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물에서 온 자

화만 내는 강사님에게 반할 확률

by 헤엄



오래 입으려고 했던 수영복을 다시 수영장 장롱에 넣었다. 그 수영복은 수영 막 시작했을 무렵 다이어트가 끝나면 입겠다는 각오로 산 수영복이었다. 그러나 수요일 수업이 끝날 무렵부터 당분간 입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동안은 육지에서 평영 발 자세만 배울 거예요.”

육지. 그러니까, 물속이 아니라 수영장 바닥에 엎드려서 듣는 수업이 ‘한동안’으로 예고됐다. 평영 발 자세는 다리를 W자로 오므렸다가 확 펼치고, 다시 닫는 걸 반복한다. 소심하게 펼칠수록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줄어, 최대한 확 펼쳐야 하는데 문제는 내 수영복이 하이컷이라는 거다.

하이컷은 쉽게 말하자면, 엉덩이를 가리는 천이 부족한 수영복이다. 즉, 물속이 아니라 수영장 바닥에서 다리 오므리고 펼치다 보면 맨 엉덩이를 보일 만한 수영복이라는 건데. 안 된다. 엄마 말고는 아무도 안 된다. 그렇다면 다른 수영복이 필요했다. 심지어 자꾸만 나 여기 있다고 소리치는 엉덩이를 감추느라 바빴던 수요일 강습 끝에서 강사님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금요일에는 육지 수업 위주로 하고, 물속에는 마무리할 때만 들어갈게요.” 그 말은 내 맨 엉덩이를 들킬 위험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거다. 나도 제대로 못 보고 사는 내 맨 엉덩이를. 우리 엄마 말고는 아무도 본 적 없는 내 맨 엉덩이를! 아무래도 수영복을 바꿔야 할까. 그렇지만, 내 오랜 꿈이었는데. 그렇지만, 엉덩이는 소중한 건데. 그렇지만. 또 그렇지만. 다시 그렇지만.

수영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와 나는 다퉜다. 맨 엉덩이는 안 된다고. 수영복을 바꾸는 것도 안 된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말다툼 끝에 가장 커다란 마음이 이겼다. 맨 엉덩이고 다른 수영복이고 상관없이 난 금요일에 저 강사님을 보고 싶어. 앞으로 세 번밖에 못 볼 저 강사님을. 그 이후로는 고인물로 돌아갈 저 임시 강사님을.




임시 강사님.

지금부터는 편의상 ‘그’라고 부를 그는 우리 수영장에서 가장 눈에 띈다. 물에 푹 젖은 숏컷과 다부진 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한 걸음 뗄 때마다 크고 작은 파열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뛰지 마세요!”

“나오세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더 힘차게 안 해?!”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그의 목소리가 수영장 곳곳과 귀에 박힌다. 들어가지 마. 수영 그렇게 하지 마. 틀렸어. 항상 남 자존감을 심해로 빠트려 버리는 말들이 그의 우렁찬 목소리로 완성된다. 그러나 그에게 감히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포켓몬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그는 우리 수영장의 관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수영장 고인물을 싹 모아 둔 마스터 반의 대장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수영 강습을 막 등록하고,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던 날을 기억한다.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때가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를 처음 만난 순간이고, 그는 이제야 나를 만났지만.


어찌 되었든 그때 나는 정말이지, 초급반 그 자체였다. 샤워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치껏 샤워는 마쳤지만, 이후 뭘 하고 수영장에 들어가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허둥대며 삼만 원짜리 수영복부터 입으려는데, 망할. 수영복이 종아리에서 더는 움직이질 않았다. 수모는 탱탱볼인 양 머리에 씌우는 즉시 곧바로 튕겨져 나갔다. 좀비처럼 몸을 기이하게 구기면서까지 수영복만이라도 입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수영복은 더 완강하게 버텼다. 결국,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수치에서 벗어나고자 집으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불쑥 내 팔을 잡아, 돌려세웠다. 그러고는 “언니!”하고 다른 누군가를 부르더니 대뜸 샤워실 바닥에 내팽개친 내 수영복을 집어 들었다.


“한쪽 다리 들고.”


사람은 예상을 아예 벗어나는 상황에선 무력해진다는 걸 그때 배웠다. 수치고 나발이고 넋 나간 채 한쪽 다리 들자마자 누군가는 단 3초 만에 내게 수영복을 입혔다. 마침 ‘언니’라는 부름에 다가온 누군가가 내 머리 위로 수모를 얹더니 쑥 씌웠다.


