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모기였다. 새벽 '윙'하는 모기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내가 잠든 사이 모기는 내 팔과 다리를 무차별 공격했다. 얼른 물파스를 바르고 거의 감긴 눈으로 모기향을 피우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감긴 눈 속으로 어떤 검은 물체가 휙 지나갔다. 무서운 마음에 후다닥 불을 켰다. 그 검은 정체는 바로 낮에 보았던 악귀였다!
요즘 설거지 할 때 나의 친구는 라디오 대신 유튜브이다. 애정하는 채널은 단연 뜬뜬 채널의 핑계고이다. 유재석의 복지 콘텐츠로 유재석이 친한 지인들과 나와 그냥 떠들어재끼는 프로이다. 처음 방영할 때부터 애시청자라 모든 영상을 다 시청했다. 핑계고는 특별한 구성은 없다. 아니 있을 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친구들과 커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프로이다. 그래서 설거지할 때 편하게 볼 수 있다. 옆에서 누군가 재잘거린다 생각하고 영상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거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설거지를 하려고 핑계고를 틀었는데 영상이 실시간으로 플레이되는 것이다. 게스트는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가 나왔다. 아싸!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틀어놓고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보통은 설거지를 마치면 다음을 위해 끝까지 안 보고 남겨놓는데 그날을 너무 재밌어서 설거지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서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아니 중간중간 빨리 돌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김은희 작가가 야심한 밤에 귀신 얘기를 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렇게 김은희 작가는 새로운 드라마 '악귀'를 홍보했고 뜬뜬채널도 이날 구독자 100만 명을 찍었다.
홍보 덕에 일요일 낮에 악귀 재방송을 보았다. 낮이라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무서운 장면은 잠깐 채널을 돌리거나 티비영상을 손으로 가리면서 보는데 '아차' 하는 순간 그 검은 형체의 악귀를 보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무서운 형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악귀가 오늘 새벽에 나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새벽 자려고 눈만 감으면 악귀가 등장했다. 할 수 없이 그냥 불을 켜고 몇 시간을 잠들지 못해 뒹굴다 거의 해가 뜰 때 잠들어 오늘 매일매일글쓰기 줌모임에 참여하지 못했다.
작년에 학교 도서관에서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하는데 도우미로 참여한 적 있다. 오전에는 책을 읽고 독후활동을 하고 오후에는 물총놀이도 하고 수박도 먹고 컵라면도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밤 8시가 되었다. 아이들이 제일 기대하던 시간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프로그램 참여의 궁극적인 목적, 바로 경도 시간이다. 학교의 모든 불을 꺼지고 스피커에서는 음산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은 도둑과 경찰로 나뉘어 캄캄한 교실 여기저기 숨게 된다. 경찰이 된 학생은 운동화에 조그만 방울을 달고 다닌다. 다닐 때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악소리와 함께 방울 소리가 들린다. 지금 생각해도 뒷머리가 쭈뼜선다. 겁 많은 아이들은 거의 울다시피 울먹이며 친구와 거의 한 몸이 되어 붙어 다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신이 나서 도망 다닌다. 겁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사람들은 왜 귀신, 좀비, 스릴러와 같은 공포를 좋아하고 왜 끊임없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걸까? 인간의 공포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수많은 공포물 속에서 심약한 나는 결과적으로 못 본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악귀를 본 것은 순전한 호기심으로 뒷이야기가 궁금해서이다. 티비 화면을 손으로 가리고라도 보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잠들지 못했다. 한동안 밤에 불을 켜고 자야 할 것 같다. 아, 악귀 다음편도 궁금한데 보고 잠들지 못할 것을 택할지, 아니면 호기심을 얌전히 묻어둘지 고민이다.
뜬뜬 핑계고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