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싫어하느라 가려진 것들

독후감인지 수영 기록인지 모를

by 헤엄


바빠도 너무 바빴고, 울적해도 너무 울적해서 단 한 글자도 적기 싫었다. 그나마 수영은 좀 하고 싶길래 저번 주 내내 수영장에 갔지만, 이번 주는 수영마저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가만히 집에만 있었다. 다행히 업무 대부분을 해치운 덕분에 마음이고 몸이고 전원 꺼둔 채 지내도 괜찮았다.

다만, 가만히 누워 있을 때마다 이럴 바엔 한 글자씩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으로 뭘 기록하려 하기는 했으나 그럴 때마다 우울하다는 문장만 들러붙는 탓에 쓰고 지우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쓰고자 한다. 지우려다가 만 흔적을 남겨 둔다.




왜 나는 자꾸만 누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을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업무 보고 후 다음 일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능한 날짜를 간단히 기재해 둔 메시지도 보냈으므로 기다림 끝에 받을 연락은 다음 일정일 줄 알았다. 그런데 단 세 글자가 도착했다.

[알겠다.]

간단하고도 생뚱맞은 연락 이후 내 마음은 분주해졌다. 바삐 철옹성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뭘 잘못했나 봐. 여태 주고받은 메시지를 쭉 읽으며 ‘나였으면 기분 나빴을 말’을 철옹성의 방호벽인 양 하나씩 짚었다.

심지어 수영 강습 중에도 마음속에 철옹성 짓기는 계속됐다. 평영으로 무려 한 바퀴 돌기에 성공했음에도 웃음 대신 한숨만 나왔다. 아무래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아. 난 어떤 실수 혹은 잘못을 저지른 걸까. 알겠다? 뭘 알겠다는 걸까.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이젠 알겠다는 건가. 그 세 글자를 마음 군데군데 심어 두고, 심어 둔 자리 위로 폭탄 저장고라는 이름까지 붙일 무렵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싫어했던 건 아닐까.

그 생각이 굳어지며 헛웃음만 나왔다. 지금 드는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려먹었으며 그저 내가 나를 괴롭히고자 만든 철옹성인 걸 알면서도 철옹성답게 무너지기는커녕 더 견고해지는 게 우스운 탓이었다. 우스운 나머지 헛웃음이 멈추질 않았지만,

알겠다.

딱 세 글자로 세워진 철옹성은 더욱 높이 쌓여 갔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인생은 어떻게든 나를 앞으로 떠밀고, 얼떨결에 나아가다 보면 뭐든 하고 있었다. 마음에다 철옹성을 건설하는 동안 어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 운이 좋아, 마음씨 좋았던 출판사의 서포터즈로 발탁되며 받은 책이었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그때 나는 ‘알겠다.’의 늪에서 덜 허우적거리고자 온갖 일을 벌이는 중이었다. 작업용 책상을 뒤엎고, 책상에 둘 소가구들을 바꾸는 게 첫 번째 도피처였다. 마음에 드는 노트북 받침대가 없는데도 기어코 바꾸겠다는 고집으로 퇴근한 아빠를 붙잡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빠에게 노트북 받침대로 만들어져야 할 나무판자를 맡기고, 그 옆에서 책을 읽었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다.)

물론, 그 책은 제목만 봤을 땐 내 얘기가 아니었다. 난 성격 좋다는 말보다는 예민하고 종잡을 수 없다는 말에 가까웠다. 함께 있으면 지친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별 사유는 언제나 “넌 너무 예민해.”였지, 네가 좋은 사람이라 여기서 놔주는 게 맞는 것 같다는 개소리인 적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은 건, 하필 성격이 좋아서 아직 내 곁에 남아 준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무한히 잘해 주고 싶지만, 그들의 무엇이 이면이고, 미리 존중해 주어야 할 미스터리 요소는 무엇인지를 알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읽을수록 줄곧 내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쯤에서 미리 해명하자면, ‘나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난 성격이 좋은 사람이었어!’따위의 전개가 아니다. 그저 이 책에 종종 등장하는 유형이 나와 가까웠을 뿐이다.

