아 단편소설도 썼다. 내용은 아포칼립스 학원물이었고, 원고지 50매쯤 썼던 것 같다. 이후 회의에서 네 글은 문학적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퇴근한 밤. 말 그대로 홧김에 그 단편소설을 소설 연재 플랫폼에 올리고 잠들었다.
그날을 끝으로 아예 무의식에 던져둔 채 살았다. 그 단편소설도, 그 소설 연재 플랫폼도. 그저 내 글은 문학적이지 않다는 확신을 얻고 싶을 뿐이었다. 무플일 테고, 조회수도 10회 미만일 것으로 알아서 예상하며, 이따금 일하기 싫어질 때마다 빈 메일함을 확인했다. 거봐. 댓글이 달렸으면 알림이 메일로 와 있었겠지. 넌 전혀 문학적이지 않다니까! 세상에 소설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즉, 그 단편소설은 나를 혼내는 용도였다.
그러다 오늘. 내가 사고 싶은 양장본 노트(인 척하지만, 실은 소설 굿즈여서 단 한 장도 쓸 생각 없는)를 그 플랫폼에서만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월급도 받았겠다, 구매할 겸 아무 생각 없이 그 플랫폼에 접속했고, 확인하지 않은 알림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내 단편소설에 댓글을 남겨 뒀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댓글을 읽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주 조금이었고, 읽기 두려운 마음이 마음 전체였다.
(2).
무서웠다.
그 누군가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 댓글을 읽고 나서 밀려들 각오 또는 결심이 무서웠다. 소설이 재밌었다고 하면 더 쓰고 싶어질 테고, 피드백이 이어지면 마찬가지로 더 쓰고 싶어질 나를 안다.
그나마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틈틈이 확인한다. 몇 주 전 내가 어떤 생각으로 보냈는지 궁금할 때 읽기도 하고, 남겨 주신 댓글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을 쓰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게 신기하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머물기도 하며, 제발 좀 쉬운 말로 쓰라는 아버지 피드백을 적극 반영할 때도 잦다. 심지어 아주 가끔은 답글을 달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정도면 답글 달지 그러냐!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내 성격이다. 부끄러운 순간이 많은 나는 그저 혼잣말로 대답하면서 브런치 글에 달린 댓글을 훑곤 한다. (거짓말이다. 실은 혼잣말로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캡처도 해 두고, 자기 전마다 본다…)
홧김에 올린 단편소설 역시 브런치 글 대하듯 댓글쯤이야 확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가 소설마저 브런치 글처럼 일상 중에 빠트리기 싫은 무언가가 되거나 더 쓰고 싶어지는 게 아직은 두렵다. 내 일상을 기록하는 건 어느덧 일상이 됐지만, 소설은 계속해서 어렵고, 뭔지 모를 미지로 두고 싶다.
그렇게라도 회의 때 듣는 피드백을 이겨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에게 소설은 도피처나 다름없다. 너는 너무 문학적이야. 자꾸 글빨로 사기 칠래? 회의록은 회의록답게 써. 그런 피드백에서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겨우 딛고 일어서게 해 주는 도피처 또는 도움닫기 같은 게 소설인 셈이다. 회의록마저 문학적으로 쓰는 나는 어쩌면 소설에 재능이 있을 수도 있어. 아, 이김에 소설 한번 써 봐? 어디 얼마나 문학적인지 확인해? 이런 희망을 내게 조그맣게라도 남겨 두고 싶은 것 같다. 그 희망을 판도라 상자 삼아, 진위 여부 따위는 절대 파악하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 탓에 소설만은 미지에 두려 하고, 그런 주제에 이따금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만다. 즉, 회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속상한 마음을 확 풀어낼, 일명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내게 소설이 딱 걸린 거라고. 그뿐으로 여기며, 틈틈이 현실 도피처 삼고 싶은데 성격상 누군가와 맞닿으면 더 닿고 싶어 해서 문제다.
(3).
결국, 이런저런 핑계로 단편소설에 달린 댓글은 확인하지 않았으면서 정작 오늘 일하다가도 틈틈이 다른 소설을 구상했다. 일 때문에 기분이 급속도로 망가지면 대뜸 올려 두고 잘 만한 단편소설을 슬슬 준비해 두고 싶었다. 바로 앞 문장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저 또 쓰고 싶어진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애써 확신하지 않으며, 잠자코 소재 몇 개만 정리해 뒀다.
이번엔 소설로 사랑 이야기를 해 볼까.
사랑과 관련된 소재를 다 정리하고 나서야 일에 다시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 마음의 출발 지점이 소설이 더 쓰고 싶어진 나든 화풀이 대상을 미리 준비하고 싶어진 나든 이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일 때문에 울적해지자마자 올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의 당일을 데드 라인 삼고 달력에 표시까지 해 뒀다는 거다.
과연 8월 첫째 주 월요일 브런치 제목은 무엇이 될까.
‘단편소설을 또 올리고 나서’일까. ‘써 둔 단편소설이 필요 없어지면서’일까. 후자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지금도 브런치 글 밑으로 단편소설 구상안을 켜 둔 걸 보면 전혀 다른 제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처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소설을 올리고 나서’.
이쯤에서 어떤 마음으로 8월 첫째 주 월요일을 보내든 단 한 가지는 이미 정해진 듯하다. 8월 첫째 주 월요일 속 내가 어떤 표정이든 그 표정을 남기고자 기필코 여기로 달려올 테다. 나는 평생 모를 내 표정을 글로나마 기록해 두고 싶어서, 웃거나 인상 찌푸리거나 뭐든 글로 짓고 있겠지.
그러므로 이번 글은 이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 또 봅시다!
가장 좋아하는 말이고,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우리 또 보자. 그 말과 함께 또 보는 날까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그 말대로 또 보고야 마는 순간. 즉, 이 글을 읽는 사람과 가장 좋아하는 걸 주고받고 있다는 뜻이라 어느덧 나는 8월 첫째 주가 두렵지 않아졌다. (조금은 두렵긴 한데, 많이에서 조금으로 줄어들었으므로 두렵지 않은 걸로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