“오늘 처음이죠?”

대답하려 했지만, 내 대답은 가로채졌다.


“처음이지, 두 번째겠어?”

“언니는 왜 끼어들고 그래?”

“부끄러워서 도망가려는 아가씨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더 부끄럽지 않겠냐?”

“아무튼 지간에 아가씨, 이 수영복 작은 거 아니에요. 아가씨 몸에 딱 맞아. 더 큰 걸로 바꾸면 절대 안 돼. 그럼 수영하다 벗겨진다? 며칠간은 내가 입혀 줄 테니깐 계속 와요. 알겠지?”


고개라도 끄덕이려 했지만, 둘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제야 나도 수영장으로 가려다가, 수영장과 샤워실 사이 거울 앞에 섰다. 내가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수모도 똑바로 잘 쓰고 있어서 제법 수영인 같아 보였다. 그런 생각에 잠길 무렵 이젠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거울로 슬쩍 보니, 아까 수모를 씌워 준 ‘언니’라는 사람이었다.


“관두지 말고, 마스터 반까지 올라와요. 우리 마스터 반 쌤, 정말 좋은 분이거든. 홀딱 반할 거야.”

그러나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굉음을 들었다. 회원님! 그렇게 수영할 거면 나와요! 누가 수영을 그렇게 해? 진짜 이럴 거야? 나와! 잔뜩 구겨진 미간과 성난 목소리로 수영장을 누비는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스터 반 강사였다. 정말 좋은 분이라기엔 그는 틈만 나면 악 쓰듯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후 수영복을 입혀 준 두 고인물은 자지러지듯 웃으며 그에게 달려갔지만, 난 가만히 서서 질문 세 개만 되풀이했다.

첫 번째. 그는 왜 화가 난 걸까?

두 번째. 화난 저 사람이 왜 좋은 사람이라는 걸까?

세 번째. 수영을 배우러 왔는데, 그렇게 수영할 거면 나오라니. 이제 처음 온 나는 수영장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

다행히 나는 초급반이었고, 초급반 강사님은 다정하셔서 내가 물속에 들어가는 걸 매번 허락해 주셨다. 그럼에도 틈틈이 눈치를 봤다.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건너 건너 마스터 반 레인은 계속해서 불길이었으므로. 나와. 다시 들어와. 그렇게 수영하지 마. 수영 경력이 몇 년인데 아직도 이걸 가르쳐 줘야 해? 왜 이렇게 못생기게 수영해?


못생기게 수영을 한다는 멸시에도 일 년 내내 마스터 반의 경쟁률은 웬만한 대학 경쟁률이었고, 마스터 반 진급 시험에서 떨어졌다며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마주쳤다.


왜일까.


그는 그의 레인은 물론, 그 넓은 수영장 다 메꿀 정도로 역정만 내는데, 우리 수영장 고인물은 대부분 그를 좋아했고, 그의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왜?! 몰래 훔쳐보기를 매일이었다. 매일 훔쳐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인상 쓴 얼굴로 사람들을 혼냈다. 이따금 샤워실에서 마주칠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씻을 때조차 그는 화나 있었다. 씻는 수강생을 붙잡아다, 왜 지난주에 나오지 않았느냐며 혼내는 것도 종종 목격했다. 금방 시선 내리깔았지만. 이쯤에서 비밀 하나를 밝히자면, 평영으로 좌절할 때마다 내심 안도했다. 이 지경으로는 평생 마스터 반에 갈 일 없다. 평생 그에게 쫓겨나거나 혼날 일 역시 없다. 나는 절대로 그에게 혼나고 싶지 않았다.

난 혼나는 게 싫다. 어렸을 땐 엄마한테 혼나기 싫어서 엄마가 화나 보일 때마다 아빠가 저지른 잘못 일부를 털어놓으며 내 죄까지 아빠에게 뒤집어 씌운 나였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도 혼나기 싫어서 아빠를 판 내가 타인에게 혼나는 건, 절대 가벼운 취미일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국, 나는 평영의 벽에 부딪치며 수영 강습을 관뒀고, 마스터 반과는 영영 멀어진 것만 같았다.




문제는 인생은 때때로 작위적이라는 점이다. 4개월 만에 수영장에 되돌아왔다는 점도, 지난 강습 때도. 죄 작위적이었다. 지난 강습 때였다. 강강술래를 유도한 강사님께서 갑작스레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수영 강사로 여기저기 면접 보러 다닌다고. 그런데 도무지 면접에서 붙질 않아서 수영 실력을 늘리고 싶어졌다고. 그렇게 한참이나 수영 강사의 고민을 쏟아내던 강사님은 다짜고짜 그 이야기를 비극 안으로 옮겨 버렸다.

