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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n 29. 2024

외박하고 나서

집을 좋아지게끔 도와준 그 시절 육 씨에게



(1).


 그저께까지만 해도 가장 가까웠지만, 지금부터 세 시간 가까이 지하철 안에 꼼짝없이 갇혀야 할 만큼 먼 곳. 집으로 가야 했다.


 이렇듯 집은 내게 가깝고도 멀었다. 집이랑 같이 있고 싶다가도 같이 있기 싫었다. 풀어 말하자면 때로는 집이 싫어서 가출을 일삼았고, 또 때로는 회의실 박차고 나가자마자 씩씩대며 집까지 드는 택시비를 계산할 때도 있었다. 살며 이토록 애증으로 뭉쳐진 공간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어쩌다가 나는 애증이라는 감정을 집에다 준 걸까. 질문 두 가지가 머릿속을 차지할 동안에도 여전히 나는 사람 많은 지하철 안에서 집 생각만 하는 중이었다.






(2).


 집에 가고 싶다.


 만나면 일 초도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 친구 D와 가장 많이 주고받은 말이었다.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너무 덥다. 집 가고 싶어.”라는 말을 건넸고, 숙소로 향하는 동안에는 눈만 마주치면 각자 집에 두고 온 걸 얘기하는 척 또 집에 가고 싶다며 아우성이었다. 그래 봐야 내가 두고 온 것은 잠옷, 친구 D가 두고 온 것은 클렌징 티슈뿐이었다. 둘 다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걸 뭔 구제품인 양 꺼내 들며, 집에 갈 이유로 삼아댔다. 우습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으며, 숙소를 집보다 깨끗이 치우면서 오래오래 떠들었다.


 그런데도 눈 뜨자마자 집에 가고 싶었다. 내 방 침대쯤은 얕잡아 볼 침대에 누워 있었으면서. 그 숙소는 푹신하고 비싼 침대를 특색으로 삼은 숙소여서 눕자마자 잠들기도 했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결혼한 언니가 두고 간 침대라니. 자존심이 상했을 뿐 아니라 인정하기 싫어서 퍼뜩 일어나, 그 숙소를 둘러봤다.


 그 숙소는 옛날 우리 집과 비슷한 구조였다. 문 열자마자 거실 겸 부엌인 척하는 공간이 보였고, 그 외로는 다닥다닥 붙은 안방과 작은 방이 전부였다. 아. 사람 하나 들어가자마자 꽉 차는 화장실도 있긴 했다. 즉, 특색으로 내세울 만한 건 푹신하고 비싼 침대뿐인, 허름한 숙소였다. 허름한 숙소에 어울리지 않는 식탁에 대충 엎드려서 옛날 우리 집을 곱씹었다. 참 좁았었지. 어떻게 거기서 네 명이나 살았는지 몰라. 정작 이 숙소도 인원 제한을 두 명으로 두는데, 우리 넷은 어떻게 이런 구조인 집에서 넷이 뭉쳐 살았을까. 어쩌다 나는 그 집에 살면서도 학교만 끝났다 하면 집으로 달려갔을까. 왜 그 집을 아직도 집으로 기억할까. 기억하고 사랑하기에는 너무나도 좁고 불편한 집이었는데.


 그러다 문득 육 씨라는 특이한 성을 쓰던 남자애 생각이 났다. 아마도 걔 때문에 나는 내 집을 좋아하면서도 종종 싫어하는 시간에 평생을 써 왔는지도 몰랐다. 아마도 걔는 내가 그런 집에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랐을지도 모르고.


 그런 집.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는 집.

 감정 들이 살아 있는, 그런 집.


 나만은 그런 집에 산다는 걸 가르쳐 준 애가 바로 육 씨였다.






(3). 


 옛날 우리 집으로 표현한 그 집은 내 나이 열다섯 살에 살던 집이었다. 반지하에 방 두 칸짜리. 불행했는지를 물으면 적어도 그 집 안에서는 불행한 기억이 그다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집이었다. 좁아도 우리 가족 넷은 기어코 행복했던 것도 같다. 어찌 되었든 그 집 밖에서는 불행이 도사렸는데, 가장 큼지막하고 징그러운 불행이 도사리는 곳은 단연코 학교였다.


