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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Jul 09. 2020

갯벌체험

영종도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남편과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데 보통 이런 식이다.

"우리 아기는 나를 닮아서 갯벌을 싫어할 거야. 뙤약볕에 미끈미끈한 뻘 속에서 노는 거, 생각만 해도 더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닐걸, 아빠 닮았으면 조개 잡고 게 잡는 거 엄청 좋아할 텐데."

라며 반박한다. 참고로 남편은 바닷가 도시의 토박이다. 


기왕 말이 나온 거 한번 가보기로 했다. 아기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보기 위함이라기보다 하나의 경험을 더해주고자 함이다. 아이를 다 키워본 인생 선배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지금 시기에는 아무리 데리고 다녀봤자 나중에 기억도 못한다고 그랬다. 그러나  데리고 다녀봤자 소용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비록 기억을 하지는 못할지라도 바다를 책으로만 본 아이랑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만져도 보고 맛도 본 아이의 경험치가 같지는 않을 테니까. 갯벌에 가서 게도 잡고 조개도 캐 보면 더 맛있게 먹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했다. 이 아이는 먹는 것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해서 뭔가를 먹이려면 흥미를 좀 유도해줘야 한다.


서울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바닷가 마을, 거기에 갯벌체험까지 가능하며 조개구이도 먹을 수 있고 편의시설이 제법 구비가 되어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영종도, 제부도, 대부도 등등 몇 군데가 물망에 올랐으나 역시, 영종도가 제일 만만해 보였다. 가장 가깝고, 공항이 있어 아기를 데리고 잘 만한 숙박시설도 많아 보이고, 조개구이 집도 꽤 있는 편이니. 마침 마시안 해변에서 아이들이 갯벌체험도 많이 한다고들 하니까 거기가 딱이었다.


이곳이 딱이라고 생각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는지 죄다 이 쪽으로 몰렸나 보다. 어마어마한 차량정체로 겨우 마시안 해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별로 탐탁지 않아하는 아이를 데리고 갯벌체험장에 입장하려 하는데 이런, 생각지도 않은 방해 요소가 등장했다.

"입장 마감이에요."

뭐라고요. 지금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 것 같은데요, 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데 5시면 입장 마감을 한단다.


해는 여전히 뜨거운데 땀 뻘뻘 흘리며 진흙 속에 쭈그려않아 바지락 캐고 있다가 애보기 전에 나부터 쓰러지겠다 싶어 내심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도 없지. 바지락을 캐 갈 수는 없더라도 바닷가 둘러보며 노는 건 괜찮으니 아이에게 샌들을 신기고 갯벌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시어~!"

뻘 앞에서 아기가 손사래를 치며 들어가기 싫단다. 샌들에 물 들어오는 거, 모래 들어오는 거 유난히 싫어하는 아이니 짐작은 했다.

"역시 엄마 아들이었어."

뻘에 들어가기조차 싫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웃는데, 남편이 말했다.

"이상하다,  아빠 닮았으면 싫어할 리가 없는데."

뭔가 억울한 표정으로 사라져 버린 남편은 잠시 후 쬐그마한 게 한 마리를 들고 나타났다.

"얀아, 저 쪽 가면 이런 게 많아."

오, 게 유인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그때까지 엄마한테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던 아이는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를 보더니 그 미끄덩한 갯벌로 과감하게 맨발을 넣고 걷기 시작한 것이다.

"것봐, 얀이는 역시 아빠 아들이라고."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해진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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