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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엄 Jun 30. 2024

뛰기 싫어서 걷기로 해 놓고

맨날 안 한다 하고 하는 사람입니다


(1).

 

이틀 합쳐서 사만 보 걸은 여파로 뛰기 싫어졌다. 한 달 넘도록 달리며 이토록 뛰기 싫은 날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절대 뛰지 말아야지. 그 다짐으로 애플 워치로도 실외 걷기를 눌렀으면서. 정작 지금 내 귀에서는 “달리기 전 가볍게 걷겠습니다!”하는 안내가 들리는 중이다.

 

뛰기 싫은 사람치고는 착실히 달릴 준비나 하고 있다. 발목 몇 번 돌리고, 기지개도 켜며 가볍게 걷는다. 그뿐인가. 걷겠다고 한 사람이 러닝화까지 신었다. 마침 달리기 앱에서 초읽기를 시작했다. 그토록 오지 않길 바랐던 달리기 시간이 시작됐다.

 





(2).

 

생각해 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하기 싫다고, 안 한다고 해 놓고는 정작 일을 키우는 주범은 나다. 걷기에서 달리기로. 십 분 달리기에서 삼십 분 달리기로. 결국, 삼십이 분을 뛰었다. 십 분 달릴 생각으로 한껏 높인 속도 탓에 지금을 네 글자로 표현하자면 만신창이가 딱 적당했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새 정돈하며, 집 앞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닐 만큼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 나는 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몸도 마음도 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건만.

 

대체 나는 왜 달린 걸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못 고친 버릇 때문이었다.


안 한다고 했으면서 꾸역꾸역 하느라 바쁘거나 어느 순간 들여다보면 안 하겠다며 으름장 놓은 걸 꼭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헐떡이는 숨 달랠 겸 돌이켜보았는데, 그 무렵이었다. 한글을 떼야 할 나이에 한 글자도 못 읽던 일곱 살 무렵. 그때부터 안 한다고 하면 기필코 했다. 안 한다는 말이 내 인생의 주문인 양 통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 글을 엄마가 읽는다면 헛웃음을 터트리지 않을까 싶다.

 

일곱 살 때 나는 옆집 친구는 술술 읽는 한글을 한 글자도 못 읽었다. 나만큼 자존심 센 엄마는 억지로 나를 앉히고 제발 한 글자라도 읽으라며 성화였다. 이러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엄마가 놀림당할지 네가 놀림당할지 생각 좀 해 보라고도 했다. 그런데도 안 읽었다. 못 읽었나. 그거나 그거나이겠지만. 엄마는 몰랐겠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못된 마음 하나. 절대 안 읽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한글은 안 읽을 거야. 무조건 엄마가 원하는 대로는 움직이지 않겠어. 그런 마음으로 뚱하게 엄마를 바라만 봤었다. 그때 우리 엄만 얼마나 복장이 터졌을까. 그런데 그때 엄마는 나에게만 유독 먹히는 패를 우리 사이를 화투판 삼아, 던졌다.

 

“그래! 읽지 마, 그럼! 옆집 친구도 읽을 줄 알고, 다른 집 애들 다 읽을 줄 아는 한글! 너만 읽지 마! 네가 까막눈이든 뭐든 엄마도 이제 안 해!”

 

다 읽을 줄 아는 한글?

나만 읽지 마?

엄마도 이제 안 해?

 

엄마는 그때 그 패가 나에게 얼마나 잘 먹힐지 알고 던진 걸까. 아니면 초심자의 행운이 초보 엄마에게 따라붙은 걸까. 나라는 사람은 ‘남들 다 할 줄 아는데 어떻게, 너도 좀 할 수 있겠어?’라든지 ‘넌 안 해도 돼.’라든지 아무튼 뭘 해내는 데에 날 빠트리면 갑자기 확 불붙어서 날뛰기 시작한다. 남들은 다정한 말로 응원해 주고, 토닥여 줄수록 성장한다는데, 나라는 사람은 ‘넌 안 해도 돼.’하면 ‘응. 내가 제일 잘할게.’하고 이 바득 갈며 살았다.

