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in 속초 (2)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활동반경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그것을 고려해서 우리는 가능하면 리조트 내에서 움직이고, 간간이 바다향기로를 산책하기로 했었다. 특히 바다향기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걸어보고 싶었는데 개방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메리트를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 번도 걷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가 오거나 추적추적한 날씨가 이어졌고, 더군다나 바람이 강하게 불어 체감 온도는 훅 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빗길 드라이브라도 하고 커피나 마시자 싶어 간 카페 나폴리아(고성쪽 가는 길에 있다)에서는 아기가 보채는 바람에 얼마 있지도 못했다. 바람에 파도가 거센 것이 기분까지 글루미하게 만들었는데, 글루미하면서도 차분한 기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비바람이 치는 날 나폴리아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 한 잔'이 딱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카페에서는 그렇게 거세게 치던 파도도 여기서는 잔잔해 보이고, 거기다 아늑하고 쾌적한 방 분위기까지 우리가 굳이 왜 나갔나 싶다.
아기가 한 숨 자고 일어난 상태를 봐서 워크파크에 가기로 했다. 잔뜩 가져온 아기 물놀이 용품을 그냥 집으로 가져 가기도 아쉬우니까. 사전에 친구한테 들은 바로는, 아기들은 물 속에서 기껏 놀아봤자 15분 정도면 많이 논 거란다. 게다가 워터파크 물은 따뜻할지 몰라도 공기는 아직 차가우니까 바깥에 오래 있으면 안된다. 커다란 비치타올 하나 들고 가서 놀다가 보채면 바로 타올로 감싸 데려오는 동선과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총 다 해도 1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기가 일어나자 방수기저귀로 갈아입히고 곧장 리조트 지하 2층에 있는 워터파크로 향했다. 래쉬가드를 입은 우리는 아이만 데리고 곧장 워터파크로 입장. 들어가자마자 가장 밝고 따뜻하고 만만해 보이는 수심 1m의 풀에 아이를 놓고 목튜브를 장착시켰다. 처음 보는 광경, 처음 느끼는 물놀이장의 울림, 물 속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과 소리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것에 어안이 벙벙해진 아기는 웃지도 않고 열심히 수영을 하다가 이내 적응을 했는지 몸의 방향을 앞뒤로 바꿔가며 물 속에서 손 발을 움직인다. 생각보다 잘 노는 모습에, 잠깐 스쳐가듯 지나가는 이 워터파크의 어른 2명 분 입장료가 좀 덜 아까워졌다. 이내 아기가 징징거리기 시작해서 잽싸게 물에서 나와 타올로 몸을 닦고 감싸 안아 방으로 올라왔다. 방에서 나가서 다시 방으로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45분. 생각보다 양호하다. 아기가 의외로 잘 놀아준 덕분이다.
낮에 마신 맥주 한 캔이 결정타였는지 감기기운이 다시 도진 듯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머리는 계속 띵하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리조트 위에서 바다향기로가 보인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다음에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 다시 와 걷기로 기약했다. 화요일 대낮의 속초 양양 고속도로 서울행 상행선은 역시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내린천 휴게소에 들를 때 즈음엔 두통도 어느 정도 사그라 들었다. 마침내 집에 와서 이삿짐에 버금가는 모든 짐을 풀고, 산더미같은 빨래를 돌리고, 아기 이유식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마지막으로 샤워를 할 때에는 행복감이 밀려들어왔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안에 확실히 갇혀 있는 느낌. 소소한 행복. 어디를 다녀도 이 작고 아늑한 우리집이 제일 편안하구나, 여행을 간 것도 너무나 좋았지만 집에 돌아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니 더 좋구나. 고생해도 행복하다는 말은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여행을 가는 데에도, 전반적으로 이 인생 자체에 적용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