“그래서 제가 하려던 말은요. 이 수영장 면접을 너무 못 봐서 떨어질 줄 알고, 개인 강습을 신청했다는 거예요. 취소하기엔 너무 좋은 기회라 2주간 자리를 비울까 합니다.”

2주간 개인 강습을 받으러 가야 한다면, 2주간은 자유 수영으로 대체하겠다는 걸까. 아쉬운 마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무렵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2주간은 다른 선생님께서 여러분을 가르쳐 주실 거예요.”

이때 나는 슬그머니 옆 레인인 상급반 레인을 훔쳐봤다. 상급반 강사님 또 바빠지시겠네. 그래도 오랜만에 저 강사님께 수업을 듣는다면 좋을 것 같아. 이때만 해도 나는 다른 강사님의 등장이 반가웠다. 당연히 상급반 강사님일 줄 알았으므로. 그도 그럴 게 현재 상급반 강사님은 작년 내내 초급반과 중급반을 동시에 가르치셨고, 그 탓에 일 년 가까이 나와 씨름한 강사님이었다. 상급반 강사님, 딱 거기까지 말할 즈음이었다.

“마스터 반 선생님께서 2주간 가르쳐 주실 거예요.”

망할.


서둘러 그를 봤다. 마스터 반 강사라면 당연히 그겠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마스터 반 강사가 온 걸지도 몰라. 그러나 그가 안전요원과 함께 여유롭게 떠드는 게 보였다. 그러다 중급반 강사님께서 그를 손짓으로 부르자, 그는 갑작스레 미간을 구기며 중급반 레인으로 시선 넘겼다.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포식자의 눈으로 중급반 레인을 훑을 뿐이었다. 이때 그의 입은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귓가에 굉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수영 그렇게 할 거면 관둬! 평영 자세가 왜 이래? 이럴 거면 물속에서 당장 나오세요!


아. 안 돼. 안 돼. 그만은 안 돼.




안 된다고 해도 어느덧 그는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수요일 아침에 당당하게 ‘다녀오겠습니다!’로 글을 마치지만 않았어도 “네!”하고 그에게 대답할 일은 없었을 텐데. 우렁차고 화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역시 그는 화나 있다. 출석부와 나를 번갈아 보는 두 눈썹 사이가 보란 듯이 구겨져 있다. 화가 많이 난 걸까. 원래 강사님은 레인을 한두 바퀴 걷게 한 다음 강습을 시작했지만, 그는 다짜고짜 자유형과 배영으로 한 바퀴씩 돌고 오라고 한다. 대체 얼마나 화가 난 걸까. 자유형으로 물속을 누비던 중에 갑작스레 그에게 붙잡혔다. 그는 내 허벅지를 들어 올리며, “더 빨리! 더 빨리 못 움직이겠어요? 대답하지 말고 더 빨리!” 하고 역정을 낸다. 그의 화를 누그러트리고자 있는 힘껏 밀어붙이듯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반 바퀴 돌았을 무렵 그는 내 뒤통수에 대고 또다시 화낸다. 너무 느려 터졌어! 더 빨리!

대체 그의 화는 언제 풀리는 걸까. 자유형과 배영으로 두 바퀴 돌자마자 모두를 멈춰 세운 그가 한 명씩 훑어보고는 냅다 외치는 말 역시 화에 젖어 있었다.

“평영 할 줄 안다 하시는 분? 없죠?! 다 물속에서 나와요!”

아. 나도 드디어 이 말을 듣는구나. 너에게 물속은 과분하다. 신성한 물속을 욕보이지 말고 당장 나와라. 평영도 할 줄 모르는 주제에 물속에 머물러? 건방진 것. 이런 뜻을 담은 듯한 목소리로 그는 미적거리는 수강생들에게 다시금 외친다. 빨리 키즈풀로 가세요. 빨리!

