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평영도 잘하고 싶다!
거북이는 느리다.
그러나 그런 거북이조차 나를 동료로 받아들이긴 싫을 테다. 거북이 대신 직접 대답해 보자면, 나는 거북이보다 느린 ‘평영 거북이’이기 때문이다. 평영 거북이는 거북이 없인 물속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거북이 말고 인간이 되고 싶다.
“볼 때마다 살이 빠지신단 말이야.”
나에겐 평생 꼭 쥐고 사는 믿음이 있다. 내 눈에 유별나게 내가 걸리는 만큼 남 눈에는 내가 투명 인간일 거라는, 조금은 우습고 허무한 믿음이다. 그도 그럴 게 어디서든 나는 딱 중간에 파묻히는 사람이었다. 아르바이트조차 미들 타임만 해 왔고, 서열 문화에 찌들었던 전 직장에서도 딱 중간 서열에 해당해,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도 밀어 올리는 신세였다.
그런 나였는데. 월요일 수업이 한창일 때 다짜고짜 옆 레인에서 누군가가 중급반 레인 쪽으로 말을 걸어왔다. 마침 킥판에 의지해서 엉성하게 한 바퀴를 헤엄치고 온 나는 단숨에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내게 말을 거는 줄도 몰라서 묵묵히 수경만 닦았다. 그러다 옆 레인, 그러니까 상급반 강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빠졌다니까!”
확실히 나를 겨눈 말이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급반을 가르쳤던 상급반 강사님께선 나와 마주칠 때마다 왜 살이 자꾸 빠지는지를 묻곤 했었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니까, 설마 나와 그 대화를 이어갈 줄은 몰랐다. 상급반 수강생들이 접영으로 물살을 가를 동안 상급반 강사님이 내 옆으로 다가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기억하고 있다. 몇 달 전에 서로 안부로 주고받았던 ‘살 얘기’를 다시 우리 사이로 주섬주섬 꺼내고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
나는 남의 기억에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내 존재는 어디서든 희미했고, 몇 달만 지나도 다들 내 이름이나 얼굴을 아무렇게나 기억했다. 그렇다고 딱히 희미한 나를 불만으로 삼진 않았다. 나를 잊은 사람들에게 서운하지도 않았다. 희미한 나는 언제나 가장 보통의 나였으므로. 그런 내가 몇 달 만에 마주친 상급반 강사님의 기억에 아직 살아남아 있다니.
물론, 나는 중급반 망령이었다. 오래오래 중급반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만 중급반에 오래 머무른 게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중급반을 떠다녔다. 그들 중 하필 내가 한때 중급반 강사님이었던 상급반 강사님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게 얼떨떨하기만 했다. 얼떨떨한 마음을 감추지도 못한 채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가요.”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도 잠깐 했다. 마침이었다.
“쉬지 말고 다시!”
임시 강사님께서 내게 엉성한 평영을 주문했다. 상급반 선생님과 가벼운 눈인사를 끝내고, 서둘러 킥판 끝부터 잡았다. 잡은 손에 힘껏 힘이 들어갔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발 끝을 허벅지 위로 당겼다. 이어 배를 내밀고, 더욱이 힘껏 발을 옆으로 뻗으며 다짐했다. 중급반 망령을 지켜보는 눈이 하나쯤은 있다.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다. 수영장 밖에서 나는 희미하지만, 적어도 이 수영장에서만큼은 잠깐 눈에 띌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보여 주자! 중급반 망령의 평영 실력이 조금은 나아졌다는 걸!
그러나 다짐은 다짐일 뿐,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실패를 의미하지도 않을 텐데, 그날 내내 평영을 실패했다. 발 끝에 힘이 자꾸 들어가다 보니 안 그래도 높은 평영의 벽이 더 견고하게 높아져 갔다.
결국, 월요일 강습 내내 임시 강사님께 혼났으며 나 역시 속으로 나를 끊임없이 혼냈다. 내가 괜히 중급반 망령인 줄 알아?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잘하려고 힘주는 건데. 심지어 내가 나를 혼내는 과정에서 생각은 극으로 달렸고, ‘망령은 인간 눈에 보여선 안 돼. 다시 투명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이나 생각하자.’하고 나를 설득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창피해서 차라리 투명 인간이 나을 것 같았다. 그 누구에게도 내 평영 실력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뭘 크게 바라면 자주 어긋나는 사람답게 수요일이 되자마자 투명 인간은 평영 거북이로 종족이 바뀌고 만다.
이번 수요일은 8월 14일이었고, 임시 강사님이자 마스터 반 강사님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다. 우리 반 사람들은 후자보다는 전자에 기울어졌는지 중급반 레인은 한산했다. 광복절 전 날, 즉 공휴일 전 날인 탓에 단순히 한산했다고 표현해도 되는지 고민할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임시 강사님께서 출석을 다 부르자마자 슬그머니 중급반 레인을 둘러보았는데, 나 포함 네 명이 다였다.
망할.
