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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고운 Jan 01. 2020

시작과 끝, 만남과 헤어짐


매 해 이 때 즈음이면 주말마다 스키를 타러 갈 생각에 들떠 있곤 했는데, 아기가 삶에 들어오면서 그 풍경조차 바뀌었다. 두 돌을 맞은 아이를 데리고 스키를 타러 갈 수는 없으니 뭐라도 하긴 해야하겠는데, 겨울의 스키장 분위기는 또 사뭇 그립고 해서 결국 스키장 내에 있는 썰매장으로 타협을 보았다. 명목은 아기에게 난생 처음 썰매를 태워줘 보자는 취지였지만 영락없이 부모의 놀고 싶은 욕심에 세워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린 아기를 데리고 놀러가 본 부모들은 다 알거다. 그것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난생 처음 타 보는 곤돌라와 겨울산 꼭대기에서의 매서운 바람, 그리고 새하얗고 눈부신 눈밭. 이 모든 것이 아기에게는 새로운 흥미거리였지만 이내 춥고 피로해졌는지 울며 잠이 들었고, 우리는 비싼 입장료에 비해 한 번 밖에 못 탄 썰매를 아쉬워하며 잠든 아기를 안고 내려와야 했다. 곤돌라에서 내리자마자 있는 스타벅스 앞 의자에 앉아 그대로 아기를 안고 두 시간을 재운 덕에 며칠 간 팔이 후들거리는 새로운 경험도 했다. 


아기 생일이 지나고 얼마 안되어 크리스마스, 이후 내 생일이라 우리는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세 번의 케이크를 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온 지 이 년 밖에 안되는 지라 모든 것이 새롭고 배울것 투성이인데, 나는 벌써 세상에 나온지 삼십 칠 년이 되었다. 세상에, 삼십 칠년이라. 말이 37년이지 참 많이도 살았다(아직도 마음은 이십대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고작 37년 밖에 안 살았는데 남들은 아파보기도 힘든 병들을 경험했으니 용케 아이도 낳고 여기까지 왔구나, 정말 앞으로는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무엇보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인 것이다. 


최근 몇 년 간은 새 해와 지난 해의 경계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었다. 어차피 시간의 나눔이란 사람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정해놓은 규칙에 불과하고, 나의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비슷하게 펼쳐질 것인데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지난 날을 반성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었다. 매일 하루를 돌이켜보고 반성을 하면 그만이고 내일이 또 오면 계획을 세우는 데 시간을 버리지 말고 주어진 일에나 몰두하며 살아나가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던 중 갑자기 새해가 왔다고 반성과 다짐을 하고 싶어진 건 역시, 여러가지 일들에서 느꼈던 감정과 후회와 깨달음 등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거다. 갑자기 풍부해진 감수성의 파도에 허우적거리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그렇기도 하다.


한 번도 내가 나이 먹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니까. 그러나 이번의 병치레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분명 오 년 전의 간염도 죽을 만큼 기운이 없었지만 그때는 잃을 것이 없으니까 건강의 악화에서도 두려운 것이 없었는데, 이번의 폐렴에서는 마치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고 다리 근육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고열에 시달린 탓에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가 쭉쭉 내려갔다. 정말 오늘 내일 하는 노인이 된 그 기분. 아무런 기력이 없는 것이 두려웠다. 어쨌거나 지금은 지켜야 할 것이 존재하니까. 무엇보다 내가 없으면, 내가 아니면 안되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있으니까 말이다.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건강과 기력을 조금씩 되찾고 나니 아기에게 책을 읽어 줄 수 있을만큼 기침도 멎고 목소리도 돌아왔다. 모처럼 책을 많이 읽어주니 좋은지 아기는 이 책 저 책을 끊임없이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했다. 더 읽어줄만한 책이 필요한 듯 해서 교보문고에 나갔는데, 이해인 수녀와 이병률 시인의 신간들이 나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사들고 와 아기가 낮잠 잔 틈을 타 몇 페이지를 읽어내려 가는데, 예전과 다른 감성이 가슴에 짠하게 내려앉아 마음을 저릿하게 하는게, '정말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란 생각이 훅 들어왔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흘리는 노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야 그렇다치고, 나같은 보통 사람은 보통의 감수성으로 보통, 노인들의 눈물 많은 감수성을 대할때 당황스럽단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 당혹스러움을 나 자신에게 느끼고 있을 줄이야. 


회사에서도 곧 인사 시즌이다. 새로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이전에는 새로운 곳에 가는 것,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설렘이 더 컸는데 이제는 기존의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아쉽고 슬프다(정말 나이를 먹었나보다). 하지만 헤어짐이 슬프다고 마음을 닫을 필요도, 뒷걸음질 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안다.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은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자세가, 우리 인생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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