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기 시스템

굿-모닝!

by 장진진

살다 살다 내가 스스로 아침을 챙겨 먹는 날도 오다니.


오전 수영 수업에서 촉망받는 1번 회원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계속 발차기를 하며 물살을 가르고 나아갈 수 있는 힘! 그 힘은 멋진 근육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게 없으므로 간단한 아침밥에서 찾기로 했다.


말이 아침밥이지 실제로 밥을 먹고 간 적은 없다. 바나나 한 개, 토마토 한 개, 빵 두 조각..이렇게 공복은 아니되 가볍게 허기 채울 정도 딱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많이 먹고 갔다가 정말 역류할 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어서 운동하면서 태울 에너지원 정도 품고 간다 생각하고 먹는다.


그렇게 구축된 '아침 먹고 나가기 시스템'까지 더해지면서 나의 아침은 조금 더 체계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시간도 넘는 출근 시간을 고려한다면 아침 챙겨 먹을 시간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던 나날들이었다.

그 시간이 있음 잠이나 더 자고 말지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생활하다 보니 이른 시간에 무언가를 챙겨 먹으면 오히려 속이 좋지 않아 아침 공복에 익숙해진 몸이었다.


그런데 얼떨결에 시작된 수영을 견디기 위해서 아침 챙겨 먹는 부지런을 떨게 되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상황이냐 이 말이야. 아침을 먹고 나가는 사람 자체가 갓생의 표본 같아 멋있어 보였는데, 이제 내가 갓생 사는 백수 멋있어질 수 있는 차례가 됐다.


운동 때문에 시작된 아침 먹기 루틴 덕분에 아침을 고요하게 즐기는 법 또한 알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소화시킬 시간까지 고려해서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생전 안 그러다가 갑자기 이 시간에 음식이 들어가면 장기들이 놀랄 수 있으니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보고, 찻잎이 우려 지는 동안은 심심하니까 책 몇 장도 읽고...


한 번은 제대로 걸린 인후염 때문에 뒤척이다가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밤보다도 더 밤처럼 고용하고 적막했던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식탁에 앉아 따뜻한 물 한 잔을 떠두고 옆에 있던 책을 폈다. 책은 한강 작가의 '흰'.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참 힘들었는데 이제는 빨리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고 친구들에게 말하면 다들 이제야 백수 다됐다고 한 마디씩 할 것이다. 잠과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 아니라, 일찍 일어나서 속을 채우고 길게 아침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일상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정신 못 차리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얼레벌레 진행되는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멋있고 좋은 쪽으로 착착 가고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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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워주는 아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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