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정을 듬뿍 받은 아이의 행동이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었다. 과격해지면 다치기 십상이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잠깐 고기를 굽느라 시선을 돌린 사이 '어엇'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아이가 할아버지 얼굴을 향해 뭉쳐놓은 휴지를 던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할아버지 얼굴에 맞지는 않았지만, 난감해하는 두 조부모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가 공 외에는 던지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얀이가 할아버지한테 휴지 던졌어?"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니라고 하지도 않는 걸 보니 맞는 듯했다.
"얀아, 잘못했으니까 할아버지한테 잘못했어요,라고 하세요."
이렇게 내가 말하자 옆에서 할머니가 거들며 "그래,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해야지." 하고 부드럽게 말했으며, 그제야 할아버지도 약간 풀린 얼굴로, "어서 말해봐라."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표정이 굳으며 시선을 회피하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크고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얀아,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지. 얀이가 잘못 안 했어?"
그러자 아이는 "응, 잘못 안 했어."라며 아예 드러누웠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와 멀리 있던 나는 아이 앞으로 가서 부드럽게 얘기했다.
"얀이는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거구나?"
"응."
"그래, 얀이는 장난이었을 뿐인데 말이야. 근데 엄마가 공 외에는 사람한테 물건 던지는 거 아니라고 말해줬지? 그리고 얀이는 장난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다칠 뻔하고 깜짝 놀라셨어. 그러니까 얀이가 의도한 게 아니어도 결과적으로 할아버지가 놀라셨으니 잘못한 거야. 그러니 우리 얀이 할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말해볼까?"
그러자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금방 수긍하고 할아버지에게 "잘못했어요."라고 말을 하였다. 분위기는 금방 좋아졌다. 나 역시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이에게 잘했다고 안아주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며칠이 지나도 계속 뇌리에 남았다. 해피엔딩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잘 다독인 거 같기도 하고,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고. 일단 아이에게 처음 잘못을 강요한 순간, 내 잘못을 금방 인지한 건 다행이긴 했으나, 그 순간 왜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라 했을까? 아이를 잘 훈육하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었을까? 스스로는 아니라고 해도 그런 마음이 한 구석에 있어서 반사적으로 나온 말일까? 아니면 그것이 내가 자라면서 훈육받아 온 방식이기 때문일까?
그러다 소아정신과 교수로 유튜브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닉네임 닥터 지하고 라는 사람의 영상을 보았는데 그 교수가 이런 식으로 말했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해도 절대 그 앞에서 잘못했다고 하면 안 돼요. 나중에 해야지. 먼저 처음에는 공감을 해주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중에 잘못을 이야기해줘도 늦지 않아요. 물론 당장 잘못했다고 말해줘야 할 때도 있어요. 위험할 때. 그럴 때는 당장 알려줘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긴 하였으나당장 사과가 필요할 때, 그러니까 며칠 전에 일어난 일과 같은 사건이 생길 때에도 나중에 잘못을 알려주어야 하는 건가? 나중에 알려주면 오히려 까먹지 않을까? 아니면 사과는 나중에 해도 되니 한참 후에 잘못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편이 나은 건가? 자기 기준 없는 의문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다. 아이가 잘못을 했어도 옳은 길로 잘 인도해주는 것. 그것을 위한다고 해서 남의 시선과 생각에 쓸데없이 영향을 받지 않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강압적이지 말 것. 아이 스스로가 느끼도록 인도할 것. 그리고 아이도 엄마의 인도가 진정 자신을 위한 인도임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건 결국 나를 키우는 길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는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