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2020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번 주 금요일이면 2021년이란다. 세상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도 있고, 시간을 버티는 힘도 커지긴 했을 텐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니 벌써?'라는 감탄은 끝도 없이 나온다. 올 한 해는 주제를 하나로 잡아 제대로 글을 한번 써보겠어,라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끝이라니까 그것도 아쉽다. 대체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1년이란 시간이 뭉텅이로 뚝뚝 떨어져 나간다.
물론, 하는 것이 없지는 않다. 회사를 열심히 다니며 시간과 돈을 바꾸고 있고, 네 살짜리 남자아이도 키운다. 이거면 사실 설명이 더 필요 없지 않을까?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출근을 하며 밤에는 육퇴를 하자마자 아이와 함께 곯아떨어진다. 책 읽고 여행 다니고 음악 듣고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수다 떨면서 내 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용하던 때가 있었는지조차 잘 기억이 안 난다.
올 한 해를 아무런 정리 없이 마무리할 수는 없으니, 나름대로 2020년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나만의 안식년(까지는 아니고 안식주)을 갖기 위해 올해 마지막 주 전체를 휴가 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올 해의 가장 큰 교훈(?)은 역시 절대적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하면 사연은 이렇다.
올해 아이 어린이집과 가까운 곳으로 다니겠답시고 집 근처로 근무 신청하여 발령은 났는데, 같이 일하게 된 팀장이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라고는 안 하겠다. 나랑 맞지 않는다고 모든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폄하하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 하여간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한 데다 공감능력이 부족하여 함께 일하는 팀원들마다 족족 적으로 만드는 특수한 재능을 지녔는데, 공감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자신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직원들만 닦달하는 지라 나중에 열이 받은 나는 결국 팀장과 붙었다. 그 당시에는 쌓인 게 많다 보니 그냥 나 열 받은 거에만 몰두해서 몽땅 다 입 밖으로 쏟아부었는데, 그게 속이 시원했냐 하면 또 생각보다 그다지 시원하지도 않더란 말이다. 혼자만 상쾌한 하극상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나름대로 정신적 승리의 쾌감이라도 있었을 것인데, 정신적 쾌감은 정말 찰나에서 멈췄고 그 후로는 계속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했어야 품위를 지킬 수 있었을까'하고 고찰하게 되는 것을 보면 그닥 훌륭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기다 새로 이사 온 집의 윗집 할머니는 남들 배려가 별로 없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자기 합리화하는, 그러니까 그 나이 또래 전형적 안하무인인 노인인데 한 번은 밤에 너무 시끄러서, 직접 올라가기는 그렇고, 인터폰으로 경비실을 통해 주의를 줬더니 화가 났는지 밤에 소리를 지르며 노발대발하는데, 밤에 김장을 하는 것도 그렇다 치고 자신들한테 '감히 신고'를 하냐며 미친 듯이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도 정말 가관이더란 말이다. 자신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고 감히 자신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느냐며 화를 내는 모습에서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저 나이 먹도록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했다. 팀장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내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가 저랬을까, 아니야 저 정도는 아니었을 거야.'라고 혼자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런 사건들을 통해 '화를 내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일단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흥분한 상태에서 화를 내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흥분한 상태에서 화를 내면 그 모습이 일단 우아하지 않다. 화에 매몰되어 내 모습을 객관화할 수 없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한 번 더 그려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일단 화가 나면 말을 삼가고 한 번 깊이 숨을 쉬고, 한 템포 뒤로 물러서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화를 내야 할 때도 분명 존재하는데,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아하고 침착하게 화를 내는 방법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건 나도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경지라 모르겠다. 일단은 화가 나면 분노를 삭이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까지가 올 2020년의 성과다. 그다음은? 아직 그래도 살 날이 많으니 천천히 알아가면 될 일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