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에세이 쓰기
저녁 식사를 마치면 어김없이 운동화를 신는다. 아니 신어야 한다. 운동화를 신기까지 '오늘은 쉴까, 오늘 춥다는데, 오늘 엄청 피곤한데, ' 등 마음속에 끝없는 실랑이가 일어난다. 하지만 오늘도 내면의 실랑이를 뒤로하고 운동화를 신는다. 코로나가 일상이 된 요즘은 매일 걷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니던 요가도 헬스장도 코로나로 못 다니게 되면서 집에서 가까운 청초호가 나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주말이면 좀 더 멀리 있는 산으로 등산을 가곤 하지만 평일엔 청초호가 나의 산책로가 된다.
집에서 신호등 2개를 건너 청초호 근처에 다다르면 비릿한 냄새가 난다. 어떤 날은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심한 냄새는 맡을 수 없다.
잘 만들어진 나무 놀이터와 농구장을 지나면 짧은 오솔길이 나온다. 이 길을 참 좋아한다. 요즘 만나기 힘든 흙길이기 때문이다. 저녁엔 향이 좀 덜 하지만 새벽에 이 길을 걸으면 짙은 솔향이 폐 깊숙이 들어가 몸을 정화시켜주고 마음까지 건강하게 해주는 길이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잠깐 숨을 들이셔 본다. 청초호의 비릿한 냄새와 오솔길의 풀 내음이 함께 들어온다. 이런 살아있는 숨을 쉬면서 살아야 하는데 마스크 때문에 자연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숨을 들이쉬는 사이 구불구불 나무 사이 오솔길은 금방 끝이 난다.
그리곤 유명한 물회집 앞길을 지나쳐 유람선 쪽을 걷노라면 찰랑찰랑 호숫물 인지 바닷물인지 알 수 없는 물결에 조각배들이 둥실거린다. 간혹 이곳에서 청둥오리나 큰고니를 만나면 반갑다. 지난여름 폭풍우 속에서 갈 곳 잃은 갈매기들이 요트 위에 떼 지어 서있던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들은 폭풍우라는 시련을 맞닥뜨렸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있던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다. 작은 생명체이지만 거대한 폭풍이 몰려올 것을 직감하면서도 굽히지 않겠다는 결의가 서 있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저녁 시간 걸으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낮에 만났던 아이의 안녕을 바라기도 하고 내일도 그 아이가 날 찾아와 주길 바라고 그 아이가 지금처럼만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의 아픔이 오래가질 않길 바란다. 그리고 간혹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을 살피기도 하고 새롭게 빨리빨리 지어지는 건물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아무 생각도 안 하기도 한다. 그저 옮기는 발걸음에만 집중하는 시간도 가져본다.
청초호 정자에 다다라 깜깜한 밤 고요하게 일렁이는 물살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은 평화롭다. 화려하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야경도 아름답다. 떼 지어 구경 온 사람들이 없는 날은 이곳에서 한참을 물 구경을 하기도 한다.
혼자 걷는 시간은 이제 익숙해졌다. 아이도 남편에게도 함께 걷자 말은 항상 하지만 혼자 걷는 시간이 좋다. 그저 발걸음에 충실하며 만보를 억지로 채우던 지난날에서 벗어나 걸으면서 내 속을 비워내고 또 비워내는 시간들이 쌓여가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