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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 Jun 28. 2023

여름날 나를 살리는 국수


전라도가 고향이었던 엄마는 부지런히 식구들을 먹이셨다. 어린 시절 아침에 눈뜨면 부산스럽게 음식을 하고 계셨다. 애석하게도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아 음식 솜씨가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내 밑의 4살 터울 여동생은 엄마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아 음식 솜씨가 수려하다. 음식 솜씨가 타고난 엄마지만 빈곤한 가계 탓에 주말 아침이면 우리 집 밥상에는 면 요리가 주로 올려졌다. 어떤 날은 요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라면 냄비가 떡하니 올려지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은 칼국수나 잔치 국수가 큰 사발에 담겨 올라오기도 했다. 칼국수를 먹는 날엔 거실에 큰 상을 펴고 밀가루를 직접 치대 직접 칼국수를 만드셨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편 후 돌돌 말아 칼로 '똑똑' 썰어내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그것으로 감자를 넣어 감칠맛 나게 감자 칼국수를 끓이기도 하고 얼큰한 김치 칼국수를 끓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엔 뜨끈한 팥 칼국수를 끓여주시기도 했다. 번잡하기 그지없는 칼국수를 그 시절엔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매일 밥 하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 같으면 자신이 낳지도 않은 자식 둘까지 걷어먹여야 한다 생각하면 밥을 하는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엄마는 매 끼니 상을 차렸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국수를 삶아 비벼 먹는다. 얼마 전 결혼한 분이 답례품으로 주신 오색 국수가 있어서 오늘은 분홍빛 국수를 꺼내본다. 냄비에 물이 끓으면 국수를 넣고 삶는다. 그동안 상추나 오이, 양파를 씻어 채 썰어 놓는다. 국수가 삶아지면 차가운 물에 헹구어 그릇에 동그랗게 앉힌다. 그리고 채 썬 야채들을 넣고 양념장을 넣어 '살살살' 비벼먹는다. 여름에는 이렇게 비빔국수 한 그릇이 제격이다. 야채도 손질하기 힘든 날에는 삶은 국수에 간장하고 들기름, 깨소금만 넣고 비벼 먹어도 좋다. 슴슴한 맛이 화려하지 않아 꼭 내 모습 같기도 한 간장국수는 짭조름한 것이 입맛 없는 날에도 술술 잘 넘어간다. 이렇듯 국수는 차려내는 것도 간단하고 반찬도 크게 필요 없어서 자주 먹게 된다.



© 침샘공작소, 출처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것 같다. 입맛만 봐도 어릴 적 지겹게 먹던 국수라 커서는 잘 먹지 않았는데 요즘은 저녁마다 국수를 삶는다. 간혹 비가 오는 날에는 생칼국수를 사 와 칼국수를 끓인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부엌의 부뚜막에 올려진 큰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던 국수들이 생각난다. 그 국수를 식구 수대로 6그릇을 담아내던 것도 생각난다. 그리고 겨울날 끓여지던 팥칼국수도 생각났다. 팥칼국수가 생각날 때 식당에서 가서 두어 번 사 먹어 본 적 있다. 하지만 옛날 엄마의 손맛이 아니었다. 내가 직접 해보자니 번잡스러울 것 같고 또한 맛도 보장 못 하기에 아직 만들어보지 못했다. 언젠가 그리움이 더 짙어지면 팥을 삶에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 지난지 며칠 안 됐지만 동지가 가까워지면 한번 끓어보리라.


50년 인생에 수많은 음식들이 나를 살게 했고 국수는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사를 조절한 탓도 있고 날씨가 더워 입맛이 없기도 하지만 시원하게 말은 국수는 무더위 입맛을 살려준다.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는 여름날, 차가운 국수를 먹으며 백석 시인의 겨울날의 <국수> 시를 떠올려본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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