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호수는 남편과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비교적 초창기에 방문했던 데이트 장소다. 그때는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상대에게 시간을 들여가며 서로를 알아가야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이 호수도 뭔가 알 듯 말 듯한 분위기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특히,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얼핏 보았던 콘도미니엄, 절벽 같던 제방, 김일성 별장터, 호수를 한 바퀴 돌다 보면 나왔던 독특한 한옥 등이 아련하게, 한 번 더 방문하여 좀 더 알고 싶은 종류의 어떤 것으로 각인되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시 숙박시설. 아이가 제대로 잠을 못 자면 모두의 컨디션이 망가져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없으므로, 산정호수 여행을 하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본 건 그 콘도미니엄의 숙박 가능 여부. 마침 빈 객실이 있었으므로 예약을 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전문적인 캠핑 피플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초보 캠핑러인 우리는, 최대한 숙소와 가까운 곳에 텐트를 펼쳐 고기를 구워 먹고 실컷 아이랑 놀다가 저녁에는 콘도로 돌아와 편히 자는, 캠핑도 하고 편하게 잠도 자겠다는,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마침 콘도미니엄 근처에 글램핑장도 있고, 데크만 예약해서 각자 가져온 텐트를 치고 쉬다 갈 수 있는 곳이 존재했다. 우리에겐 산 지 한 번 밖에 펼쳐보지 않은 새 텐트도 있었으므로, 출발하기 전 날 밤 인터넷으로 데크 자리 결제까지 끝내 놓고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고 있음에 기뻐하였다.
그러나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우리가 예약한 글램핑장은 이름만 비슷했지 콘도 근처에 있는 글램핑장이 아니었고(그 근처에 글램핑장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예약금이 아까워 그냥 고기만이라도 구워 먹고 나오기로 작정하고 들어간 글램핑장의 데크 주변에는 나무 그늘이 존재하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급하게 텐트를 쳤는데 주변의 들판엔 왠 날벌레가 그렇게 많은지 텐트 안으로 금방 들어가는 바람에 캠핑, 캠핑하며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손사래를 치며 캠핑 싫다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준비해 온 고기라도 숯불에 구워 먹고 가자며 불을 피우는데, 번개탄을 준비 못해서 숯에 불은 안 붙고, 남편은 뙤약볕에서 토치로 열심히 숯에 불 넣고, 땀은 삐질삐질 나고, 그늘막도 없고, 각종 벌레가 들러붙고, 화장실도 멀고, 그야말로 캠핑 초짜들의 사면초가 판국이었다.
맛있게 구워 먹겠다며 소고기 치마살, 살치살, 갈빗살, 송이버섯, 구워 먹는 치즈, 새우, 아스파라거스 등 거창하게 준비를 하였으나, 체력도 노하우도 초짜인 우리들은 다 구워 먹기도 전에 땡볕에 구워질 판이었다. 남은 여정 버틸 체력까지 소진하기 직전에 철수하기로 하고, 준비한 고기의 절반만 구워 먹고는 예약한 콘도로 돌아와 체크인을 했다. 방으로 들어가니 아이는 좋아서 소파 위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다시 물어보았다.
"얀아, 캠핑 좋아?"
"캠핑 시러."
이번엔 아빠가 물었다.
"왜? 재밌잖아."
"캠핑 시러."
"다음에 또 하러 가자, 캠핑?"
이번에도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
"응."
뭐든 초짜는 힘든 법이다. 경험으로 배웠으니 다음번엔 뭔가 스킬이 좀 더 나아지겠지. 돌아온 다음날부터 남편은 타프(그늘막)를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