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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n 27. 2024

엄마와 단둘이 간 카페에서

엄마랑 내가 학교에서 만났으면 어떤 사이였을까?


(1).

 

지금 나는 엄마와 마주 앉아 있다.

 

엄마는 엄마 친구와 다투었던 이야기, 난 내 친구와 더는 다투지 않게 된 순간을 꺼내 놓으며 각자 몫으로 시킨 캐머마일과 아메리카노도 틈틈이 마시는 지금.

 

한평생 친구로 지낼 줄 몰랐던 엄마와 친해지긴 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이 이따금 내 것 같지 않다가도 평생 내 것이 되게끔 꽉 쥐기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엄마의 근황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엄마를 더 미워할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2).

 

“엄마랑 내가
학교에서 만났으면 어떤 사이였을까?”

 

친구 D와 떠들며 꺼낸 궁금증이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강릉이었고, 강릉 어느 독립 서점 구석에 앉아, 또 둘이서만 떠들 말이 없는지 찾기 바빴었다. 그러다 대뜸 떠들 비밀을 찾았다는 양 내가 먼저 친구 D에게 ‘만약에 놀이’를 제시했다.

 

만약에 엄마랑 내가
고등학생 때 같은 반이었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엄마랑 내가
아르바이트하다가 마주친 사이라면 어땠을까.

 

내가 창시한 ‘만약에 놀이’였건만, 그 어떤 상상도 펼치지 못했다. ‘만약에 놀이’에 참가한 친구 D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리는 그 독립 서점에서 파는 ‘삶의 맛’이라던 커피나 마시며 서로 침묵을 주고받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친구 D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랑 나는 전화번호도 몰랐을 것 같아. 왜냐면 나는 어머니가 어렵거든. 어머니랑 딸 사이라 어머니 전화번호를 아는 거지, 생판 모르는 남이었으면 전화번호도 못 물어봤을 거야.”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친구 D를 십여 년 지켜보며 익숙해진 친구 D의 어머니가 떠올라서 웃었다. 뚝심과 자존심만으로 친구 D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그 어머니가. 그렇게 웃고만 있는데 친구 D가 일부러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틀어주며 내게 물었다. “너는?” 하고.

 

친구 D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 게다가 얼굴조차 모르는 친구 D의 어머니가 내게 익숙해진 만큼 친구 D에게도 한두 번 보기만 한 우리 엄마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친구 D는 필사적으로 조심하는 중이었다. 20대 때 나는 툭하면 엄마를 미워하려고 안달이었으니까.

 

“나는…. 음, 그러니까 나는.”

 

머릿속에서 어떤 교실이 펼쳐졌다.


처음엔 빈 교실이었지만, 차츰 아이들이 들어차더니 머릿속 내가 학창 시절 늘 그랬듯 어중간한 자리에 앉기까지 한다. 이어서 앞문이 열렸다. 엄마가 보여 주기 싫어하던 앨범 속 젊은 엄마고, 난생처음 보는 교복 차림이다. 그러나 여기는 내 머릿속. 젊은 엄마가 방문한 적 없는 공간. 그러므로 내가 아는 엄마답게 주변 휙휙 둘러보면서 혼잣말인지 말을 거는 것인지 알 수 없게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알리며, 교실 맨 앞 책상 쪽으로 간다. 그러고는 엄마 마음에 쏙 들었을, 날씬하고 착하게 생긴 여자애에게 옆에 앉아도 되는지를 수줍게 묻는다. 좀 전까지 큰 목소리로 모두에게 넌지시 말 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줍게.

 

날씬하고 착하게 생긴 여자애는 엄마 바람대로 훨씬 착하고 친절해서 엄마를 옆에 앉히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조용히 떠들다가도 앞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넌 또 누구니?’라고 묻고 싶은 마음에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다 더는 앞문이 열리지 않을 무렵 젊고 교복 차림인 엄마가 교실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어중간한 자리에 혼자 비뚜름하게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친다. 엄마는, 그러니까 우리 엄마니까 엄마는 나에게도 반갑게 인사한다.

 

“쟤는 이름이 뭐야?” 하고 날씬하고 착하게 생긴 여자애에게 내 이름을 물어봐 주기도 하려나. 잘 모르겠다. 여기는 내 머릿속. 나 빼고는 다 나 혼자 넘겨짚어야 하는 허구의 인물들.


