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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Feb 15. 2020

벽을 치기보다 안에서 강해질 것

나이를 먹어가며 좋은 점은 누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더라도 그러거나 말거나 흥, 할 수 있는 여유에 있는 줄 알았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아직 내가 그 경지에 완전히 이르지 못했다는 거다.


최근 들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하던 곳을 바꾸었고 하던 업무도 달라졌다. 이사를 했고 조만간 계속 변수가 있을 예정이다. 너무 변화가 많다보니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적응도 했다. 종류가 다른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스트레스 관리에 매우 긍정적이라는 측면도 발견했다. 한 가지 생각이나 한 종류의 스트레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 모든 것을 내가 컨트롤 할 수는 없다는 겸허함도 생긴다. 물론 부작용도 존재한다. 모든 것이 out of control 이니 에라이 될대로 되라, 하는 심정이 된다는 점.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함께 존재한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모두 부러운 건 아니지만, 특히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몇 있는데, 소위 나잇값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뱃 속에 능구렁이 열 마리쯤은 키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남들이 뭐라고 해도 쉽게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떠한 외란이 닥쳐도 쉽게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여유롭게 상황을 헤쳐간다. 그들과 비교하기엔 나 역시 너무나 쪼렙(?)이라 민망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내 반응을 보고 '완전 어린 아이는 아니구나', 란 생각에 안심이 된 적도 있다. 분명 예전 같았으면 욱 하고 화를 내며 상대에게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을 상황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런 일 정도에 화를 낼 필요는 전혀 없지 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남들이 나에게 무얼 강요해도 절대 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잖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결 여유로운 마음이 든 것이다.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말이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여유로운 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아직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상황이 되면 잔뜩 긴장하며 염소가 되어 간신히 말을 이어간다. 남들이 보면 경험부족이라니, 발표 스킬이 부족하다느니 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예전이라면 발표를 망치고 잔뜩 의기소침 상태가 되어 그 우울한 심정에 깊이 파묻혀 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어쩌라고, 내가 사람들 앞에서 긴장을 하는 게 내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걸.' 하면서 금새 툭툭 털고 웃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발표를 하는게 발전되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그에 반응하는 내 태도라도 발전시켰다고나 할까. 뱃 속에 능구렁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능구렁이 새끼 한 마리는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인들 앞에서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가 되어 지낼 때,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 있는가'하고 반성할 때가 있다. 여전히 타인들에게 유능해보이고 싶고, 잘나 보이고 싶고, 그래서 절대 무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보네, 하고 어깨 힘을 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두려움이나 허세나 매한가지다.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두려운 것도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너무 의식해서 그런거고, 유능해 보이고 싶은 허세도 잘 보이고 싶은 자의식에 점점 어깨 힘이 들어가는 거니까. 시선을 외부에 두지 말고 내부로 돌려서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진솔하게 되면, 그러니까 정말 내가 원하는 마음상태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돌이켜보고 되새기면, 연약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벽을 두르고 가시를 세우기보다, 내부의 강인함이 저절로 생겨서 벽을 치고 가시 세울 일 조차 없을 터인데 말이다.


매순간, 나 자신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이 마음만큼은 늘 한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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