심지어 키즈풀에서 자유 수영하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내쫓은 그는 상체를 수영장 타일에 대고 누우라고 했다. 그때도 역시 엄청나게 큰 목소리였다. 이후 수강생 한 명을 본인의 마네킹인 양 다리를 이리저리 구부릴 때도 구겨진 미간은 그대로였고, 수영장 바닥에 누워, 다리를 오므렸다가 펼칠 때마다 모두의 다리를 마네킹인 양 확확 잡아 고칠 때조차 그는 온몸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화난 그의 지시대로 사십 분을 달렸을까. 마침내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겁에 질린 모두가 다급히 물속에 뛰어들자마자 오늘 배운 평영 발 자세로 한 바퀴씩 돌고 오라는 윽박이 들렸다. 나는 당연히도 마지막을 자처했다. 평영은 늘 나를 맨 뒤로 밀어내므로. 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내 차례였다. 그래도 사십 분간 엉덩이 사수하며 배운 게 있으니, 한 뼘 정도는 나아가지 않을지 기대하며 그의 집요한 눈길에서 달아나듯 잠수했다. 물속 바닥 타일을 보며 다리를 W자로 오므리고,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잡혔다.

“내가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어.”

그가 내 다리를 확 잡아서 발바닥이 엉덩이에 닿을 만큼 꽉 붙인다. 그러고는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엉덩이. 아까부터 엉덩이를 계속 내밀어.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앞으로 못 가는 거야. 잘 봐. 여기 힘으로 가는 거예요. 평영은. 이어 그는 내 허벅지 어딘가를 꽉 눌렀다가 확 놓는다. 그 순간 평영으로 가장 멀리 나아간다. 내 인생에서 평영으로 이토록 멀리 나아간 적이 있던가. 이미 그는 나를 놓아주었고, 지금부턴 나 혼자 그가 말해 준 허벅지 어딘가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에게 붙잡혔다고 생각하며 발바닥을 엉덩이에 붙인 다음 알 수 없는 허벅지 어딘가에 힘을 주며 다리 확 펼쳤다가 닫는다. 마침 그가 외친다.

“3초! 마음 급한 거 알겠지만, 3초만 기다려!”

하나. 둘. 셋.

속으로 외치는 동안 헛웃음이 났다.

‘홀딱 반할 거야.’

내가 평영으로 나아가고 있다. 반년 넘게 단 한 뼘도 나아갈 수 없었는데, 그 탓에 수영을 때려치웠는데. 반년이 무색하게 내가 평영으로 한 뼘씩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평영으로 한 바퀴 다 돌자마자 그가 다시금 나를 붙잡았다.

“자세가 아주 조금 좋아졌어요. 근데 급해지면 엉덩이를 자꾸 들어. 그거 조심해.”

그때도 그는 구겨진 미간으로 나를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왜였을까. 그 순간 구겨진 미간과 내려간 입꼬리에서 다정을 찾아내고 말았다. 포식자의 시선이 분명한데, 그 시선에는 다정도 분명히 있었다. 계속 화난 얼굴인 그에게서 다정을 찾아내다니. 내가 드디어 미친 게 분명하다. 수영장 물에 락스 말고 다른 것도 탔나. 이를테면 해리 포터에 나오는 사랑의 묘약이라도 탄 걸까. 그의 집요한 눈길과 큰 목소리가 다정에서 기인한 거라는 확신이 멈추질 않는다.

그는 집요하게 다정할 뿐이다. 그의 집요한 다정은 온도가 높아서 남을 낯뜨겁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가 다정하지 않다면, 무슨 수로 열네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각기 다른 문제점을 쥐여 줄 수 있을까. 이토록 내 문제점을 꼬치꼬치 물어뜯는 건, 그만큼이나 오래 나를 시야 안에 넣어 둔 결과 아닐까. 단번에 찾아낸 타인의 단점은 대부분 편견이지만, 당사자도 몰랐던 ‘진짜 단점’은 오래오래 지켜봐야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열네 명의 문제점을 하나씩 찾아낼 만큼 집요하게도 지켜본 거다. 지켜보는 눈은 다정에서 출발한다. 다정하니까, 뜨거울 만큼 다정하니까 타인을 오래 볼 줄 아는 거다.

“다음 수업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육지에서 평영 자세 연습만 할 거야. 아셨죠?”

반말과 존댓말을 마음대로 오가며 뚫어질 만큼 수강생을 하나씩 본다. 시선으로 대답하라는 듯이. 그러다 나 역시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 혼자서 그의 시선을 마음껏 해석했다. 어디 다음 수업에 올 테면 와 봐라. 집요하게 가르쳐 주마. 끈질기게 네 부족한 점을 찾아내고, 내가 채워 줄게. 넌 모자라. 모자란 것은 채워질 수 있다는 거야. 와 봐. 다시 와 봐.

그런 열의가 느껴졌다.