어찌 되었든 머릿속 교실 벽에 붙은 시계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졸업식이 되었고, 젊은 엄마와 나 역시 그 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식 때까지도 워낙 주변에 관심 많은 엄마는 나에게 몇 차례 말을 걸어 주었겠지만, 나는 쌩하고 엄마를 지나치며 이죽거렸을 테다. 여기는 내 머릿속. 나는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해도 가끔 나를 미워한다고 느끼는 딸이니까, 엄마라는 동급생이 아무리 내게 친절을 베풀어도 그 친절 사이에 파묻힌 적의를 찾겠답시고 안달이었을 테니,

 

“엄마랑 못 친해졌다기보다는 안 친해졌을 것 같아. 엄마 성격상 엄마는 교실에 친구들 많을 텐데 그중에 나는 없을 듯? 왜냐면 엄마도 나도 예민하잖아. 예민한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을 알아본대. 굳이 친구로 둬서 서로 더 예민해질 바에는 서로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싶어.”

 

이런 식으로 대답했지만, 실은 안다. 엄마는 예민한 사람이 맞지만, 예민한 엄마는 예민한 딸을 알아봐서 서로 더 예민해질 것을 알고도 내게 계속 거리를 좁히려 했을 거라는 사실을. 여태 우리 사이가 그래 왔듯이.

 





(3).

 

내 얼굴은 아빠와 닮았다.

그리고 내 성격은 엄마와 닮았다.

 

이 두 가지 사실은 평생 내 콤플렉스가 되어, 누가 아빠 닮았다고만 하면 그날 종일 짜증이 났고, 엄마처럼 나 역시 예민한 탓에 종일 부린 심술에서 빠져나오려면 새벽을 오래 써야 했다.


 




(4).

 

이십 대 때까지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 사랑이야 하긴 하겠으나 조금은 덜 사랑하는 줄 알았다. 그래 놓고 정작 엄마와 친하질 않다 보니 엄마에게 왜 나를 덜 사랑해 주느냐고 따져 물을 시간은 없었다. 그저 엄마의 표정이나 말을 넘겨짚으며, 나를 덜 사랑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뿐이다. 결국, 두 번 다신 엄마를 보지 않을 각오로 왜 날 덜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 종종 글 쓸 때 가져다 쓰곤 했던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한국어를 비로소 이해했다. 엄마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얼굴로 오래 나를 쳐다만 보다가, 되물었다.

 

“내가 널 어떻게 덜 사랑해?
그거는 말이 안 되는 말인데?”

 

저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이십 대 때까지 긁어놓은 엄마와 내 마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미리 물어볼걸. 덜 사랑해 준다고 느낀 순간 바로 물어봤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우린 이미 친한 친구가 됐었을 텐데. 그러나 이제라도 알았다면. 이젠 내가 먼저 조금씩 엄마와 친해지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머릿속에서 교실을 펼친다.

 

이번엔 빈 교실로 시작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마주쳤던 아이들로 꽉 찬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나로 시작한다. 죄 아는 얼굴이고, 그중 보기 싫은 얼굴과 보고 싶은 얼굴을 구분하느라 시간 좀 쓴다. 그러다 젊은 엄마와 눈이 마주친다. 젊은 엄마는 나와 모르는 사이이기에 어색하고 수줍게 웃으며 혼잣말인 척 말을 걸려고 한다. 엄마가 혼잣말인 척 내게 말 거는 순간을 이젠 알 만큼 친해진 나이기에, 선뜻 엄마 옆에 가 앉는다. 그러고는 내가 먼저 말을 건다. 사소한 잡담 위주로 우리 대화를 이어 나가기도 한다. 그러면서 속으론 생각한다. 언젠가 엄마와 다 친해지고 나면 건네줘야 할 말이 있다. 아빠와 닮았지만, 실은 엄마를 닮고 싶었던 얼굴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을 심으며 기필코 해야 할 말이 있다.

 

내가 엄마를 어떻게 덜 사랑해?

그거는 말이 안 되는 말인데?

 

친해져 가는 지금, 별안간 저 말을 했다가는 엄마는 얼떨떨해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곧장 납득했듯이 엄마 역시 곧바로 납득할 만큼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고 나면 말해 줄 테다. 미워하는 것보다 더 최선을 다해, 엄마를 사랑해 보았으며, 다 사랑한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고. 아직은 이 말을 엄마 눈 보고 건네기엔 낯간지러운 우리 사이가 언젠가는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워지기를.

 

엄마는 오늘 이런 내게 “너도 삼십 대가 넘어가며 감성에 젖어가는 것 같아.”라고 했지만, 저 말을 조금만 고치고 싶다. 나도 삼십 대가 넘어가며 진정한 사랑에 빠진 것 같아. 엄마랑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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