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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n 28. 2024

친구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고양이를 찾아다니다가

검고 용맹한 고양이에게 보내는 두 번째 안부


(1).


오랜만에 친구 D와 만났다. 십몇 년째 가장 친한 친구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중이며, 이젠 같은 회사까지 다니는 우리. 우리 둘에게는 만날 때마다 꼭 세워야 하는 계획이 있다. 연극 또는 영화 보기. 그마저 어려우면 전시회라도 가기. 대신 둘 다 허약하므로 그중 하나만 하기. 그런 우리 둘이었는데, 이번엔 뭔 바람이 불었는지 영화와 전시회, 심지어 북토크까지 계획 안에 꾹꾹 욱여넣고는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코엑스에서 만났다.


식사 시간조차 계산하지 않는 계획에 익숙한 우리지만, 그래도 우리 기준 치밀한 계획이라 매번 계획의 목적만은 확고했다. 친구 D는 평생 좋아해 왔던 이영도 작가의 굿즈를 구매하는 것. 나는 최근 푹 빠진 조예은 작가의 사인을 받는 것. 그러나 식사 시간도 빠트린 계획을 치밀하게 여기는 우리이기 때문일까. 만나자마자 우리 둘 다 별안간 다산북스 부스에 멈춰 섰다. 다산북스에서는 박경리 작가의 책을 전시해 두었고,


그중에는 ‘돌아온 고양이’라는 책도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만 치밀하게 여겼던 계획은 우리 빼곤 다 예상한 대로 무너졌고, 우리 둘은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돌아왔으면 하는 고양이를 찾고 싶어서.






(2).


검은 고양이. 이따금 숨었다가 드러나는 흰 털이 완벽한 턱시도를 떠올리게 하는 고양이. 잘생겨도 너무 잘생겨서 친구 이상형을 강동원으로 만든 고양이. 이제는 친구 D 두고 혼자 용맹하게 모험을 찾아 나선 그 고양이를 찾아야 했다.


다산북스에서 ‘돌아온 고양이’라는 책을 구매하자마자 우리는 365북스라는 서점의 부스로 향했다. 그 부스에서는 독자와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랜덤으로 팔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우리에겐 우리 생일보다 빨리 찾아내야 할 게 있었다. 11월 3일. 용맹한 고양이를 위한 날. 태어난 날짜를 확실히는 모르기에 아마도 용맹한 고양이를 위한 날. 우리 둘은 꽉 찬 인파 사이로 이리저리 손 뻗어서 11월 3일에 가닿고자 했다. 그러나 내 생일도, 친구 D의 생일도 부스 책꽂이에 꽂힌 반면 11월 3일은 재고가 없었다. 직원에게 묻자마자 11월 3일은 탄생화를 그려 놓은 엽서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하필 11월 3일의 탄생화는 거절을 뜻하는 꽃이었다. 이미 함께 모험 떠나자는 제안에 거절당한 친구 D는 엽서를 보자마자 ‘왜 얘랑 관련된 걸 집으로 데려갈 수 없는 거야?‘ 하고는 찰나에 가깝게 울상 지었다. 결국, 서둘러 울상을 낚아채듯 대답했다.


그날이 너무 좋은 날이라 다들 태어났나 본데.


너무 좋은 날이었던 11월 3일을 거절당한 친구 D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랴부랴 내게 달려왔고, 현금이 필요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뭔 일인지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친구 D 뒤를 쫓아갔더니 고양이 가방 파는 부스에 다다랐다. 이후로도 친구 D는 끊임없이 고양이를 찾으러 다녔고, 기어이 고양이 가방을 찾아낸 것이었다. 평소 돈 관리에 유독 철저한 친구 D가 고양이 가방이나 엽서 또는 고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곳곳에서 싹쓸이하는 동안 조용히 그러나 부리나케 쫓아다녔다. 그러다 하나둘 우리가 멈춰 설 때마다 검은 고양이와 나누었던 약속을 곱씹었다. 곱씹음으로써 또 약속에 약속하는 셈이었다.






(3).


6월 7일.

용맹하고 잘생긴 고양이가 친구 D를 떠난 날.

그 고양이와 내가 나누었던 약속. 또는 내가 보낸 편지.


고양이에게.


안녕.

거기는 어때.

여기는 네가 떠나고 영 별로야.


하도 별로여서 어떻게 하면 너와 내 친구를 다시 만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너에게 책임감이라도 뺏어오고 싶은 마음에 편지를 써. 너랑 내 친구가 같은 차원에서 만나려면 너의 기준에선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너 대신 네 누나를 잘 지키기로 했어. 나는 서툰 사람이고 너 보기엔 부족한 마음과 시간으로 네 누나를 챙기겠지만, 그래도 너와 네 누나가 드디어 만나게 되는 날까지 네 누나 옆은 내가 지킬게. 네 누나가 언젠가 내가 그러했듯이 무기력하게 인생을 흘려보내지 않게끔 열심히 지키기도 하고 호되게 당기기도 할 테니까 고양이 너는 너무 많은 걱정에 휘둘리지 말고, 부디 즐거운 모험을 떠나기를 바라.


 네 누나가 삶이 즐겁고 재밌다는 걸 다시 알 수 있을 때까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게. 너도 얼마 전에 들었지? 네 누나와 내가 이젠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걸 말이야. 이젠 회사도 같고, 목표하는 바도 같으니까 아주 제일 귀찮게 해 줄 수 있어. 최근 네 누나가 운동도 시작했잖아. 네가 햇볕 쬐는 동안 그 옆에서 실내 자전거 타던 네 누나를 기억하지? 그거 다 내가 시킨 거다? 운동하라고 맨날 쪼아댔더니 네 누나가 드디어 운동도 시작했어. 이렇듯 내가 네 누나 몸과 마음 다 건강해질 때까지 옆에서 네 몫까지 잔소리도 하고, 칭찬도 해 주고, 포옹 대신 포옹을 닮은 말도 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난 곧 네가 만날, 심술 맞고 하얀 강아지가 너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면 더는 그 무엇도 걱정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러니 우리는 지금부터 비밀스러운 파트너인 거야. 잘 부탁해.


 적당한 때에 흰 강아지와 검은 고양이를 만나러 우리 둘이 갈 테니 그때까지 넌 네가 그토록 좋아했던 햇볕 아래에서 행복한 모험을 헤쳐 나가고 있기를. 마주치는 날까지 우리는 초면일 테지만, 사랑한다.


네 누나를 맡겨 주어서 고마워.

용맹하고 잘생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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