여전히 나는 그에게서 화를 본다. 그는 화가 도드라질 만큼 나 있다. 그는 화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너무 많다 보니 그의 다정 역시 불에서 출발했다. 다정에도 온도가 있다면 높은 온도이지 않을까. 다정하게 안아 주었다는 표현을 잘 상상해 보면, 36.5도나 되는 몸을 가져다 붙이는 모습이니까. 그러니 수영 강사인 그는 물속에서 불같은 다정을 뿜어내며 내 모자란 부분을 전부 태울 심산인 게 분명했다. 비로소 그에게 홀딱 반한 고인물들을 이해했다.




이후로는 금요일만 기다렸다. 그는 또다시 내 약점을 찾아내고, 거침없이 들출 테다. 내 약점과 단점에 대고 인정사정없이 화를 뿜어낼 것이다. 난 그 뜨거운 다정에 기진맥진하겠지. 결국, 금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엉덩이 다 가리는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에 갔다. 그는 여전히 화난 얼굴이었고, 처음부터 물속에서 나오라며 수영장 떠나가라 소리쳤다. 서둘러 물속에서 나오고, 수영장 바닥에 누워, 그의 호각 따라 평영 발 자세를 하는 동안 수영장은 왠지 모르게 따듯했다. 여름이라 에어컨 가동이 멈추질 않고, 발 끝만 닿아도 시린 물과 타일뿐인 수영장이 자꾸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또 이러네. 엉덩이 들지 마세요!”

강습 내내 그는 나를 마네킹으로 아는지 틈만 나면 내 발목을 붙잡아, 엉덩이 쪽으로 꺾어 댔다. 게다가 내 엉덩이가 떠오를 때마다 다짜고짜 손바닥으로 눌러댔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는 안 만지는데. 심지어 사십 분 넘도록 발 자세만 연습한 끝에 평영으로 겨우 물속을 한 바퀴 돌고 올 즈음이었다. 그때 그는 있는 힘껏 내 다리를 붙잡았다. 그뿐인가. 우리는 서로 바로 옆에 있음에도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언니!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다리 붙이고! 시선은 배꼽 보고! 쭉 펼쳤으면 3초 기다려! 아, 정말! 엉덩이! 엉덩이 내밀지 말라 했잖아!”

그의 끝없는 화에 나 역시 열이 받을 만한데, 이상하게도 열을 다르게 받는 것 같았다. 그의 열을 다 받아내고 싶었다. 그가 나에게 다른 이유로 화낼 때까지. 거기다 더 이상한 건, 그가 내게 화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평영으로 나아가는 순간도 길어졌다. 이대로 쭉 화내는 그에게 시달리면, 평영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았다. 그가 계속 나에게 화를 내어 준다면 얼마든지 또는 끝까지. 그렇게 물인지 불인지 모를 것에 끊임없이 뛰어들 즈음이었다. 그가 호각과 함께 강습 종료를 알렸다. 그러고는 아까보다 더 구겨진 미간으로 한 명씩 훑으며 이런 말을 했다.

“당분간은 수업에 절대 빠지지 마요. 배우는 기간에는 빠지면 안 되는 거예요. 누구나 처음에는 못하는 거야. 못한다고 빠지지 마시고, 오세요. 웬만하면 와요. 난 한 번 가르치면 끝이야. 이후로는 반복만 시켜. 내가 한 번 가르칠 때 빼먹지 마시라고. 알겠어?”

연신 미소 지으며 끄덕이는 동안에도 그는 단 한 번도 미소 짓지 않았다. 보통 미소는 상호 간 주고받는 표정 아니었나. 그래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후 물 밖으로 나오느라 잠시 허벅지를 짚었다. 수영장이 타오르는 것 같던 순간이 현실이었는지 허벅지 전체가 뜨거웠다. 수영장 수온은 반드시 낮게 유지한댔고, 차가운 물속에서 고작 두 바퀴밖에 돌지 않은 날이었는데. 또 웃음이 났다. 화내는 그를 향해 힘껏 헤엄치다 보니 허벅지로 불이 옮겨 붙은 걸 알아 버렸으므로. 샤워실로 향하는 동안 계속해서 뜨거워진 허벅지를 문지르며 그의 말에 내 마음대로 대답을 가져다 붙였다.


그래. 난 못해. 난 정말 아무것도 못해. 그게 어쨌다는 거야. 내가 뭐든 잘할 줄 알고 덤빈 적 있나? 잘하고 싶어서 계속했지, 잘하니까 계속한 적 없잖아. 내가 도망치나 봐라. 월요일에 보자고. 언젠가는 마스터 반에서도 보자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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