불안과 고독에 가면을 씌워서라도 벗어나고 싶은 사람.

이 책은 종종 그런 사람을, 정확히는 그런 나를 가리켰다. 가만히 누워 있든 온갖 잡일을 하든 어떻게든 불안과 척지려는 나를 가리키며, 그러지 말고 불안과 대화해 보라며 자꾸만 어떤 자리를 만드는 책이었다. 그게 불편했고, 불편한 건 눈앞에서 치워 버려야 하므로 열심히도 읽었다. 그 결과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책이 아니라 불안과의 독대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매사 불안과 붙어 지내면서도 불안을 영영 내쫓고 싶은 사람이므로.


이런 게 나였다.

난 항상 이놈의 독심술에 발목 잡혔다. 누가 내 앞에서 표정이 조금만 굳거나 단답으로 대꾸하면 서둘러 내 잘못부터 찾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이번엔 뭘 잘못했을까.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걸 알아챈 걸까. 어디서 들켰을까. 그렇게 한참이나 속으로 내 잘못을 찾다가, 당장 나누던 대화에서 어떤 잘못도 찾지 못하면, 과감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내 잘못만 집요하게 찾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알겠다. 저 세 글자를 보낸 사람과의 점심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난 긴장한 나머지 서너 숟갈 끝에 식사를 중단했다. 그러고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화에 참여할 뿐이었다. 그때 그가 음식물로 꽉 찬 내 접시를 보며 말했다.

“앞으로 너랑은 밥 먹지 말아야겠다. 같이 밥 먹는 보람이 없어.”

분명 그때는 같이 웃으며 일어났으면서 답장이 짧아진 순간부터 그때를 열심히도 각색하고 있었다. 깨작깨작 먹는 게 재수 없어 보였나 봐. 더 열심히 먹었어야 해. 아니면 대답을 좀 더 살갑게 해야 했나. 이런 각색을 지켜보던 친구는 차라리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왜 ‘알겠다.’ 그 세 글자 이후론 답이 없는지. 추가로 더 남긴 연락에도 왜 답이 없는지. 대답하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그 이유를 알 텐데, 왜 혼자 온갖 순간 다 들쑤시며 땅굴 파고 앉았냐면서.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머리로는 천만 번도 더 물어봤다. 그러나 우습게도 무서웠다. 물어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싫어하는 이유 100가지를 들고 오면 어떡하지. 앞으로도 보고 싶은 사람이므로 끝내 하나씩 해명하고야 말겠지만, 그런 해명을 듣고 싶을까. 차라리 이대로 조용히 낙오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놓고 정작 지난주부터 어제까지 그를 대신해, 그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 백 가지 넘도록 찾았다. 그러느라 아예 연락 두절된 내게 친구가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정 못 묻겠으면 B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 그 사람은 그와도 친하고 너랑도 친하니까 알려 주겠지.”

그 생각을 왜 못 했을까.




그러고도 잠깐은 고민했다. 아무리 B여도 그런 걸 물어봐도 되는 걸까. B마저 곤란해지면 어떡하지. 그래도 단번에 관두지 않고, 고민하는 것은 B였기 때문이다. B 앞에선 그나마 덜 불안했다. B는 나와 육 년 넘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고, 나도 모르는 나를 자주 목격한 사람이라 아는 사람 중 두 번째로 편했다. B는 내가 술 취해 고꾸라져도 옆에 있어 줬고, 지독한 우울증과 부족한 사회성으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때조차 기다려 주었기에 이번에도 내 얘기를 들어주긴 할 것 같았다. 다만, 언제까지고 B에게 어린 모습만 보여 주긴 싫었다. 그래도 차라리 B에게 묻는 게 낫지 않을까. 이처럼 오랜 고민 끝에 B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B는 언제나 그렇듯 다정히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다정에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무너졌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그에게 뭘 잘못했을까요? 대신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고치고 싶어요. 고칠 기회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 답장이 없으신 걸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 너머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소심한 사람이잖아!?”하고 외치는 말도 들렸다. 이후 B는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의 부재 사유를 대신 알려 줬다.