 

그때도 엄마 말에 대꾸하지 않고 뚱한 얼굴로 엄마를 노려만 보다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방을 슬쩍 둘러봤다. 초보 엄마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책꽂이에는 각종 동화책과 쉬운 만화책이 가득했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 책들은 내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마침,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책꽂이 맨 아래에 있는 책이었다. 말썽에 특화된 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 어루만져 주는 성경책. 굉장히 두꺼운 데다가 작은 글씨로 이루어져, 일곱 살 짜리는 웬만해선 못 읽는 책. 그 책을 무작정 집어 들었고, 나보다 세 살 많은 언니가 쓰던 책상에 냅다 앉았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 터졌지만, 눈 부릅뜨고는 창세기부터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일부러 막 들으라는 듯이 크게도 읽었다. 처음에는 내가 달달 성경 구절을 외우는 줄 알았던 엄마는 창세기가 절반쯤 지나갈 무렵에야 방문에 비스듬히 다가와 섰고, 입 쩍 벌린 채 나를 봤다.

 

“… 너, 너 지금 그거 읽고 있는 거야?”

 

아.

일곱 살에 배웠다. 희열이라는 단어를.


진짜로 온몸이 막 차갑고 뜨거워지기를 반복했다. 엄마의 놀란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만큼 강렬한 희열이 들어차, 일부러 더 크게 성경책을 읽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뒤에서 꽉 끌어안았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 애를 굽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그때부터 버릇 한번 잘못 들었다. 절대 안 하겠다 해 놓고서 기어이 해내는 내가 솔직히 너무 멋있어서 미칠 것 같았던 순간이었다. 지금 이 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일곱 살이 대체 몇 년 전인데, 아직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 글만 봐도 얼마나 짜릿했는지 알 수 있다.

 




(3).

 

그때부터 나는 일부러 뭐든 안 하겠다고 한 다음 해내며 살았다. 예를 들면 공부 안 한다고 했다가 엄마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자마자 평균 95점짜리 성적표를 들고 나타날 정도였다. 비단 엄마에게만 부리는 말썽 따위가 아니었다. 어디서 뭘 하든 “안 해.”부터 말한 다음 했다. 오늘의 달리기만 봐도 그렇다. 오늘은 안 뛴다 해 놓고서는 삼십이 분이나 뛴다. 그러고는 스스로 조용히 읊조린다. “안 뛴다더니 졸라 잘 뛰네.”

 

인생은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데도 나는 매번 반전을 노리는 사람이 됐다. 그러느라 맨날 고생하면서 고칠 생각은 평생 못 한다. 남들에겐 안 먹힐지 몰라도 내게는 강력하게 먹히는 말이 있다. “하여간 너는 진짜.” 이 말을 웃으며 꺼내는 얼굴 한번 보겠답시고 맨날 말썽만 부리는 척 부단히 애쓰며 산다. 그런데 이쯤 되니 한 번쯤은 솔직하게 말하고 싶기도 하다. 열심히 할 거야. 열심히 해서 꼭 열심히 한 만큼 보람도 가져올게. 그러니까 나 좀 지켜봐 줘. 이렇게 솔직한 말을 마음껏 꺼내고도 싶은데, 정작 글로나마 쓴 지금조차 갑자기 허벅지가 가려워졌다. 아직 내겐 너무 낯 뜨거운 말과 각오다.

 

언젠가 아주 솔직하게 ‘해내겠다 해 놓고선 진짜 해내는 사람’이 될 때까지만 너무 낯 뜨거운 말은 쭉 미룰 생각이다. 또 자존심으로 버티면서 암살 작전도 아닌 도전을 은밀하게 치를 작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글은 이런 식으로 마칠까 싶은데, 과연 어떨지는 모르겠다.

 

나 오늘, 이 글은 퇴고 안 해.

진짜 안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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