아무리 내가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어도 네 명 중 한 명일 땐 자연스레 눈에 자꾸 띄고 만다. 내 평영 실력이 수면 위로 드러날 미래가 코앞에 다다르자마자 짧고 긴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이후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내 눈에 혼자서 평영이 가능하겠다 싶은 사람은 등딱지 뗄 거야. 근데 등딱지 없인 못하겠다 싶으면 그냥 계속 달고 있을 거야. 알겠어요?”
등딱지. 거북이 등딱지를 연상시켜, 등딱지 또는 거북이로 표현하는 수영 보조 도구를 말한다. 풀어 설명하자면, 등에 매달아 두는 부표로 사람 몸을 원만하게 띄워 준다.
그냥 계속 달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등딱지 없인 평영에 익숙해질 자신 없었다. 진심이었지만, 그게 일대일 강습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면 진심과 함께 자취를 감췄을 테다. 나도 남들처럼 강습에서 도망쳤을 거라고.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은 단 한 바퀴 만에 등딱지를 제거했고, 나 혼자서 등딱지를 매단 채 발길질인지 평영인지 모를 것으로 계속 부유하고 있었다. 그 탓일까. 어느덧 임시 강사님께선 나와 두 손을 맞잡았으며, 틈틈이 미소도 보여 주셨다.
뭐지?
집중 관리 대상이 되면서 한 시도 못 쉬긴 했다. 쉴 틈 없이 평영 발 자세와 발길질을 번갈아 하며 한 바퀴씩 차곡차곡 쌓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이 정도로 미쳐 버린다고? 웃는 얼굴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임시 강사님의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띄워졌다. 고작 이십 분을 채운 집중 관리 끝에 헛것을 보다니. 죽기 직전이 되면 삶이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간다던데, 왜 나는 삶 대신 임시 강사님의 미소만 자꾸 보이는 걸까. 삶보다 더 원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옳지! 좋아! 잘했어!”
게다가 이젠 헛소리까지 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자마자 임시 강사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덮었다. 아니야! 방금 전까진 잘했잖아! 다시! 방금 전처럼 해! 이 목소리는 도무지 헛것일 수 없었다. 내가 죽었다 살아난 걸까. 마침 쉬는 시간이 십 초 정도 주어졌고, 십 초 만에 깨달았다. 헛것이나 헛소리가 아니었다. 수요일 강습 내내 임시 강사님은 나에게만 웃어 주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평영으로 나아가면 ‘옳지!’ ‘좋아!’ ‘잘했어!’를 버튼 누르듯 뱉었다. 그 기계적이면서도 인자한 칭찬이 인간 사이에 낀 거북이를 나아가게 할 거라고 믿는 듯이.
다행히 그 거북이는 칭찬에 약했다. 칭찬해 주면 발길질 대신 평영을 보여 주는, 신기한 거북이였다. 신기한 거북이는 오십 분간 이어졌던 강습 끝에 등딱지를 떼어내며 확신했다. 내내 몰아쳤던 강습을 견뎌냈다면, 원래 강사님을 놀라게 할 만큼은 실력이 늘었을 거라고.
그러나 투명 인간에서 평영 거북이로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거북이는 금요일을 내다보는 방법 따윈 몰랐다. 13일의 금요일보다 끔찍한 금요일을 맞이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평영 발차기만 할 줄 알면 모든 영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돼요.”
그 말과 함께 강사님께선 등딱지도 없는 거북이를 물 위로 띄우고, 열 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 앞에서 거북이를 마네킹 삼았다. 더 나아가 거북이는 자신이 계속해서 발가락에 힘을 주는 줄도 몰랐다. 그 거북이를 마네킹으로 삼은 강습이 이어지는 동안 발가락 힘 좀 빼라는 말 역시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강사님은 거북이의 발가락을 꽉 쥐고 흔들어 가면서까지 거북이에게서 발가락 힘을 앗아가려 했으나…….
“… 어떻게 빼는 건데요?”
“그냥 힘을 쭉! 빼세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거북이는 발가락에서 힘 빼는 법을 몰랐다. 게다가 거북이는 평생 몰랐다. 거북이가 평소에도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사는 것조차. 다리에 힘이 풀리며 넘어진 적이 많았기에, 거북이는 자신이 무의식 중에 계속 다리에 힘을 주는 줄 몰랐다. 그중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네킹 신세를 십 분 만에 벗어난 상황이었다. 곧장 거북이는 거북이 등껍질을 찾았다. 거북이는 거북이니까. 그때였다.
“저는 수업 때 웬만하면 거북이 등딱지를 쓰지 않아요. 등딱지를 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강생님이 많으셔서 등딱지 없는 수업을 선호합니다.”
네?
저는 평영 거북이인데요?
결국, 수강생 모두가 거북이 등딱지 없이 킥판에만 의지해, 평영을 시작했다. 평영 거북이인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곧바로 내 다리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강사님께선 내가 다리에 힘을 주기 때문이라며 제발 힘 좀 빼라고 했으나 알 수 없었다. 무의식 중에 힘을 주는 것 같다는데, 내가 내 무의식을 어떻게 제어하지. 그 방법을 알았다면 무의식 틈틈이 끼워 둔 우울에 패배하는 삶을 살지도 않았을 거다.