지금 무척 바빠서 나랑도 연락이 잘 안 돼요. 아마 당신이 이렇게 멘탈이 바스러진 줄도 모를 거야. 그냥 그 사람이 지금 바쁘고, 인생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아니, 그리고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나서서 잘못을 찾고 있어요?!

탁 하고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앞 문장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중이었다. 정말이지, 그 책대로였다. 왜곡하느라 놓쳤던 게 많았다. 내 잘못을 찾느라 그를 왜곡했고, 대뜸 그에게 ‘나를 싫어할 이유’를 백 가지나 찾아 주고 있었다. 그에겐 그 이유 따윈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그저 바쁠 뿐이고, 놀랍게도 이런 나를 여전히 좋아하고 있었다.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와중에도 나와 만날 날짜를 미리 비워 뒀다고도 했다. 그런 그를 두고 각색과 왜곡을 서슴지 않은 게 부끄러웠고, 부끄러운 만큼 오래오래 그를 생각했다. 그렇게 차츰 내 불안 뒤로 가려 두었던 그의 실체가 하나둘 떠올랐다.

같이 밥 먹는 보람이 없다던 농담을 내밀었던 그때 그 점심. 입 짧은 나에게 그는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아무 생각 없이 냉모밀을 좋아한다고 하자마자 그는 냉모밀 맛집을 찾아왔다. 그러나 맛집답게 우리가 들렀을 땐 냉모밀은 직원용 냉모밀만 남아 있었고, 하는 수 없이 내가 냉면을 시키려던 때. 그는 직원에게 읍소까지 하며, 직원용 냉모밀을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이후 그는 내게 말을 걸었다.

“네가 추천해 준 음악 잘 들었어.”

“잘? 잘 들은 정도가 아니시잖아요. 하루 종일 들어서 사무실이 얼마나 울적했는데요.”

대답하기도 전에 그와 함께 일하는 팀장님께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때 나는 어떤 대답도 못 했다. 그럴 줄 몰랐다. 지나가듯 추천한 노래를 종일 들을 줄이야. 단 한 번도 안 들을 줄 알았는데.


그뿐인가. 최근 내가 가족 일로 무너져 있을 때 그는 내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그러고는 말했다. 난 너 행복했으면 한다. 나라도 네 가족으로 여기면서 너한테 상처 주기 싫은 가족도 있다는 걸 알아줘라. 심지어 그는 최근 나를 만날 때마다 커다란 휴지를 들고 와선 내 옆에 둔다. 네가 울면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휴지라도 챙겨 와 봤다면서.

그는, 내가 우울과 맞서는 내내 옆에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술에 취한 그와 나란히 담배를 피운 적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런 말도 했었다. 너한테 아버지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든가 해. 난 너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웃었다. 그 말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했고, 그는 곧장 굳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노력하지 말고, 노력 없이도 행복해질 순 없어? 힘들겠지만, 난 네가 언젠가 그랬으면 좋겠더라. 행복해져야지, 행복해져야지 생각 안 하고도 행복한 너를 보고 싶다 이 말이야.”

또 어느 날은 휴지를 다 쓰고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었다. 그날은 저녁 먹자던 그를 두고 혼자 뮤지컬을 보러 가 버렸었다. 이후 휴대전화를 켰을 때 꼭 하나 남아 있는 부재중 전화는 그의 이름이었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면, 그는 어색하고도 호탕하게 웃으며 네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는데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다며 네 세상은 괜찮은지 묻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잘못만 찾았다. 그는 그저 바빠서 답장이 없었던 건데, 지난 일주일간 말 그대로 그를 왜곡하고 각색하며 우리가 여태 쌓아 올린 순간을 부수기 바빴다. 어떤 책이 끊임없이 나를 설득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싫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나는 불안과 맞서기를 잠시, 불안 앞에 그와의 순간마저 가져다 바쳤다.




