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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l 22. 2024

오래 기다리던 빗속에서 책을 다 읽고

입속 지느러미를 읽고 싶어서 3주간 비 오는 날만 기다렸다


 

(1).

 

비가 오면 기분이 비에 휩쓸린다. 꿉꿉한 비에 행복이 수증기와 함께 증발되는 느낌. 비 아이콘이 날씨 예보를 차지하면 그 전날부터 기분은 차례대로 가라앉는다. 물웅덩이 속으로 축 가라앉는 기분을 달래겠답시고 일부러 좋아하는 색 위주로 우산을 쓸 때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가 싫다. 끈적거리고, 축축한 것들이 싫다.

 

뭘 싫어할 때마다 좋아하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낭비되는데, 낭비는 줄일수록 좋다고 했다. 입속 지느러미를 주문한 이유 역시 싫어하는 시간이 싫어서였다. 끈적거리고, 축축하다는 평이 많은 입속 지느러미라는 책을 주문한 날 역시 비가 왕창 쏟아졌다.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운 날씨에 바깥 풍경 잘 보이는 카페로 가서 입속 지느러미를 주문했다.


이런 추억을 쌓다 보면 비도 좋아지지 않을까. 대충 그런 생각이었다. 비록 끈적거리고, 축축한 것은 싫지만, 그 소설 쓴 작가를 좋아하기에 호와 불호가 잘 섞일 것만 같았다. 잘 섞기만 하면, 싫어하는 시간이 줄어들겠다는 계산은 틀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확실히 계산하는 내내 단 한 가지를 간과했다.

 

난 뭘 바랄수록 잘 안되는 사람이다.

 

예상 또는 기대가 범람하지 않아야만 이뤄지는 사람이 나였다. 평생 겪었으면서 왜 또 이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비 오는 날, 그 시작에 맞추어서 입속 지느러미를 읽으려는 마음 곳곳으로 비 오는 날을 예상하는 시간과 비가 얼마나 좋아질지를 기대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비가 멈췄다. 이후 화창한 날씨만 이어졌다. 뙤약볕이 끝없이 내리쬐는 가운데 예상과 기대가 또 넘쳐흘렀다며 후회했다.

 

그럼에도 또 예상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나이기도 했다. 단 하루, 더 좁혀서 찰나여도 좋으므로 비가 쏟아지길 바라며 가방 안에 입속 지느러미를 넣어 다녔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 치고는 오매불망 비가 와 주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로 책 두 권을 해치웠고, 어느덧 장마철은 14일 채 남지 않았음에도 비는 내게 오지 않았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이면 기뻐해야 한다. 기뻐야 하는데 하나도 안 기뻤다. 왜 안 오는지 궁금해서 하늘만 노려보는 시간이 늘었다. 비를 싫어하던 내가 우스웠다. 비 오는 날마다 축 가라앉던 내가 너무나도 우스웠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 예보에서 비 아이콘을 찾아 헤매는 눈길도 우스웠다. 여기서 더 우스워져야 속이 풀리는지 하늘은 얄궂게도 계속 파란색만 내보였다. 비 오기 직전에만 보여 주는 회색은 오래오래 감춰 둔 채.

 





(2).

 

그러기를 4일째.

올해 장마철은 약 일주일 뒤에 자취를 감춘다.

 

마음이 급해진 난 어제도 가방 안에 입속 지느러미를 넣어 두고, 내일 아침부터 처리할 일을 플래너에 적어 둔 다음 서둘러 누웠다. 내일 아침 8시쯤 비가 온다고 했다. 내일도 비 아이콘과 어울리지 않는 뙤약볕만 종일 내보이면 평생 비를 싫어하겠다는 다짐으로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번뜩 떠진 눈으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오전 4시 11분.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이르고, 끝마치기엔 너무 늦은 시간에야 비가 내게 왔다. 아침 8시에 온대서 알람 맞추고 잤더니 너 진짜 이럴래? 하늘에 대고 투덜거리고 싶었다. 게다가 너무 귀찮았다. 이미 가방을 꼼꼼하게 챙겨 두었고, 오늘 아침부터 처리할 일이 가득한 상황에서 굳이 일어나, 굳이 또 가방을 어지르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난 뭘 바랄수록 잘 안되는 사람이다.