그 탓에 다들 조금씩 나아가는데 나만 계속 가라앉았다. 가라앉고, 코와 입에 들어오는 물 때문에 캑캑대며 일어나고, 다시 평영을 해 보려 하나 가라앉는 시간이 계속됐다. 그사이 상급반 강사님과도 눈이 마주쳤다. 다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내 눈은 습관인 양 임시 강사님을 찾아냈다. 그는 안전 요원 조끼를 입은 채 수영장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받은 게 엊그제인데 이틀 만에 가라앉는 내가 쪽팔렸다. 그 탓에 기분도 물속으로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나마 킥판 없이 평영 발 자세로만 나아가는 순서부터는 가라앉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다만, 여전히 남들보다는 느렸다. 한 사람씩 앞으로 보내다 보니 꼴등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거북이 등딱지 없이도 난 거북이였다. 나만 거북이였다. 나 포함 모두 등딱지가 없는데, 또 나만 거북이인 게 한심해서 얼마나 오래 발길질하듯 평영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부터는 평영 팔을 배울 거예요.”
심지어 아직 평영 발 자세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강습 진도는 팔 자세로 나를 앞질렀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언제나 희미한 존재였음을 다시금 깨우쳤다. 수영장 안이라고 달라질 건 없었다. 심지어 수영장 안에서는 느리고 희미한 존재였다. 내 진도가 그들 중 어중간했더라면 모를까. 아예 못하는 나를 기준으로 삼는 것보다는 그들 중 가장 어중간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진도를 정하는 게 맞았다. 우리 반에서 가장 어중간한 사람은 그나마 평영 발로 서너 번은 나아갈 줄 아니까, 이쯤에서 평영 팔 자세를 배워도 괜찮을 것이다. 나만 안 괜찮아도 다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몸 대신 괜찮지 않은 기분만이 물 가장 깊은 데로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마무리로 배영 시작하겠습니다. 배영으로 세 바퀴 돌고 오세요.”
가라앉은 기분과 머릿속을 수습하고자 곧바로 몸을 띄웠다. 이쯤에서 말해야겠는데, 나에겐 조금은 이상한 버릇이 있다. 생각이 많아지거나 어색한 사람과 남겨지면 천장 타일을 구경하곤 한다. 천장 타일에 답이라도 있다는 듯이. 이번에도 수영장 천장 타일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느라 뚫어질 만큼 천장만 보며 배영으로 한 바퀴 돌고, 두 바퀴째 돌 즈음이었다. 문득 여태 단 한 번도 강사님께서 나를 붙잡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꼴등은 봐줄 필요도 없다는 걸까. 또 나를 깎아먹는 생각이 치밀길래 다시 천장 타일만 넋 놓고 봤다. 그즈음이었나. 앞사람이 먼저 가라길래 대답 대신 한 번 앞서고, 또 앞서며 수영장 천장에 정신 팔린 걸 티 내고 있을 무렵이었나.
“배영을 엄청 예쁘게 하시네요.”
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강사님은 나를 그대로 보냈다. 붙잡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배영을 처음 배웠을 때부터 그 어떤 강사님께도 붙잡힌 적이 없었다. 앞뒤 생각 다 자르고 말하자면, 아마 나는 배영을 잘하는 거겠지. 그나마 배영에는 재능이 있구나. 그렇다면 배영 실력을 절반으로 잘라, 괴상한 평영에 마구 가져다 붙이고 싶다. 그 생각에 잠겨 부유하듯 배영만 하다 보니 호각이 울렸다. 그 호각은 언제나 그렇듯 강습이 끝났다는 안내음이었다. 그대로 도망치듯 샤워실로 도망치려 할 때였다.
“수고하셨어요. 근데 우리 반에 배영을 정말 불필요한 부분 없이 예쁘게 잘하시는 분이 계시네요.”
그분은 평영 거북이, 그러니까 나였다.
다음 주부터 평영 팔 자세를 배운다. 실은 이미 몇 번 배웠다. 올해 초에 수영을 처음 관뒀을 때도 내 진도는 평영 팔 자세였다. 문제는 발 자세가 아예 안 되다 보니 몇 번이고 배워도 평영 팔 자세를 제때 써먹어 본 적 없었다. 그 탓에 두렵다. 내 진도는 또 거기서 멈추는 걸까. 난 또 여기까지인 걸까. 그런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게다가 투명 인간이긴 해도 투명 거북이는 아니므로 또 누군가가 젬병인 나를 알아볼지 모르고, 꼴등까지 밀려나며 강습에 방해되는 거북이로 평가당할지도 모른다. 모르지만. 당분간은 나를 좀먹는 생각에 내 머릿속을 빼앗기지 않기로 한다. 어떻게 하면 안 빼앗기지. 고민 끝에 그 생각이 머릿속 어디에도 드러눕지 못하게끔…, 최근 유행했던 ‘원영적 사고’를 시도해 본다.
나는 수영 강습을 주제로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 중이었는데, 평영을 배우는 속도가 거북이보다 느려터져서 내 예상보다 더 오래오래 연재할 수 있게 된 거잖아. 완전 럭키 헤엄,
이야?
원영적 사고, 언 럭키 평영 거북이를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