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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Apr 02. 2022

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거의 2~3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에도 간간하게 짧은 이야기들을 쓰긴 했지만, '이제 다시 슬슬 쓰는 사람으로 살아볼까?'하는 마음이 든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동안 별로 읽지를 않았다. 무언가를 진득하게 읽을 수 없는 현실-아직 만 4년이 겨우 지난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이 1차적 원인이고 그러다보니 문자적인 입력을 내 뇌에 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읽는 게 없으니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라는 존재는 고난과 역경이 주어져야만 쓰는 사람인가'라는 자아성찰의 시간도 본의아니게 가질 수 있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리다'는 것이다. 고난이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주어 쓸 거리도 많이 생산케 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말인즉슨, 쓰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항상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인생은 너무 버겁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바란건 단지 소소한 일상과 거기서 얻은 생각을 기록하는 자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었고, 내가 느낀 딜레마는 소소한 일상속에서 무엇을 기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중요한 건 다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갈 마음이 들었다는 것' 이다.


이 소중한 마음을 들게 해준 책이 바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다. 조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대부분 읽다 덮었는데, 아직까지는 이 작가의 작품에 흥미와 공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또 읽어보기 위해 호기롭게 산 소설이 몇 권이나 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까지 읽지 못했던 건 결국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그런데에도 나는 또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손에 들었다. 알지 못하는 자에 대한 알고 싶은 욕구라기보다는, 어쩌다 손에 들어온 책이 하필이면 또 이 작가의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이 아니라 수필집이며 특히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던 거다. 게다가 코로나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상황에서 모처럼 한 자리에 앉아 책을 내리 다 읽은 것도 오랜만에 누리는 경험이었다.


코로나 시국 전에 분명 나도 열병처럼 여행을 하던 자였다. 친구 한 명은 나를 '여행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로 지칭하지만, 스스로 봤을 때 나의 여행 레벨은 김영하 작가에게 비하면 쪼렙이다. 김영하 작가는 내가 이십대 후반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던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에서 읽었던 삶과 비슷한 정도, 아니면 그 이상으로 살고 있다. 상주하는 여행자. 그 당시 내가 꿈꾸던 인생 모토가 바로 이러했다. 단기간 치고 빠지는 여행자의 삶이 아니라 일정 기간 한 곳에 머무르며 어느 지역 일대를 여행하는 '상주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김영하 작가는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니, 그의 아내는 뉴욕에서 머무는 중에도 '여행가고 싶다'고 했단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려서 어디론가 또 다른 일탈을 꿈꾸는 인생.


만약, 이런 삶을 이야기 한다면 내 친구는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삶이 좋아?'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너는 그럼 이렇게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삶이 좋아?'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입장이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정착민의 삶이 안정적이다. 모든 것이 안정감있고 어떤 일이 발생해도 확실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삶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이런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삶은 불안하다. 아이를 키우기에도 불안하고, 부모의 불안정한 상태는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므로 첫번째 우선순위는 누가 뭐래도 안정적인 삶이다.


김영하 작가는 이 책에서 말한다. 자신 인생의 어린 시절이 강제 이주의 연속적인 삶(초등생 떄 전학을 1년에 한 번 씩 6번을 다녔단다)이었던 영향이 큰 탓인지, 자신에게는 여행이 자신의 컴포트 존에 들어온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는 거다. 어린 시절 완벽한 정착민으로 살아 온 사람들은 정착민의 삶에서 안정감을 느끼듯, 어디론가 여행을 하던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논리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방랑벽을 합리화시키려는 궤변처럼 들린다. 의무가 쌓인 일상에서 탈출하며 느끼는 해방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산고,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낀 건 무얼까? 전반적으로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입장에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어 이륙했을때,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의 해방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보이는 일상의 문제들-사소하지만 분명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들-이 우주의 티끌처럼 작게 느껴지던 느낌, 인생에 대해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이런것들이 분명 주기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느껴본 자들만이 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끝까지 여행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생각과 철학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찾아 유랑했다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 역시 나의 여행철학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일지도 모른다.


만약 소설가 김영하의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서 나처럼 읽는데 실패를 자주 한 사람이 있다면, 이 에세이집 '여행의 이유'는 두려워하지말고 가볍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정말 가끔이긴 한데, '풉'하는 구절도 한 두군데 있을 정도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는 수필이 훨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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