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냉면은 아버지의 단골메뉴였다. 서서히 더워지는 늦봄에서 초여름부터 어머니는 아버지를 위해 냉면을 자주 사가지고 오셨다. 옛날에는 포장용기가 없으니 동그란 쟁반에 냉면그릇이며 육수주전자 그리고 양념을 담아 허리춤에 끼고 오시거나 아니면 머리에 이고 오셨다. 그때의 나는 냉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 냉면을 좋아하게 됐을까 생각해 보니 결혼하고 신접살림을 차리고부터이다. 신혼집 아파트 건너편에는 단천면옥이 있었다. 그 집 냉면을 좋아하는 남편 따라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여름이면 아파트로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직접 가서 먹기도 했다. 어느 순간 공중파 방송을 타더니 손님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새 건물을 지어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간 곳이 멀지 않은 곳이라 단천면옥은 아직도 우리 집 단골 냉면집이다.
단천면옥에 가서 회냉면을 주문하면 먼저 주전자에 뜨근한 육수를 내어준다. 냉면 먹기 전 몸에 예열을 하듯 육수를 한잔 마시고 있으면 냉면이 나온다. 정갈한 유기그릇에 냉면이 오면 식초와 겨자, 설탕을 넣고 잘 비빈다. 나는 달지 않게, 남편과 아이는 달달하게.
우선 찐 가족이라 서로 말도 없이 냉면을 먹는다. 면을 다 먹을쯤 남은 양념에 뜨거운 육수를 부어 휘휘 젓는다. 숟가락으로 먹기는 불편하니 냉면기를 양손에 들고 국물을 마신다. 뭔 맛인가 싶겠지만 이렇게 국물까지 다 마셔야 냉면을 먹은 기분이 든다. 싹 비워진 그릇을 바라보며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속으로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