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고운 Jul 10. 2020

바다가 보이는 방

강원도 고성

친구에게서 급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지금 강원도 가는 중이야. 내일 양떼목장으로 올래?"

이런 반가운 일이. 우리도 내일 강원도에 갈 예정이었던 거다. 양목장에서 아이도 놀리고 바람도 쐬면 좋을 것 같아서 냉큼 그러자고 대답하고는 저녁에 남편에게 말했더니, 반가워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거긴 영동고속도로 타야 하잖아. 우리는 고성 가야 해서 속초 양양 고속도로 타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늘 예측불허라서 많은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행히 출발 당일 아이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그러나 한참 스티커에 빠져있어서 "스티커!"를 연속 외치는데, 스티커를 안 사주고는 장거리 이동이 어려울 것 같았다. 교보문고에 들러 스티커북을 하나 사주고 겨우 출발을 했는데, 이번엔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주말의 짧은 여행 치고 출발시간이 지체된 까닭. 결국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영동은 못 타겠다. 속초 양양 타고 빨리 수도권을 빠져나가야겠는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기꺼이 이해해주었다. 친구 부부는 오대산 등반을 마치고 강릉 이동 예정이어서, 중간지점인 양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차는 점점 밀려왔고, 출발 초반엔 파란색으로 표시되던 내비게이션 경로가 점점 빨간색으로, 정체구간도 자꾸자꾸 늘어났다.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아기 안색은 점점 변하기 시작하더니, 카시트에서 뒤척이다 징징 보채고는 그만 왈칵 토를 해버리고 말았다.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뒤처리를 하는데 차에선 시큼한 냄새가 나고 아이는 컨디션 저조로 울다가 기운이 빠지고 나랑 남편은 진이 빠졌다. 아직 경기도도 벗어나지 못한 지점에서의 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휴게소마다 들러서 쉬었다 가야 하는 일임을 배우고, 마음을 느긋이 먹기로 했다. 얀이는 차를 좋아하고 차 타는 일도 너무 좋아하지만 멀미도 꽤 하는 아이였다. 휴게소마다 들르니 다행히 아기는 장거리 이동을 버텨 주었고, 당연히 이동 시간은 늘어났다.


우리끼리의 여행이었다면 시간 구애는 없었겠지만 약속이 있었으므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안하게도, 그들은 우리가 머물 예정인 고성까지 와주기로 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고성 앞바다가 펼쳐진 켄싱턴의 우리 방에 도착했을 때,

"와아아아~~~!!"

하고 탄성까지 지르며 너무 좋아하는 아기의 반응을 보고 그만 녹초가 되어버린 영혼에 단비가 내렸다. 저렇게 좋아하니 그래, 그래도 오길 잘했다.


친구 부부와 장사항에서 함께 회를 먹자마자 그들은 숙소인 강릉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고맙다고 제대로 인사할 정신도 없이 다시 켄싱턴으로 돌아와 밤바다 소리를 들으며 반탈진상태로 곯아떨어졌다.

오늘의 고생은 전부 이 곳, 바다가 보이는 방으로 오기 위한 긴 여정이었던 거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 혼자 조용히 일어나 바다의 경치를 즐기며 네스프레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는데, 방에는 아기와 남편이 곤히 자고 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위로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게 운치까지 더해줘서,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또다시 솟아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갯벌체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