 

이를 증명하듯 망할 날씨 예보는 금세 또 마음을 바꾼 상태였다. 오전 8시부터 종일 내린다던 비 소식을 감추고, 종일 흐리고 건조한 날씨만 예고했다. 또 어그러졌다. 내 인생은 왜 항상 어그러지는 걸까.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봤다. 이제 막 시작된 빗소리는 얼른 일어나라는 듯 점점 더 우렁차게 나를 불렀다. 결국, 비척비척 일어났다. 매번 어그러지는 사람은 그나마 붙잡을 수 있는 순간을 놓아주어선 안 된다. 그 순간을 놓아 버리면 영영 미끌거려, 붙잡을 수 없어진다. 잠결인 손으로 가방을 어지르고, 입속 지느러미를 겨우 집었다.

 

이어 창문을 활짝 열어, 거센 빗소리가 내 귀를 침범하게 두었다. 정말 듣기만 해도 삭신이 쑤시는 소리. 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이해할 수 없는, 저놈의 빗소리. 침 가득 묻은 입술을 쩍 벌리는 것 같은 소리. 내 기분을 잘근잘근 씹어 버리는 소리. 어그러지기만 하는 인생을 더 깊은 심해로 끌어당기는 것 같은 소리. 이런 소리를 누가 좋아해.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그저 싫었다. 조금이라도 조그맣게 듣고 싶은 마음이 고개 들자마자 유튜브를 켰다. 유튜브에는 한겨레 출판사가 제공하는 입속 지느러미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조만간 들을 생각으로 좋아요 표시를 남겨 둔 덕분에 곧장 켤 수 있었다. 빗소리와 음악이 마구 뒤섞여, 내 귓가에 놓이는 동안 입속 지느러미의 주인공은 민영 삼촌에게 민영 수족관을 물려받고 있었다.

 

주인공 이름은 선형.

 

나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 작곡가를 꿈꾸지만,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사람. 그러나 여느 예술가가 그렇듯 집요한 사람. 집요하지만, 물러터진 인생을 사는 사람. 물러터진 인생은 아무리 집요한 사람이라도 축 늘어지게 한다는 걸 아는 것도 같은 사람. 이런 사람한테 빠져들긴 싫지만, 빠져들지 않으면 빗소리가 내 귀 안으로 더 파고들 테므로 무작정 빠져들어 읽었다.

 





(3).

 

입속 지느러미는 짧다. 168쪽밖에 안 된다. 삼십 분 만에 다 읽었고, 그 삼십 분이 비의 골든 타임이었는지 책 덮자마자 비도 함께 그쳤다.

 

책을 덮자마자 그친 비가 이상했다. 이 책도 이상하고, 변덕맞은 주제에 철저하기까지 한 비도 이상했다. 새벽 5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었다. 조예은은 작가여서 날씨까지 조종할 순 없을 텐데, 찰나에 가까운 빗소리와 이야기가 합쳐지다니. 왜 이런 상황이 내게 온 걸까. 이상하고, 또 이상하며, 더 이상한 걸 보여 주며 기필코 나를 심해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심해엔 비를 좋아하던 내가 숨어 있다.

 

끈적하고, 축축한 것들을 사랑하던 내가 있다. 비 오는 날에 겪었던 이별. 비가 오는 날에 장례를 치러야 했던 우리 집 강아지. 비 오는 날에 발인한 외할머니. 우산이 없어, 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울었던 나. 다들 축하하는 가운데 혼자 비에 젖은 담배만 붙잡고 있던 나. 비도 오는데 고생하지 말고 돈 없으면 그냥 자존심 내려 두고 타라며 내 앞에 멈췄던 차. 그 시간이 싫고 아파서 심해 끝에 잠길 때까지 그 시간들을 밀어내 왔다. 그러느라 비가 싫어졌다. 끈적하고, 축축한 기억은 항상 비를 동반했던지라 비만 내렸다 하면 기분이 가라앉았던 건데. 그런 내 기억을 끄집어내다니. 남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 주제에 감히

 

좋아지다니.

