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고운 Jul 18. 2020

애 덕분에, 나 때문에

충남의 풍경

아기를 좀 더 가까이서 보겠다는 마음에 직장 사무실을 집 근처로 옮겼을 때 친구가 말했다.

"애 때문에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전부 핑계야."

그게 무슨 말이냐 물었더니 부연 설명이 돌아왔다.

"다들 이렇게 말하잖아. 애 때문에 직장을 옮겼다, 애 때문에 회사 때려치웠다, 애 때문에 이사했다, 등등. 하지만 그건 모든 것이 애 때문에 가 아니라 순전히 본인을 위한 일이라는 말이지. 결국 인간은 이기적이거든. 자기가 좋으려고 하는 일인데 정작 본인은 몰라."

그러니까 이 친구의 말은, 애 때문에 회사를 때려치웠다고 말하기 전에, 애를 더 많이 보고 싶은 자신의 마음 때문에 때려치웠다고 말해야 더 정확하다는 거다. 그리고 나더러도 '애 때문에 직장을 옮겼다'같은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자신의 마음 때문에 옮겨 놓고, 모든 것을 애 때문으로 돌리는 그 마음 때문에, 그것이 나중에 반복되고 축적이 될수록 대리만족을 바라는 심리가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이유 있는 우려도 했다.


그 말이 듣다 보니 그럴싸했다. 더 나아가, 지금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애 때문에 참는다는 말 따위는 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애 '덕분에' 참고 인내심을 기르는 연습 중이라고 감사해하는 편이, 물론 평범한 인간인 이상 어렵겠지만, 적어도 보기에는 낫다. 또, '감사하는 마음'이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삶의 습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삶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부모가 그걸 강요하는 건 역시 아니다.


개인적으로 사람에게 절대 강요할 수 없는 게 세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가 권위, 두 번째가 존경, 세 번째가 감사다. 이 세 가지는 본인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와야만 비로소 진심이 된다. 아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길 바란다면 나부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눈빛과 습관으로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아이가 좀 더 좋은 집에서 안정적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이사를 했고, 아이가 좀 더 멀미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바꿨다. 애 때문에 집과 차를 바꾼 것이 아니라, 아이를 좀 더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커서 바꾼 것이다. 정말로 놀랍고 감사하게도, 차를 바꾸니 아이의 멀미가 줄어들었다. 그동안 작고 덜컹거리는 차에서 고생이 많았겠다 싶어서 속이 상했고, 차를 바꾼 대가를 또 앞으로 몇 년간 치러 나가기 위해 열심히 다람쥐 쳇바퀴를 굴려야 하는 일상에 감사하기로 했다.


차를 바꾸고 처음으로 정한 여행지는 충남 덕산. 이제는 스플라스 리솜으로 이름을 바꾼, 예전의 덕산 스파캐슬로 한 번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어쩐지 충남 일대는 여행지로 잘 선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유인즉슨 예전 회사가 있던 곳이고, 그래서 그곳에서 부득이하게 필연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이 서울 여행 생각을 안 하는 이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예전 덕산 스파캐슬은 가족 단위로 여행하기에나 좋은 곳이라고 들어서 그동안에는 가 볼 생각이 들지 않다가, 이제 아이가 있는 지금,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담고 싶은 우리의 마음 때문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아이는 멀미를 안 했고, 물놀이를 즐거워했으며, 새로 산 차를 좋아했고, 바깥을 신나게 뛰어다녔다. 나지막한 산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있는 충남만의 분위기도 어쩐지 아늑하여, 거주자 일 때는 너무나 당연하여 느끼지도 못했던 그곳만의 분위기에 한껏 취할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가 보이는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