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마지막 날 짬뽕이 먹고 싶다는 아이와 만카오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해물짬뽕, 나는 잡채밥을 주문했다. 양이 생각보다 많아 거하게 점심을 먹고 주체할 수없이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해 낮잠을 잤다.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나니 오후 3시가 다 되어 있었다. 연휴에 달리 놀러 간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한 일이 없다 생각하니 3일 연휴가 억울하기도 해서 우선 신발을 신고 나왔다.
같이 걷자고 연락한 지인은 낙산사에서 양초 봉사 중이라 할 수 없이 혼자 걷기로 했다. 무작정 나선 3시의 햇살은 따가워서 모자를 안 쓰고 나온 나는 계속 눈살을 찌푸리며 걸었다. 엑스포 공원을 돌아 수협 공판장을 돌아가는데 햇살은 사라지고 해무가 자욱하다. 원래 호수 옆으로 건물들이 즐비했는데 해무가 다 삼켜버렸다. 작은 도시의 건물들이 지워지니 호수에 덩그러니 배 한 척만 있는 듯하다.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여백의 미가 좋다.
수협 공판장 앞쪽 부두에는 듬성듬성 선박들이 쉬고 있고 그 사이 그늘 틈으로 낚시꾼들이 낚시 중이다. 정차된 차들은 캠핑카도 보이고 차박하는 차들도 보인다. 낚시를 잠시 쉬며 고기를 굽고 있는 가족도 보이고 홀로 낚시와 명상 중인 사람도 있다. 휴일 막히는 도로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테지만 차가 막혀도 속초에서의 낚시는 그들에게 커다란 숨구멍이 되고 삶의 원천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이곳을 지나가는 것이 나의 숨구멍이듯이.
코로나 한창 심할 때는 관광지에 사는 것이 싫었다. 나는 제대로 못 즐기는데 바닷가마다 즐비한 텐트와 차박차량을 보면 괜스레 심통이 났었다. 하지만 지나보니 나도 나약한 인간을 관대하게 바라봐 주는 아름답고 충만한 자연이 있었기에 코로나 시기를 잘 견디지 않았나 되돌아본다.
걷다 보니 금방 청호동 바닷가에 도착했다. 해변을 따라 걷지 않고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담장이 없는 집들마다 마당에는 화초가 심어져있거나 상추나 고구마가 심어져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높이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낮은 건물들이 주는 위안을 받게 된다. 아마도 내 취향인 것 같다. 걷다가 지칠 즈음 만나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루나, 이곳에서 쉬어가기 위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연휴 마지막 날 오후인데도 루프탑에는 연인들이 많아 조용히 내려와 1층에서 얼음이 사각거리는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원래 더워도 에어컨 바람 아래서 뜨아를 먹는 사람이 덥긴 더웠나 보다.
카페에 앉아 있자니 잊었던 꿈이 생각났다. 나중 퇴직하면 청호동에 조그만 북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낡고 오래된 작은 집을 사서 빈티지를 멋스럽게 살려내 북카페나 독립서점을 할까 생각해 봤는데 요즘 청호동 집 시세가 어마어마하게 올라 실현이 될지는 모르겠다.
커피를 마시고 다시 길을 간다. 오른 편으로 보이는 청호초등학교. 말끔하게 단장한 소나무 속 쉼터가 맘에 든다. 학교 운동장도 천연잔디라서 보기 좋다. 아이들이 어렸다면 분명 주말에 이 운동장에 여러 번은 놀러 왔을 것이다.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놀다 나무그늘에서 쉬면서 근처 만두가게에서 사온 왕만두를 먹고 청호동바다 모래사장에서 모래놀이를 하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그 차를 타고 집에 가지 않았을까.
길 끝에 속초해수욕장 대관람차 속초아이가 보인다. 역시 여기도 해무때문에 바다가 뿌옇다. 그래도 백사장에 사람들이 꽤 많았고 해무 때문인지 조심하라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온다. 모래사장을 걷는 대신 속초해수욕장 솔밭길로 가본다. 솔밭길 입구에는 버스킹이 한창이다. 역시 속해는 젊음의 상징이다. 삼삼오오 계단에 앉아 버스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여유롭게 보인다. 노래를 들으며 솔밭길로 들어갔다.
솔밭길로 들어서니 어제 내린 비로 솔향이 더 짙게 풍기고 빽빽한 소나무가 햇살을 막아주어 시원했다. 혼자 신나서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그러다 멈추시더니 갑자기 뭔가를 바닥에 뿌리셨다. 깜짝 놀라 멈춰 서있자니 비둘기들이 솔밭에서 모이를 주워 먹는 것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모이 먹는 비둘기 모습이 귀여워 사진도 찍어본다. 아마도 저 새들은 아저씨를 기억하겠지 싶다. 사진 속 모이를 한줌 뿌리고 유유하게 지나쳐가는 아저씨의 뒷모습이 도인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솔밭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 같아서는 바다향기로까지 가고 싶었지만 돌아갈 길을 생각해야 했기에 여기서 돌아간다. 솔밭길을 돌아 나오면서 역시 오길 잘했다 싶다. 오늘 걸은 이 길은 집에서 자전거로도 자주 다녔던 길이다. 추운 겨울, 산에 가기 힘들 때 다니던 곳인데 오늘 걸어보니 앞으로 이곳도 자주 걷게 될 것 같다. 이번 휴일 끝자락을 홀로 걸으며 마무리했다. 다음 주에는 또 어디로 발걸음을 돌릴지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