 

슬그머니 날씨 예보를 확인했다. 이젠 다 읽었으니 확인할 필요 없는 날씨 예보를 한참이나 확인하다가 잠들었다. 이후 깨어나고도 이번 주 날씨를 기억할 수 있었다. 언제 비가 오고 그치는지를 속속들이 뇌에 새겼다. 이번 주 내내 비가 올 확률은 85%였다. 그 사실에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를 도통 확신할 수 없어, 필요한 것만 챙긴 다음 일상으로 향했다.

 

일상으로 바빴던 오늘은 비 올 확률이 85%였지만, 비는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또 예상하고 기대했던 건지도 모른다. 비를 싫어했던 내가 날씨 예보가 들어맞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인정하자면, 얼른 비가 하늘을 뚫고 나한테 오기를 바랐다. 비와 함께 심해로 떠내려 간 기억은 다 내가 너무 사랑해서 아팠던 기억이라는 걸 입속 지느러미를 읽으며 깨달았으니까. 한때 미치도록 사랑했던 것은 차츰 나를 무너트릴 수밖에 없다. 사랑과 상실은 나란히 출발해서 다른 속도로 마음에 도착한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한 내 잘못이고, 다 알고도 떼어내기는커녕 내 마음의 심해로 내려보낸 내 잘못이다. 잘못한 건 알겠는데, 그 마음과 기억으로 내가 잘못되었다 한들 여전히 나는 내 마음의 심해에서 그 꿉꿉한 기억들을 떼어낼 생각 없고, 오히려 비 오는 날마다 그 기억에 푹 잠기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 생각 때문에 비를 유난히 싫어했었다. 싫어하고 싶었다. 싫어하는 시간은 좋아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쓰이니까.

 

입속 지느러미를 또 읽고 싶으므로 비가 또 와 줬으면 좋겠다. 입속 지느러미 없이도 비를 다시 조금씩 좋아하고 싶으므로 비가 질릴 만큼 오래 내렸으면 좋겠다. 곧 끝날 장마가 속 시원히 다 쏟아내고 떠나갔으면 좋겠다. (물론,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만큼만….)

 

이 글로 얼추 쏟아내긴 했어도 다 쏟아내진 못한 나도 덩달아 다 쏟아내도록 쏟아지기를. 곪을 대로 곪아, 심해 밑에서 기괴해진 기억을 다 끄집어내서 닦아 줄 만큼 내 속에서 범람하기를. 어떤 모양으로 변했다 한들 네가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지 않은 적 없다는 고백도 쏟아내 버리게 막 퍼부어 주기를. 더 흉측해져도 좋으니 계속 내 심해에서 헤엄쳐 달라고도 부탁하고 싶으므로 한 번만 더 세차게 내리면 안 될까.


기필코 비 내리는 날에 그러고 싶다. 그러니 가시처럼 따갑고, 인어 비늘처럼 물컹거리거나 축축한 비가 또 내 위로 쏟아지면 좋겠다. 함께 쏟아지고 싶다. 설령 다음 비가 더 큰 돌풍을 몰고 와도 기꺼이 사랑해 줄 테니 또 왕창 쏟아지기를. 그러다 또 누수에 시달리던 기억과 감정이 심해에 사는 괴물처럼 흉측해져도 비가 다시 좋아져 버렸듯이 또 좋아해 줄 테다.


난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사랑과 상실은 나란히 출발해서 다른 속도로 마음에 도착한다. 이걸 알아서 그렇다. 그걸 알면서도 또 미친 듯이 사랑할 거고, 다 알고도 계속 품고 살다가 너무 썩어 버리면 아무도 쉽게 발 못 담글 마음의 심해를 수조로 삼을 테다. 하필 그런 사람이라 비가 싫었고, 비가 좋아졌다.

 

 

 




(+)

 

선형의 추하다면 추한 시절을 읽으며 누구나 다 마음속에 심해 하나는 만들어 두고 사는 걸 알았다. 나만 마음에 기괴한 괴물이 사는 심해를 짓고 사는 게 아니구나. 우리 다 잘 숨기고 살았던 거야. 괴물이 펄떡댈 때마다 비 대신 울면서. 그렇게 각자 수조인지 심해인지 모를 것을 숨겼던 거라고.


이렇듯 안도하는 시간을 비 사이에 심어 준 이야기라 시시콜콜 떠들 수밖에 없었다. 조예은 작가가 앞으로도 기괴하지만, 따듯해서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를 써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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