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영 웨이브
자려고 침대에 누운 채로 접영 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고, 몇 십 개의 접영 영상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빨리 내일 아침 차가운 물속에 몸을 집어넣고 물살을 가르며 돌고래처럼, 나비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접영 하고 싶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은?
"회원님은 지상훈련 하실게요. 벽 잡고 웨이브 연습부터~"
뻣뻣한 몸과 박치 환장의 콜라보로 접영 기초부터 아주 난관이다.
평영까진 참 빠르게 감을 익혔는데 접영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 여태 수월하긴 했지. 이렇게 도전하는 맛이 있어야 재밌지'라고 생각하지만 맨 앞에 있다가 맨 뒤로 밀려나면 그래도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다.
처음 배우면 누구나 못한다는 것도 아는데 내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을 땐 화도 나고 답답하다. 이런 느낌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방향을 알려주고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입장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로 밀려났다. 배우는 쪽보다 내가 아는 것을 공유하고 훈련시켜 주는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 나머지반, 꼴찌, 신입 등등의 포지션이 어색하다.
조금은 믿는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수월하게 빨리 배우고 이 수영장 안에서는 잘한다는 소리만 듣고 몇 개월을 있었으니 접영도 금방 잘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렇게나 몸이 정직하게 배신할지는 몰랐지만.
몸치의 향연으로 맨 뒤 자리가 내 고정석이 되고 나서야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나는 0부터 시작이다. 여기서 나이가 젊은 축에 속한다고, 지금까지 빨리 올라왔다고 자신감에 차있을 상황이 아니다. 나는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해!
다른 사람들은 물속에서 수영하며 뺑뺑이 돌 때 물에서 끌려 나와 지상 훈련부터 시작했다. 크로스핏 하면서 근육이 좀 붙은 게 효과가 있는지 지상에서는 또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동작들이 곧 잘 나왔다.
문제는 웨이브. 목각인형처럼 뚝딱거리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갑갑해졌다. 성별을 떠나 우리 반 사람들은 다 유연하게 잘도하던데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걸 바로 잡으려면 나는 다시 태어나야 해!
집에서도 벽 보고 웨이브, 양치하면서도 생각나면 웨이브, 하다못해 이젠 꿈에서도 웨이브를 했다. 이쯤 되면 돼야만 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웨이브 무아지경에 빠져든 채 3주가 흐르고 물속에 들어가서 꿀렁이는 순간.
물을 누르며 웨이브가 타지기 시작했다. 유연하게 흘러가진 않더라도 머리-가슴-엉덩이-다리 순으로 웨이브를 타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느낌이구나!
25m씩 끊어서 갈 때 맨 뒤 순번의 특권이 무엇인 줄 아는가?
이미 도착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들어온다는 점이다.
드디어 웨이브로 끝까지 도착한 순간. 다른 회원들이 박수를 쳐주셨다. 젊어서 그런가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온 마을의 회원들이 키우는 접영 신입이 이런 건가 싶다.
연속 웨이브도 안돼서 흐름이 끊긴 채 계속 물 밖으로 나왔던 옛날이여 이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