이후 마음에 전원을 켜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려, 그 책을 두 번 더 읽었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비상 연락망 같은 사람을 곁에 두라고 했을 때 모두가 당신처럼 주변에 사람이 있는 줄 아느냐며 짜증도 냈었다. 그런데 마음의 전원을 켜고 나니 알겠다. 난 왜곡의 달인이다. 기꺼이 나의 비상 연락망이 되어 준 사람들을 불안해질 때마다 가져다 버리는, 못되고 못난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무능한 것 같다 했을 때 정색하며 네가 무능하면 널 알아본 나는 얼마나 틀린 거냐던 친구. 틈틈이 전화 오던 친구도. 전화 걸 만큼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자마자 소리 지르며 넌 내가 가장 신경 쓰는 친군데 뭔 개소리냐 하던 친구. “소심하기는!” 하고는 늘 소심한 나를 먼저 조심히 안아 주는 사람. “행복해집시다, 당신만은 꼭 행복해질 거야.”하고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주던 사람. 내가 울 때마다 휴지를 가져다주고,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켜 두는 사람. 제발 깎아먹는 생각 좀 그만하라고 하는 엄마. 기분 안 좋을 때마다 공주님으로 칭호 바꿔 불러 주는 이모. 노트북 받침대를 가지고 싶다니까 땡볕 아래에서 나무판자에 페인트칠해 주던 아빠까지.

나도 비상 연락망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인데, 하여간 부정적인 나는 그마저 다 가려 두고 살기 급급하다.

.

평생 반복되어, 이젠 지루하기까지 한 자기 검열과 극도의 불안 끝에 난 또다시 슬픔과 대화를 나눴다. 이번에는 대화보다는 독백이었다. 그 독백을 여기에도 기록해 둠으로써 내가 ‘성격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사람 좋은 사람’인 걸 인정하려고 한다.

있잖아. 나는 사실 사람이 정말 좋은 것 같아. 맨날 사람은 없어도 되고, 나 혼자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나만한 외골수 없다고도 하지만. 실은 누가 내 옆에 있는 게 좋아. 여기서 더 많은 사람을 곁에 들일 자신은 없지만, 계속 내 옆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날 떠나는 게 싫어.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 싫어하든 말든 알 바 아니고, 모든 인연은 시절 인연이라고 했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야. 내 곁에 있는 그들을,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에게 “넌 다정하고, 넌 행복할 자격이 있어.”하고 주문을 외워주는 그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일주일간 절망할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해. 그 사람에게서 낙오되면 그만이라고 했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서 일주일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만큼이나 좋아해. 좋아하지 않으려고, 내 마음에 들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나는 또 사랑에 졌어. 난 또 좋아하는 사람이 늘었어. 앞으로도 더 늘 것 같아. 더 늘지 않더라도 난 사람을 계속 좋아할 것 같아. 얼른 그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어. B도 만나고 싶어. 그들에게 내가 이제 평영 발 동작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하고 싶고, 아끼던 수모가 찢어졌다는 농담도 좌절하듯 꺼내고 싶어.

그래서 그 사람의 짧은 대답이 슬펐어. 이후 한 번 더 보낸 연락에도 1이 사라지지 않는 게 슬펐어. 그뿐이야. 그 사람은 날 싫어하지 않고,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 그냥 나는 그 사람의 부재가 슬플 만큼 그 사람을 좋아해.

책 제목은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이지만, 내 마음대로 그 책을 기억하려고. 내가 나를 싫어하느라 가려진 것들. 이렇게. 내가 나를 싫어하느라 가려 뒀던 걸 이제 다 꺼내 보였어. 다 꺼내고 보니까 알겠어. 난 사람을 좋아해. 나를 싫어하느라 가려 두었지만, 사실 난 사람을 감춰지지 않을 만큼 좋아하고 사랑해.

좋아하고 사랑해서 내일은 수영하러 갈 거야. 또 웃기거나 기억 남을 에피소드를 겪고, 그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 이쯤 되니 그런 생각도 들어. 이렇게 그들을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지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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