 뭐, 가난하다고 놀리는 애들은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동네는 모두 가난했으므로.


 다만, 가난하든 말든 열다섯은 궁금한 게 많은 나이여서 교실 안은 ‘친구 집 놀러 가기’를 놀이로 삼기 시작했었다. 제일 먼저 그 놀이를 시작한 애는 당시 동네에서 유일했던 아파트 탑 층에 사는 애였다. 놀이를 빌미 삼아, 내 친구의 환심을 사겠답시고 우리 반 모두에게 초대장을 뿌렸으며 그중엔 나도 있었다. 그땐 몰랐다. 초대장을 받았다면 반드시 초대장으로 답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몇 달이 지났을까. 아이들은 이젠 내 차례라고 했다. 내 집에 놀러 가야 한다면서 우리 부모님이나 내 허락 없이 그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집이 좁아터져서만은 아니었고, 그들의 악의를 굳이 감당해 주기 싫은 탓이었다. ‘친구 집 놀러 가기’가 놀이로 유행하던 몇 달간 악의 역시 놀이로 치환되어, 그들은 놀러 간 집에 등급을 매기기 시작했다. 맨 처음 놀러 갔던 아파트 탑 층은 1등급, 놀이터 바로 옆 원룸은 8등급. 고등학생도 아닌 주제에 집마다 1부터 8까지 등급을 매겨대는데, 그들에게 구태여 8등급으로 분류되어, 놀아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미 나는 집 말고도 여러 이유로 놀아나졌었다. 키가 작아서. 연극 백설공주에서 난쟁이를 맡아서. SM 엔터테인먼트 매니저에게 길거리 캐스팅 당한 친구 옆에 멀뚱히 서 있어서. 기타 등등. 또 그들의 도마 위로 올라가 주기는 싫은 마음에 곧바로 잔꾀를 부렸다. 다름 아닌 연극 집필이었다.


 우리 집은 계단도 가파르고 철문도 무시무시하게 커서 너희 다 못 데려가. 게다가 철문 앞을 지키는 대형견이 한 마리 있는데, 걔가 사람을 물어. 저번에 우리 아빠도 취해서 물렸었어. 너희 물리고 싶은 건 아니지? 나도 너희를 정말 초대하고 싶지만, 괜히 우리 집 오다가 다치면 서로 곤란해지니까 다른 애 집에 놀러 가든가 해.


 대충 이런 줄거리였다.


 대부분은 연극에 속아 넘어가 주었으나 몇 남학생은 대형견쯤은 무섭지 않다며 보란 듯이 우리 집 순찰대에 자원하기 시작했고, 마침 성이 육 씨인 남자애도 손을 들었다. 내가 가 볼게. 너희는 빠져. 육 씨인 남자애는 교실 안팎으로 깡패 새끼 아들이라는 소문이 도는 애라서 금세 우리 집 순찰대는 육 씨만으로 구성됐다.






(4).


 나는 육 씨가 싫었다. 깡패 새끼 아들이든 말든 걔는 너무 집요했다. 초등학교 육 학년 때는 내 엠피쓰리를 빌리려고 아침마다 나를 집요하게 기다렸으며, 중학교 일 학년 내내 인사를 무시해도 집요하게 쫓아와서 안녕만 수십 번 해 댔었다. 그때 역시 우리 집 순찰대 일에 어찌나 집요한 열의를 보이던지 하굣길 내내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너 더 따라오면 경찰 부를 거야.”


 집 주소 들키기 싫어서 동네를 스무 바퀴쯤 돌다가 대뜸 던진 말이었다.


 “불러. 아님 불러 줄까? 우리 아빠 때문에 경찰 아저씨 번호 알아. “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약점이 꼴 보기 싫어서 우두커니 서 있던 몸을 돌려, 육 씨와 마주 섰다. 약점을 꺼낸 주제에 육 씨는 웃는 낯이었다. 그것도 꼴 보기 싫어서 바로 돌아섰지만. 육 씨의 말이 곧이어 들렸다.


 ”너 근데 왜 먼 길로 가냐?“

 ”뭔 소리야? 여기 우리 집 맞아.“

 ”구라 까네. 너 우리 앞 집 살잖아.“


 여기는 우리 집에서 십오 분 걸어야 닿는 데였고, 육 씨가 사는 집은 진짜 우리 집에서 일 분 거리였다. 그 사실을 깨우치자마자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입만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일 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산다고? 그런데 왜 두 시간이나 쫓아온 건데? 넌 왜 맨날 나한테 이러는데? 너 진짜 왜 사람 자존심 죽이는데? 왜 그러는데? 가벼운 입 사이로 쏟아지려는 말 대신 울음이 막 터졌었다. 왜인지는 십몇 년이 흐른 지금도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우는 내게 바투 붙어 선 육 씨가 마침 지나가던 남학생들에게 죽기 싫으면 꺼지라는 말과 폭력을 반복했다는 사실 정도.


 집 들키기 싫어서 돌아다닌 거지?


 정곡을 찌를 거면 확실히 찌르든지. 이어지는 말 들은 정곡과 멀고, 유독 집요한 육 씨와도 먼 말이라 여전히 기억에 하나하나 뼈저리게 남아 있었다.


 난 그 마음이 뭔지 아는데 넌 내가 왜 혼자 널 쫓아오는지 모르냐, 왜. 애들이 나 무서워하잖아. 나 무서운 애 맞기도 하고. 너도 나 무섭냐? 난 너 재밌는데 넌 나 무서워서 쫓아오는 게 싫은 거야, 아님 너네 집을 깡패 새끼 아들한테도 들키기 싫은 거야? 아님 애들이 너네 집 알까 봐 무서워서? 너네 집이 뭐 어때서. 적어도 너네 아빠는 사람 죽여서 감옥 간 적은 없지 않냐. 그럼 너네 집은 숨길 게 없는데,


그래도 숨기고 싶은 거라면 우리 맞교환할래?


 그날 육 씨와 나는 맞교환이라는 걸 했다. 육 씨를 죽어도 못 믿겠던 나는 우리 집이 어디 있는지 발설하지 않게끔 육 씨에게 내 고물 엠피쓰리를 평일마다 빌려줬고, 아버지가 엠피쓰리를 사 주고는 바로 부순다던 육 씨는 평일마다 교실 아이들이 우리 집 얘기를 꺼내면 “나 말곤 얼씬도 마라.”하고 겁을 줬다. 다른 의미의 우리 집 순찰대인 셈이었다.






 (5).


 그 맞교환 이후 육 씨와 나는 고등학교 일 학년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 우리 둘만 서로서로 친구인 걸 알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또 사람을 죽도록 패면서 이모 댁에 가게 된 육 씨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더 확실하게 구분해 두자면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등굣길이었고, 학교에서 쫓겨난 육 씨는 교복 입은 학생들로 붐비는 정류장에 드러누워 있었을 때. 우연히 마주친 육 씨가 또 집요하게 내 팔목을 잡고, 버스를 두 번이나 놓치게 했을 때. 다음 버스마저 놓치면 학교 늦는다는 말로 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을 때. 육 씨가 말했다.


 학교 끝나면 바로 집에 가냐?

 어.

 아직도 난 너네 집 놀러 가면 안 되냐?


 고개만 대충 끄덕이자마자 육 씨는 내 팔목을 놓으며 기지개와 함께 평생 못 잊을 말을 떠넘겼다.


 아. 나도 집에 가고 싶다.






(6).


 어제 박서련 작가는 본인 신간을 설명하며, 진정 집으로 느끼는 집을 얻는 욕망으로 산다고 했다. 그의 욕망을 듣는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어졌고, 틈틈이 육 씨와 내 집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은 소망을 매일 이뤄주는 우리 집에, 남들 눈엔 좁아터졌을지언정 애증으로 똘똘 뭉쳐 있는 우리 집에, 끝끝내 육 씨와 나 몰래 8등급으로 분류되었던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드디어 넷이 살기 적당해진 우리 집에 육 씨를 초대하고도 싶었다.


 더 나아가 이제는, 불행뿐이었던 그 시간이 많이 흘러갔으니 제발 이제는 진정 집으로 느끼는 집에 도착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때 그 버스 정류장 이후 휴대전화도 없애고, 짧은 근황조차 모조리 없앤 육 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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